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엄마는 날 기억하지 못했다.
의사 선생님께서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다. 오랜 입퇴원의 기간 중 벌써 몇 번째인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이번에도 나와 언니는 마음을 단단히 부여잡았다. 그 위기의 주간이었다. 엄마는 출장을 다녀온 날 알아보지 못하고 언니만 하염없이 찾았다. 어린(20대 중반) 나는 마음에 큰 상처를 받았더랬다.
엄마는 암투병 이전에도 불치병에 걸리셨던 적이 있다. 그래서 난 어린 시절 엄마와 떨어져 지낸 적도 많았고 엄마가 집에 계셔도 엄마 옆에 접근하는 걸 어른들이 막았던 일도 종종 있었다. 그 트라우마 때문인지 어른이 되어서도 혼자 있는 걸 잘 못 하고 혼자 자는 것도 싫어해서 결혼하기 전 20대 후반까지도 엄마 아빠 또는 언니의 살결을 쓰다듬으며 잠을 자곤 했다.
엄마가 날 알아보지 못했지만, 엄마 옆에 있고 싶어서 비좁은 침대 위에 올라갔다. 엄마와 마주 보고 앉아 다리를 쭉 뻣자 엄마가 내 발을 만졌다. 고통 속에 신음하던 엄마가 내 발을 만지며 잠이 들었다. 엄마가 주무시는 시간은 고통을 잊을 수 있는 시간, 그 잠의 길에 내 발이 도움이 된다면 언제든 밤새도록 내여 드릴 수 있었다.
둘째는 아가임에도 불구하고 땀이 많아 발 냄새가 심한 편인데 난 그 냄새를 맡고 그 발에 뽀뽀하는 걸 좋아한다. 의식이 없는 엄마가 내 발을 만져 주었던 그 따뜻한 기억 때문일까?
나는 오늘도 잠든 아이들의 거칠어진 발을 주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