기억을 붙들다

내 사랑 우리 엄마를 추모하며

by 마드레

2001년 겨울 사범대 건물 앞, 막내딸의 대학 졸업식에 참석한 엄마가 환하게 웃고 있다. 휴대폰 배경 화면 속 엄마는 이제 나와 비슷한 40대 후반이다. 내가 어린 시절부터 알 수 없는 질병으로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셨던 엄마의 바람은 ‘우리 아이들 국민학교 입학, 아니 졸업은 보게 해 주세요’였는데 막내딸의 대학 졸업식장에서 사진을 찍게 되다니 엄마는 그날 어떤 기분이셨을까? 나보다 한 살 많은 사진 속 엄마의 미소가 눈부시다.


흘러간 시간만큼 그리움은 쌓였는데 슬픔은 줄지 않았다. 가장 슬픈 건 그림 한 장 없는 엄마의 얼굴이 잊혀 간다는 점이었다. 어딘가에서 불어오지만 잡을 수 없는 바람처럼, 하늘에 떠 있지만 마주 바라볼 수 없는 해처럼, 떠올리려 애쓰면 애쓸수록 엄마의 얼굴은 희미해져 갔다. 엄마라는 이름이 채 목젖에 걸려 삼킬 수가 없는데, 아직도 코끝에 엄마 냄새가 스미는데, 한 번만이라도 엄마를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소원이 없겠는데,
엄마의 얼굴은 자꾸 잊혀 갔다.

<인어 사냥 > 차인표


인어 내용의 책인 줄 알고 우연히 읽다 눈물 한 바가지를 쏟아냈다. 알록달록 단풍을 봐도, 낙엽이 바람에 휘날리는 것을 봐도, 노란 은행이 똑 똑 떨어져 있는 걸 봐도 비슷한 증상에 휩싸인다. 11월이 되면 고장나는 나의 눈물버튼은 아무래도 수리 불가다.


18년, 시간이 이렇게 흘렀나. 뱃속에 있던 아가는 이제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다. 나의 그리움의 나이와 같다. 마지막 날 낮에 엄마가 먹고 싶다고 했던 음식이 칼국수였나 매운 무언가였나, 어떤 대화를 나눴었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이렇게 붙잡으려 아등바등 노력을 해도 잡을 수 없는 바람처럼 기억은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고 시간은 점점 엄마의 얼굴이 빼앗아 간다. 일흔셋의 엄마는 얼마나 아름다울까. 휴대폰 배경 화면 속 엄마가 늙은 딸을 향해 환하게 웃고 있다.


냉장고 속엔 엄마가 담근 25년 된 매실액

장롱 속엔 엄마가 마지막 여름 가을에 입었던 카라 티셔츠와 재킷이

서랍 속엔 다이어리에 쓰여 있는 엄마의 글씨가

그리고 오랜 카세트테이프엔 20대의 엄마가 아가인 나에게 찬양을 불러주는 목소리가

그리고 나의 기억엔 마지막 날 저녁 엄마의 눈 빛

잘 가라고 조심히 가라고

힘들게 몸을 일으켜 오래오래 나는 바라보던

그 깊은 우물 같은 엄마의 눈 빛이 남아있다.


나는 이렇게 올해도 기억을 붙들어 본다.



2007년 11월 11일 1시

우리 마미 하늘나라로 이사 간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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