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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아루츠키 Sep 18. 2022

일어서게 만든 팡차오디 芳草地

[回梦到北京] 내가 좋아하는 것들

托尔斯泰曾说过: 正是因为未来充满着变幻莫 测, 所以人生才如此精彩。


톨스토이가 말했다: 미래를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인생은 멋진 거라고.






人这辈子就只活这一次 , 还有什么比生命更重要的? 每一 天都是限量版啊!

인생은 한번뿐이다, 이 삶보다 더 소중한 것이 어디있을까? 매일이 마지막인데.


운남은 나에게 중국을 받아들이게 만들어 준 곳이며 그곳에서 진정한 안락함을 느꼈다. 그리고 베이징에 돌아온 후 우연히도 팡차오디의 운남음식점半山腰 빤샨아오에서 나의 운남여행을 완성했다.


베이징에 도착하고 6개월이 지났을 무렵, 같은 어학당에 다녔던 에스더에게 연락이 왔다. 언니 춘절에 운남갈래요? 운남이 어딘지도 모르면서 그래 가자라고했다. 당시 나에겐 운남이든 어디든 쉴 곳이 필요했다. 집이 제일 좋다고하지만 당시의 나에겐 베이징이, 왕징 집이 버겁고 힘들었다. 





베이징에 도착하고 2개월만에 둘째고양이 나츠가 고양이별로 떠났고, 나는 죄책감과 자책감에 시달렸다. 나츠가 가고 우울증이 와서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쓰러져있던 어느날 첫째고양이 하루가 밥을 못먹고 쳐져있는 걸 발견했다 입안에 헤르페스가 돋아서 애가 밥을 못먹는 줄도 모르고.... 하루도 역시 8년간 함께했던 나츠의 상실감이 컸을텐데 당시의 나는 내가 더 힘들고 아파서 첫째고양이 하루가 아픈 것도 챙기지 못했다. 하루의 병세가 좀 나아질 무렵 남편은 나에게 어학당이라도 가서 중국어를 배워보는게 어떻겠냐고 했다. 쉽사리 맘이 내키지 않았지만 아이들이 자꾸 아파서 병원에 가야하는데 그때마다 통역을 부를수도 없어서 그러겠다고 했다. 




칭화대 어학당에 원서를 넣고 아침 8시 수업이 시작이라 왕징에서 6시반에 출발해야하는 일정이 생기면서 문제가 더 커졌다. 어학당에선 매일 수업시간 전 받아쓰기를 봤고, 매일 语法 口语 听力 문법 회화 듣기 수업을 하느라 오전 수업이 끝나면 오후에는 공부하기 바빴기 때문이다. 하루도 아키도 낯선환경에서 우리만 보고 살고 있었을텐데 남편은 회사일로, 나는 언어공부로 바쁜터라 고양이들이 적응하는지 어떤지도 모르고 나 살기에 급급했던 어느날, 하루가 혈뇨를 보았다.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내 첫고양이이자 내가 삶을 사는 이유였던 하루였기에 처음으로 오빠에게 나도 모르게 해선 안될 소릴해버렸다. 어찌보면 당시에 나는 남편도 중요했지만 결혼 전부터 키워오던 하루와 나츠에게 더 큰 삶을 의지하고, 삶의 근간이었기때문에 더 괴롭고 힘들었다. 나츠가  가버린 그 상황에서 하루마저 가버릴까봐 그토록 쉽게 무너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이리지리 알아보고 흐핑리에 있는 나지아 동물병원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고양이가 낯선환경이라 스트레스가 커서 방광염이 온것 같다고 했다. 매일와서 6일간 수액을 맞으면 나을거라고 하기에 그날로 어학당이고 언어고 다 정지시키고 하루와 병원다니는 것에 집중하며, 하루종일 고양이들을 살피기에 바빴다. 매일 병원에 가는 차안에서 울기바빴다.  하루가 방광염으로 오줌이 안나오는것도 몰랐다니, 아키가 눈병으로 눈이 부은것도 몰랐다니,, 하며 나츠가 떠나가버린 끔찍함과 맞물려 죄책감이 배가 되었다. 처음으로 창살없는 감옥에 갇힌 기분이었다.어디로 갈수도 없고, 바꿀 수도 없고, 아무것도 할수 없는 무기력에 계속 잠식되었다. 그 이후로 어학당에 다시 나가봤지만 이미 진도가 너무 많이 나가 있어 따라잡기도 어려웠다. 어학당을 제대로 끝마치지 못했다는 패배감과 둘째 나츠를 보낸 충격, 하루와 아키가 연달아 아팠던 그 시간, 나는 쉽사리 베이징에 적응 할 수 없었다.


