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回梦到北京] 달콤한 디저트
"늙는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당신이 스스로 좋아하는 것들을 하면서, 매일을 의미있게 보내기만 한다면 20살이든 40살이든 상관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늙는데, 왜 굳이 젊어야 하고, 주름살이 없어야 아름다움인 걸까요? 사람은 반드시 아름다워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재미있어야 하고, 일하며 하는 행동들에 재미를 느껴야 합니다. 나는 아름다움이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하며, 그것은 인생을 낭비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아름답기만 한 것은 쓸모가 없어요. 아름다움에 맛을 더하고, 기쁨을 더하고, 다른 것이 더해지는 것이 삶의 행복입니다."
-56세의 장만옥
량마치아오(亮马桥)는 왕징(望京)에서 리두(丽都)를 지나 시내(???)를 나가고 싶을때, 가까이 가서 놀수 있는 동네였다. 산책하기 좋은 량마허(亮马河)를 따라 주변에 미국 대사관등 각나라의 대사관과 대한민국 영사관이 있고, 외국 회사들이 많아 캠핀스키, 포시즌스,힐튼같은 세계적인 호텔 체인도 많으며, 공항에서 바로 시내로 접근할 수 있는 Airport Express 정류장인 싼위엔치아오三元桥와도 가깝다, 그리고 오우양 나나(欧阳娜娜)가 첼로연주를 하던 중국국제청년교류중심(中国国际青年交流中心)은 각종 예술 공연을 여는 곳으로 량마치아오는 베이징에서도 삶의 인프라가 좋은 곳 중 하나이다
한정적인 왕징(望京)과 다르게 량마치아오(亮马桥)는 활력이 가득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채워졌있었다. DRC의 베이커&스파이스는 출근하는 직장인들로 아침 6시부터 붐비고, 그랜드써밋의 펫버거는 내 최애버거 best3안에 들어간다. 검색해보니 펫버거도 사라진듯;; (지금은 없어진) 여인가(女人街)와 꽃시장(亮马桥花卉市场)에서 소품과 꽃을 사들고 외국 식품이 많은 산원리시장(三源里市场)으로 달려가 해산물과 외국 식자재를 가득 장볼 수 있는 삶의 맛이 가득한 곳이었다. 특히 량마치아오(亮马桥)의 위치는 싼리툰(三里屯)과의 접근성이 좋아서 살고싶은 동네 중 하나였다.
베이징의 삶에 스며들때 량마치아오는 한량의 삶이 어떤것인지 알게해 준 동네였다. 강제적으로 받은 자유는 대낮에 량마 하천옆 맥주집 루프트탑에서 맥주를 마실 수 있고, 여유있게 DRG 옌지요 言几又서점에서 책을 골라보고, 도심의 미술관에서 미술품을 감상하고, 불가리 호텔 커피숍에서 수다를 떨고 책을 읽는, 내일이 걱정없고 평온하고 잔잔한 삶을 선물해주었다. 매일 이런 삶을 지내다보니 은퇴한 노년의 모습일거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한국에선 이런 삶을 꿈꿨는데 막상 해보니 그렇게 원하는 삶도 아니고 적성에 맞진 않았지만, 경험해도 좋을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활을 해봤기에 나는 노년에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꿈꾸던 평온하고 잔잔한 삶은 안정을 가져다주었지만 한편으로는 자존감을 바닥까지 끌어내리기도 했고, 또 앞으로 내 삶을 주체적으로 끌어가는 법을 배운 시간이었다. 평화롭지만 시간을 죽이는 미래의 삶보다 좀더 진취적이고 시간을 재미있게 보낼 수 있는 노년을 꿈꾸게 만들었다. 장만옥의 말처럼 늙어가는게 문제가 아니라 내가 살고 싶은 삶의 맛을 찾는게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한국에서의 삶은 성공을 위해 회사에 충성하며 앞만 바라보고 달리는 삶이었다면 베이징에서의 삶은 브레이크를 크게 걸어 멈춤을 배우게 하고 삶의 방향을 정하게 만든 시간이었다.
