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回梦到北京] 관계의 의미
나는 너와 허송세월을 보내고 싶어,
물고기를 내려다 본거나,
찻잔을 테이블 위에 놓고 떠나 거나 하듯이,
그들의 예쁜 그림자를 보며 낭비하고 싶어.
그리고 계속해서 석양과 함께 산보를 하면서 낭비하고 싶어.
별이 하늘을 가득 채울 때까지, 그리고 바람이 불 때 낭비하고 싶어.
네 눈에 먹구름이 낄 때까지 멍하니 복도에 앉아 있다던 지 말이야.
리두는 좀 특별했다. 왕징과 한 블록 떨어져 있는 곳으로 왕징이 한인타운인 반면에 리두는 외국인 거주비율이 높은 외국인 거주지역이라고 했다. 네이버 카페에서 들리는 얘기로는 외국인이 가는 높은 수준의 허무지아같은 좋은 병원도 있고, 바질과 루꼴라 같은 외국 식자재도 팔고, 아이리쉬 펍과 호텔도 많고, 보랏빛 꽃이 피는 공원도 있는 곳으로 서울과 같은 인프라를 갖추었다는 얘기만 듣고, 가보지 못한 리두는 나에게 꿈의 동네였다. 한인마트 외에도 외국 식자재가 필요했던 나는 리두에 가보고 싶었지만 쫄보라 지도를 두고도 나갈 엄두가 안났다.
그러다 주연언니를 알게 되었다. 언니와는 나의 고양이 나츠의 병원일로 알게 되었는데 언니도 고양이를 기르고 있었고, 우리집 앞동에 거주하고 계셨다. 나의 고양이 나츠가 고양이 별로 돌아갈 때 동물병원부터 마지막까지 많이 도와주셨고, 일하는 중에도 도움을 청하면 열일 제치고 도움의 손을 내밀어주셨다. 베이징에 간지 얼마 안 되어 벌어진 일이라 언어도, 현지 실정도 모르던 내게 언니는 빛 같은 존재였다. 살면서 타인에게 손 내밀어 본 적 없던 나에게 주연언니는 큰 감동을 주었고 언니 덕분에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많은 생각이 바뀌었다. 그때부터 인연이라는 쉽게 소모되는 단어에 깊은 의미가 생겼다. 인연 ; 사람들 사이에 맺어지는 관계. 살면서 내 곁에 머무는 사람에 대한 소중함을 알게 하는 단어가 되었다.
주연언니가 어느 날 "리두 가봤어요? 리두에서 데이트할래요?"라고 연락이 왔다. 새롭게 관계를 잘 맺지 못하는 나에게 언니는 그렇게 항상 먼저 손을 내밀어 주었다. 여기는 뭐가 있어요 요 앞에는 뭐가 있는데 나중에 같이 와봐요 여기 음식 괜찮아요 나중에 남편이랑 가봐요 베이징은 늦은 시간에 걸어 다녀도 괜찮은 도시라 여기서부터 왕징까지 걸어간 적도 많아요 걷는 거 좋아해요? 우물쭈물하던 나에게 상냥하고 부드러운 배려를 보여주며 리두를 구경시켜주었다. 그날 언니에게 타인의 따뜻함과 관계의 의미에 대해 배웠다. 사람을 얼마나 오래 알고 중요한 것이 아니라 타인에게 얼마나 마음이 열려있는가가 중요한 것이었다 언니가 베풀어준 조건 없는 친절함으로 나는 타지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워나갔다 주연언니가 베이징을 떠난 후에도 리두는 언니를 기억하게 해주는 동네가 되었고 이후 리두에 나만의 애정스팟이 생기면서 더더 좋아지게 되었다.