*베이징 나지야동물병원 - 纳吉亚猫专科动物诊疗中心(24小时蒋宅口分院)

주소 地址 - 北京市东城区和平里北街29号安外花园7号楼底商(利君堂大药房旁)近安定门桥

연락처 contact - 010-6421-5327

(위급하거나 심각한 상황이라면 서울대같은 우다코의 농대 동물병원으로 가세요 / 中国农业大学动物医院)


그 때 마침 에스더에게 운남에 가자고 연락이 온 것이다. 남편에게 얘기하니 선뜻 춘절에는 회사도 쉬고 자기가 고양이들 보니까 걱정말라며 다녀오라고 했다. 그렇게 중국어는 在哪儿밖에 모르면서 운남여행을 준비했다. 쿤밍을 거쳐 따리와 리장으로 가는 9박 10의 여정을 잡고 당시 중국에 대한 정보가 하나도 없던 나는 아무 기대도, 아무 생각도 없이 떠났다. 그때는 몰랐다 춘절이 중국인에게 어떤 느낌인지, 운남이 중국인에게 어떤 곳인지.  그렇게 우리는 미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운남이 어떤곳인지도 모른채 한발자국씩 미지의 세계로 들어갔다





쿤밍에 도착해서 평점 5.0이었던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했다.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곳이기도 했고, 침구나 청소도 깨끗이 잘 되어있었고 1층에는 펍과 탁구대, 공용 샤워실과 화장실이 있었고 2층부터 도미토리 등으로 숙소로 구성된 곳이었다. 첫날엔 쿤밍 시내를 돌아다녀보고 싶어서 나왔는데, 베이징의 춘절만 생각하고 나오니 모든곳이 춘절 연휴를 보내러 문을 닫았었다. 아쉬운 맘에 마트에 들려 이것저것 사왔는데 방에 돌아오니 중국 여자애 셋이 있었다. 다른 중국인들도 많았는데 내가 중국사람 같이 보이지 않았는지 어디서 왔는지, 베이징에서 뭘하는지,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했다. 짧은 중국어로 겨우 대답하고 번역기를 사용하고 밤새 수다를 떨며 친해졌는데 세 친구는 마카오 옆 주하이라는 곳에서 살고 있고 셋이 친구고 춘절연휴에 같이 여행하고 있다고 했다. 


중국도 한국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어선지 다음날 같이 밥먹자고도 하고, 어디가 좋다고 추천도 해주고, 심지어 나와 에스더에게 밥도 사줬다. 이 인연은 따리로 이어져 같이 돌아다니며 마지막엔 헤어짐이 아쉬워 舍不得란말을 끝나는 말마다 했다. 우리와 일정은 달랐지만 리장까지도 연결되어 웨이신으로 계속 연락을 하며 지냈다. 그때부터였을까, 중국에 대한 색안경을 벗었던게.. 아마 베이징에서부터 느꼈던 것이기도 했다. 나츠를 치료할때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많이 배려해줬고, 못 알아들으면 친구를 통해서 통역해주기도 했으며, 하루가 아플때도 병원의료진도 그랬지만 치료실에서도 중국 사람들이 외국인이라고 많이 배려해줬다. 밥 안먹고 왔지 하면서 건낸 만토우들, 가져가라며 챙겨준 고양이 제품들, 혹시나 우리가 못알아 들었을까봐 남겨준 문자들, 나만 생각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알게 모르게 많은 배려와 따뜻함을 받고 있었다. 



여유없이 하루하루 살아내야 했던 그때를 운남에서 알게된 그 따뜻함 덕분에 한발자국 떨어져 내 삶을 돌아보게 하고 중국에 스며들게 만들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고전적이고 사랑스러웠던 따리 고성과 친절하고 온기 가득했던 리장고성은 그 이후에도 남편과 마음을 녹이러 다시 찾게 만들었다. 


운남에서 만난 모든 것들이 좋았다. 운남의 공기도, 고대의 건축물도 순수한 사람도 야생버섯 훠궈같은 음식도 장미술도 깨끗하고 안락했던 게스트하우스도, 비록 당시의 우리가 뭘 몰랐고, 첫 여행이었다고해도 느껴지는 감정들 자체가 순수하고 친절하고 따뜻하다는 건 알수 있었다. 


