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回梦到北京] 영원할 것처럼
생명은 꽃이 피는 나무다. 이슬방울이 떨어지는 꽃잎들과 태양의 온도에 흠뻑 적신, 짙고 푸른 눈동자에는 끊임없이 생장하고 번성하는 물소리가 흐르고 있다.
때때로, 산은 물의 이야기이고 구름은 바람의 이야기일 때가 있다 ; 별은 밤의 이야기가 아니며, 정은 사랑의 이야기가 아닌 때도 있다.
- <생명은 꽃이 피는 나무다>
왕징이 속해있는 조양구(朝阳区 차오양취)에는 꽤 커다란 공원이 있다. 조양공원(朝阳公园)이라고 불리는 곳인데 굉장히 넓다고 하고 아이들이 놀만한 놀이시설도 있고 때가 되면 꽃놀이나 단풍을 보러가기도하고 춘절이나 국경절에 시민들을 위해 명절 행사도 하는 곳이다. 이 조양공원을 기점으로 동쪽에 궈마오(国贸)와 산리툰(三里屯)이 자리하고 있고, 서쪽에는 연예인과 기업 임원들이 사는 고급 빌라촌도 있으며, 외국인 거주지역도 맞닿아있는 곳으로 상업지와 고급 주거지 그리고 공원이 어우러진 곳이다. 이야기만 많이 들었을 뿐 6년동안 한번도 못가본 곳이기도하다. 집에서 비교적 가까운 위치에 있고, 한가롭게 공원에서 시간을 보내기엔 여행 생활자로서 공원이라 특별할게 없을 것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남편의 임기가 끝나면 한국으로 돌아가야하는 것이 기정 사실임에도 나는 베이징에서 영원히 살 것처럼, 계속 있을 수 있을 것처럼, 언제든 머물 수 있을 것처럼 행동했다. 굳이 가보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 스쳐지나갔고, 언젠간 가겠지하며 미뤄대며 남들이 유명하다고 말하는 곳 위주로 찾아 다녔다. 결국에는 못 갈줄도 모르고, 미래를 내 마음대로 할수 있을 것처럼 말이다. 조양공원에 들어가는 대신 항상 솔라나(蓝色港湾)를 택했다 솔라나는 조양공원 한켠에 위치한 쇼핑몰로 조양공원의 인공호수를 감상할 수 있고, 음식점과 브랜드들이 모여있어 쇼핑하기 좋은 곳이다. 솔라나에서 쇼핑을 하고 와이포지아(外婆家)를 가거나 길건나 럭키스트릿(好运街)의 독일음식점(德南餐厅)에서 식사를 하는게 코스였을정도로 조양공원 안쪽보다는 사람들이 많이가는 쇼핑몰을 택했었다. 공원 안을 들어가봤다면 분명 좋았을 장소를 찾을 수 있었는데 계속 베이징에 머물 수 있을 줄만 알았다.
세상에 절대와 영원은 책에만 있는 단어라고 했다. 이렇게 코로나로 막혀 2년이 지나도록 베이징에 발 한쪽도 못 담글줄 모르고, 당시에는 내가 가고 싶다면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다고 오만하게 호언장담했다. 삶은 그렇게 쉽지도, 호락호락하지도 않다. 항상 지금을 살지 못한 버릇 때문일 수도 있다. 과거의 시간에 매여 살며 미루는 버릇에 그때 갔어야 했던, 그때 먹었어야 했던, 그때 경험해야했을 것들을 항상 한박자 늦게 깨닫고 후회하는게 습관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조양공원에 못가서 여한이 된 것이 아니라, 나만의 기준을 가지지 못하고 남의 눈으로만 다녔던 그 시간이, 그렇게 흘려버린 베이징의 시간들이 아쉬운 것이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도 제대로 모르면서, 내가 베이징에서 뭘 해야하는지 갈피도 못잡고 어영부영 보내버린 그 시간들이 아쉽고 그립다. 다시 간다면 잘 살아낼수 있을까? 다시 돌아간다면 뭘 해야할까 이 물음은 계속 물음표로 나에게 남아있었다.
베이징에서의 시간이 한정적인 것을 깨닫지 못하고 과거를 그리워하며 살았던 것은 나에겐 베이징에서 뭘 해야겠다는 목표의 부재가 가장 큰 이유였다. 남편이 파견을 나가니까라는 이유로 단순히 따라나선 것이기에 내가 거기서 뭘 해야하는지, 왜 따라가야하는지 스스로에게 합리적인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엔 단순히 학위하나 따자라는 생각에 중문학과를 들어갔으나 원래 취미가 있던 언어가 아니라서 그런지 시험때마다 벼락치기 하기에 급급했다. 베이징에서 돌아온 후 다시 되짚어보면 중국이란 나라에 대해 너무 모르고 간 것이 큰 실수이고, 한정적인 시간의 중요함을 몰랐던 것이 안타깝다. 삶은 지속되지만 지금 순간에 어떤 선택을 해야하는지, 어떤것에 집중해야하는지, 나의 목표는 어디에 두어야하는지 조금이라도 생각해본다면 과거와 같은 실수를 하지 않을 것이다. 하던 일이 멈춰지더라도 삶의 최종적인 목표를 설정해야하는 것을 알았다. 10년 후의 내가 뒤돌아보았을 때 지금의 나이에 맞게 할수 있는 것들을 하기로 했다. 지금은 영원할 것 같았지만 뒤돌아보면 그 시간 우리는 소중함을 몰랐고, 중요한 것을 놓쳤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기 때문이다. 베이징에서의 삶은 어찌보면 10년후의 내가 생각할때 지금을 제대로 살 수 있게 만들어준 계기가 되었고, 삶을 진지하게 마주보게 만들었다. 디자이너에서 마케터로 남의 이야기를 하며 살았던 한국 생활을 뒤로하고 베이징에서 비로소 진정한 나를 찾고 영원하지 않는 시간에 대해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조양공원뿐 아니라 베이징에서는 아직 제대로 못가본 곳들이 꽤 많다. 호기심은 많지만 겁이 많은 나는 남들이 말하는 검증되어있는 곳을 찾아가는 걸 선호했기 때문이다. 다시 베이징에 간다면 이제 내가 하고자 하는 일과 관련된 동양의 디저트를 맛보고 동양적인 아름다움이 빛이나는 곳을 찾아가고 싶다. 레코드맨션; 기록별장에서 보여주고 싶은 것들을 찾아가다보면 비로소 그제야 나만의 꽃을 피우게 될 것이다. 내가 영원할 것처럼 꿈꾸던 베이징에서의 나는 나이기도 했고 내가 아니기도 했다. 베이징은 중국이기도 하지만, 나에겐 본연의 나를 찾은 곳이기도 했다. 천천히 한겹씩 나만의 색을 입혀가며 스스로의 꽃을 피워야 한다고 알려줬던 베이징의 시간들이었다.
언젠가 다시 갈꺼야라는 생각에 스쳐지는 곳들이 많았지만 시간을 다시 내기가 쉽지 않았다. 이미 다녀왔기 때문에라던지 다른 이유들이 생겼기 때문이다. 갔을때 최대한 열심히 보고오자로 바뀌게 된 계기가 된 계기였다. 언젠가 다시 갈 수 있겠지만 시간이 지나 바래버린 마음이 지금과 같지 않을거란걸 이제는 안다. 할까말까할때 하라고 하는 말이 정답인 이유는 그때 해야하기 때문일 거다.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고 그때 말곤 남은 시간이 없기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