효연 언니도 리두를 좋아지게 만든 또 한 명의 인연이었다. 보통 한국사람들은 한인 타운인 왕징에 많이 사는데 효연 언니는 리두에 살고 있었다 한인 세계가 형성된 왕징은 뭔가 답답하고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었는데 자유가 가득한 리두에 산다니! 언니에겐 리두에 산다는 것부터 특별함을 느꼈다. 언니는 뭔가 현명하고 자기 주관이 뚜렷한 사람이었다. 많은 풍파 속에서도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랄까 그전까지 타인의 눈에 맞춰 살던 나는 효연 언니의 주관이 부러웠다. 갈팡질팡하던 해외 생활에 언니가 이렇게 말해줬다 그럴 수도 있지 라는 생각으로 살면 된다고.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마법은 굉장했다. 그다음 날부터 나의 불만은 반절로 줄었고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바뀌었다. 그럴 수도 있지는 지금도 유용한데 타인은 나와 같지 않다는 걸, 다를 뿐 틀린 게 아니란 걸 알게 해주는 문장이었기 때문이다. 나의 리두는 제니 왕 식료품점 까지라면 언니의 리두는 INDIGO(颐堤港/이티강)으로 영역이 넓었다. 언니와는 나중에 hyday를 정해서 도장깨기 하듯 베이징을 돌아다녔는데 이때 우리의 여정들은 애정 베이징으로 변하게 만든 시간이었다. 나에게 리두는 그렇게 특별한 내 사람들을 맺어주었다
꿈을 꾸던 리두는 어느새 가까이 갈 수 있는 옆동네가 되었고 단골가게도 많아졌으며 그곳에서 함께 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게 되었다. 함께 할 수 있다는 것, 서로에게서 배울 수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베이징의 삶은 좋았다고 말할 수 있다. 민영이와 맥주 한잔하던 리두 일식집, 지혜 생파하던 파크스퀘어park square 园挺, 너무 사랑하는 GLB리두점 大跃啤酒(丽都店), 녹차빙 때문에 갔던 뤼차식당绿茶餐厅, 지원씨가 데려간 스즈키 키친 铃木食堂(将台店) 독일빵집, 최애 식료품점 제니왕婕妮王, 지금은 이사 간 도자기 전문점 스핀spin...아마 이런 애정 스팟이 그리운건 그 음식들이 그리운 것보다 그날 그 시간 나와 함께 했던 그 사람들이 생각나서다. 다시 오지 않을 우리의 리두에서의 시간들이 그리워서겠지. 젊고 경험이 적은 우리가 힘들게 적응한 타지에서 전우애처럼 서로 응원하고 도와주던 그 시간들 말이다.
처음이 어려운 나에게 베이징은 꽤 난이도가 높은 도시였다. 뭐든 처음엔 경계하고 보는 습성 때문이다. 낯선 단어도, 한국에서 들었던 무수한 말들도, 가짜 돈도 돌아다니는 나라에서 여행이 아닌 살아야 한다는 지속성이 날 짓눌렀다. 가뜩이나 한국에서도 좁은 관계로 살던 나는 베이징에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뭐가 그렇게 어려웠을까, 언어를 배우다 보니 말이 다를 뿐 결국 사람들이 하고 있는 이야기는 모두 같았다. 잘 살아야 해, 好好活着 말만 다를 뿐 같은 뜻이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한국이든 외국이든 사람은 서로 돕고 도움을 받아야 살 수 있다는 걸 알았다.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상대에게 기대하지 않고 내가 해줄 수 있는 만큼 내어주면 된다는 것을 알았다. 관계를 맺어 인연이 된다는 건 소중하고 행복한 일이다
언젠가 베이징에서 같이 시간을 보냈던 내 사람들을 만나면 한없이 시간을 보내고 싶다 우리가 함께한 식당의 한쪽에서 맥주를 마시며, 그래도 참 잘 지냈었다고 재밌고 좋았다고, 그렇게 우리의 젊고 잊지 못할 시간을 얘기하며 허송 시간을 보내고 싶다.
한때는 내 사람이었고 시절연인처럼 흘러갔더라도 좋은 기억이 있으면 그걸로 되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과거로부터 만들어진 나는 그 시절 그렇게 사람들을 만나 위로를 받았고 살아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힘든 시간을 덮고 일어날 수 있었던 이유에는 그 시간 좋은 사람들과 보낸 좋은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으로부터 배운다는 말을 좋아하는데 정말 많은 걸 직접 체득하면서 사람으로 배운 시간이었다. 삶은 쉽지 않지만 내일을 기대하는 마음이 있다면 어두움도 그 빛을 막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오늘 열심히 살아낸 모습을 다독이고 내일의 빛을 향해 가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