여행객이라고, 외국인이라고 바가지를 씌우지도 않았고, 할아버지댁에가서 놀다온 것 처럼 그런 안락함과 편안함이 가득했다. 남편과 갔을땐 숙소 주인장이 밥을 차려주며 나가서 먹지말고 같이 먹자며 괜찮다고 합석시켜주었다. 아마도 그런일은 잘 없지 않을까 싶은데 내가 몸이 좀안좋았던 상황을 알고 배려해주었던 것이었다. 왜 베이징 사람들이 시간이 되면 운남에 여행을 가는지 알수 있었다. 마음이 쉬어가는 곳이라는 느낌이 컸기 때문이었다. 중국사람뿐만 아니라 외국인에게도 온전히 느껴지는 것이었다. 온화한 날씨와 편한한 표정의 사람들, 풍부한 식자재와 지금의 삶이 가장 좋다고 말하는 행복한 모습들까지 모든 것이 좋았던 운남이었다.





운남에 다녀온 후 운남앓이가 시작되었다. 운남에서 사온 장미삥과 장미술은 이미 3-4번 택배로 시켜먹었다. 더이상 베이징에서 운남의 향취를 느낄수 없게 되었을 무렵 따종띠엔핑에 예쁜 음식점이 보였다. 싼리툰 옆 팡차오디의 운남 음식점 半山腰 빤샨아오였다. 팡차오디 몰 자체는 처음이라 몰도 궁금했지만 운남음식점도 궁금했다. 팡차오디는 파크뷰그린몰을 얘기하는데 이곳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다 있었다. 쇼핑과 아트갤러리가 구분없이 혼재되어있고, 운남음식점 빤산야오가 있으며, 살바도르 달리부터 우리나라 작가인 강형구 작가의 작품까지 수준높은 전시물을 항상 볼 수 있다. 팡차오디는 17년에 타계한 조지 웡(George Wong; 黃建華)회장이 예술품은 창고에 저장하는 게 아니라 나누고 공유해야한다는 마인드로 백화점 전체를 갤러리화 하여 누구나 작품을 감상할 수 있게 만들었다고 한다




파크뷰그린 팡차오디 (Parkview Green FangCaoDi)는 백화점이면서 1300평 규모의 초대형 갤러리,그리고 최고급 호텔인 에클라 베이징이 함께하는 복합공간인데 개인 소유인 1,000개 이상의 세계적인 미술작품 ‘진품’을 쇼핑몰 곳곳에서 관람할 수 있도록 전시해놓았다 지하에 유명한 작품인 황소가 방귀뀌는 작품은 스페인 작가의 작품이라고하고 10층에는 무료 갤러리가 있는데 매 시즌 작가들을 후원하고 작품전을 여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것 같았다 친환경적인 건축물에 변화 가능한 컨셉을 가지고 세계적인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 이 모든 것이 가능하게 만든 조지 웡회장의 안목에 극찬을 하게되는 쇼핑몰이다.





운남 여행이 끝나고 베이징에서 또 다른맛의 운남인 빤산야오를 찾고, 예술작품이 가득한 팡차오디를 만나고 그제서야 베이징을 좋아하게되었다. 아니 중국을 조금씩 맘에 담기 시작했다. 결국엔 이곳에서 살아내야하는 것이 현실임을 직시했고, 불평보다는 감사함으로, 못하는 것보다 해낼 수 있는 일로, 과거보다 현실에 그렇게 천천히 혼자 일어서서 나의 길을 다시 걷기 시작했다. 


운남 여행에서 그 따뜻한 온기를 알아차리지 못했다면 난 한없이 자괴감과 죄책감에 매몰되어 베이징의 삶이 더 험난했을지도 모른다. 다행이도 날 일어서게 만든 것들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있었다. 마음을 나눠준 중국의 어린 세친구들, 따리의 크고 넓은 얼하이 호수, 운남의 뭉게구름, 따뜻했던 장미탕, 에스더라는 좋은 여행친구, 할머니네 집에 온 것 같은 편안함이 가득한 운남 사람들, 사색할 수 있었던 리장의 오버뷰, 낯선 여행에서 삶의 용기를 찾았고, 팡차오디의 예술작품, 운남음식점 빤산야오, 10층의 갤러리, 함께했던 베이징의 인연들 등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날 일으켰다. 베이징에서 생긴 그런 어려움을 겪었기에 이 삶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 것 같다. 


톨스토이의 말이 이제야 와닿는다 미래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인생은 멋진 거라고. 나의 미래는 어떤 일들이 다가올지 모르지만 베이징에서 겪었던 도전과 어려움은 날 한층 성장시켰고, 나만의 길을 만들어가는 법과 스스로의 믿음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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