개인적으로 요리하는 것에 흥미가 없었는데 베이징에서 시간을 보내며 배웠던 디저트가 나에게 큰 변화를 가져다 주었다. 달콤한 설탕은 타지의 불안함을 잠재우고, 부드러운 크림은 미소를 짓게했으며, 디저트를 만드는 시간은 내가 더이상 쓸모없는 존재가 아니라는 설렘을 찾아주었다. 낯선 타지에서 말도 통하지 않고 일을 할수도 없는 상태에서 내가 무엇인가를 만들어낸다는 것이 살아있다는걸 느끼게했고, 맛있는 결과물은 나를 긴긴 어둠에서 세상으로 나오게했다. 그렇게 한국에 돌아가면 베이킹 학교에 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삼고 디저트의 세계에 빠져들게 되었다. 처음부터 그 어렵다는 마카롱을 배우게 되었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기계도 없이 핸드믹서로 10판씩 구워내곤 했다. 어느날 만들어둔 마카롱이 몽땅 없어졌는데 남편이 내가 너무 많이 만들어서 다 못먹을 것 같아서 회사분들 나눠준다고 가져간 일도 있었다. 그만큼 디저트를 만드는게 재미있었고 힘듬보다 즐거움이 컸기에 디저트를 직업으로 삼아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또 예전부터 퍼스널 브랜딩을 하고 싶어하는 나에게 달콤한 디저트는 더없이 좋은 매개체가 되었다.
서양의 디저트를 계속 만들다보니 재미는 있었지만 좀더 나다운 것을 해보고 싶어졌다. 베이징의 곳곳에서 동양적인 아름다움을 발견한 나는 서양의 디저트보단 정감있는 동양의 디저트를 만들고 싶었졌고 중국 궁중간식이나 전통병과에 대한 것들을 찾기 시작했다. 중국 역시 한국과 비슷하면서 다른 디저트 문화로 구성되어 있는데 떡종류도 있고, 각종 곡류를 이용한 디저트나 과일을 이용한 디저트로 자연 식물을 이용한 디저트들이 많았다. 서양의 디저트가 화려한 달달함을 보여준다면 동양의 디저트는 담백한 달달함을 표현하는 것들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중국의 디저트를 공부하며 식자재들의 사용과 쓰임을 좀더 넓게 배울 수 있었고, 각지역에서 먹어볼 수 있는 특색있는 디저트들은 점점 중국 문화와 삶을 이해하는 방식으로 이어졌다. 디저트들이 가진 옛 이야기를 읽으며 내가 살아보지 못한 과거를 알게되고 그 이야기들을 현재의 시각으로 옮겨와 풀어내보고 싶어졌다. 이후 중국과 한국, 일본의 디저트의 세계로 나의 배움은 넓어졌고 동양무드가 가득한 레코드맨션;기록별장을 만들어 나만의 브랜딩을 시작하게되었다 ins:@recordmansion 레코드맨션;기록별장에서 동양적인 아름다움을 전하고 싶은게 내 목표이다. 중국에 살면서 맛보았던 식재료의 다양함, 할머니의 손끝에서 만들어주시던 한국의 병과, 일본에 놀러가서 먹었던 예스럽고 고풍스러움을 레코드맨션;기록별장에서 표현하고 싶어졌다.
디저트는 달콤하다. 하지만 그 달콤함은 달콤하기만해서는 안되고, 만들어지는 적당한 온도와 어울리는 재료와 배합이 맞아야하며, 어울리는 식감도 있어야 하고, 예쁜 외형도 가져야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맛이 있어야 한다.
삶의 맛도 그렇다. 나만이 가질 수 있는 삶이 있어야 한다. 그러기위해선 내 삶을 스스로 이끌어야하고, 내 일에 대해서도 자부심과 가치를 찾아야 한다.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을 소중히 하고, 관계에 있어서 존중과 배려가 있는, 또 내 어깨를 내주고 내가 기댈수 있는 사람들과의 어울림이야 말로 량마치아오(亮马桥)에서 배운 삶의 맛이다.
해외에 나가보니 저보다 적게는 5살 많게는 15살정도의 언니들과 만나면서 알게되면서 나이는 그냥 숫자고 나의 삶은 내가 끌어가야하는구나 라는걸 알았다. 처음 베이징에 갔을때가 36살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되게 어리고 좋을 나이였다는 걸 다시금 깨닫는다 5년후, 10년후의 저도 지금 나이를 생각하면 어리고 좋았다고 뭐든 시작할껄 하고 후회할게 분명하다. 그렇게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오늘을 열심히 삽니다 오늘 잘 사면 10년후의 내가 달라질걸 믿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