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回梦到北京] 부러우면 지는거야
내일은 기대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것, 주변 사람들에게 행복을 나누며 살 것
지극히 사소한 부분이라도 감사할 것, 하루 한 번은 잊지 말고 하늘을 볼 것
상대의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것, 나도 있는 그대로 상대에게 말할 것
-권글
개인적으로 오래된 것들을 좋아한다. 시간을 간직한 것들 말이다. 인위적이고 작위적이지 않은, 자연스럽게 생활 속에서 손을 타고 시간을 넘어 나에게 온 소중함을 좋아한다. 옛것들에는 고요하고 맑은 아름다움이 있다. 베이징에는 그런 올드한 것들이 많았다. 자금성을 중심으로 이뤄진 후통의 옛 거리들도 그랬고, 산리허 공원 주변의 치엔먼따지에 와 뤄신 박물관이 있는 푸청먼 거리등 베이징 곳곳에 오래되고 낡은 것들이 현재와 공존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베이징이 너무 촌스럽다고 하고, 잘 사는 평양 같은 느낌이라고 했지만 나에게 베이징은 인디애나 존스처럼 보물을 발견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 역시 첫인상은 촌스러워 보였으나 자세히 볼수록 매력적이고 특유의 개성감이 넘치는 베이징을 결국 사랑하게 되었다. 한국에서 많이 지워진 예스러운 것들, 고전적인 것들, 지극히 동양적인 것들이 살아서 공존하고 있는 베이징은 매일 나에게 새로운 영감을 던져주기 바빴다.
그리고 그 옛날의 촌스럽고 낡은 그래서 발견할수록 소중한 것들이 모여져 있는 판자위엔 골동품 시장은 존재만으로도 날 설레게 했다. 누군가는 거기에 가짜가 많으니 조심하라고 했지만 그 가짜마저도 이쁜? 판자위엔이었다.
판자위엔 이라는 골동품 시장은 나에게 동양적인 매력을 알려준 첫 신호탄이었다. 동양의 기물은 현대로 넘어와 서양적이고 모던한 가구들과 잘 어울렸고, 낯설지 않으면서 유니크한 매력을 불러일으켰다. 할아버지 댁 구석에 있을 것 같은 접시들에 현대적인 액세서리를 놓으면 훌륭한 오브제가 되었고, 타오바오에서 봤을법한 커다란 도자기들을 실물로 볼 수 있었다. 이런 접근성이 좋은 골동품 시장이 좀 부러웠달까, 한국의 고시장은 아는 사람만 알고 비싸게 형성되어있기도 한 반면, 옛것은 낡고 지루하다는 평 때문에 퇴물 취급하기 일쑤였기 때문이었다. 나 역시 그런 기조에서 자라서인지 당시엔 골돌품 시장을 가기 전까지 굳이 왜 옛날 것을 사는지 이해하지 못했으며 촌스럽다는 편견에 사로잡혀있었다.
골동품 시장에는 없는 게 없었고, 없으면 만들어다 가져다줄 것처럼 지난 중국의 과거가 고스란히 묻어있었다. 가짜도 많아져서 볼 게 없다고 했지만 나 같은 생활 여행자에게 벼룩시장은 흥미로운 소재였다. 판자위엔에 다녀온 후 과거의 산물이 그렇게 아름다운 것인지 알게되었고 할아버지댁에서 보았던 그 소재들과 오브제들이 진향 내음을 풍기며 어린 날의 향수를 불러 일으켰다.
할머니의 손길이 맞닿아있는 편안함, 할아버지의 미소가 보이는 안정감, 사랑을 듬뿍받았던 내 세상이었던 그 날의 따뜻함들이 느껴졌다. 그날의 판자위엔 덕분에 과거의 단단함을 사랑하게 되었다.
판자위엔에 다녀온 후 점점 베이징이 좋아졌다. 그제야 현재의 시간에 섞여있는 동양적인 디테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인테리어부터 실생활까지. 한국에서 비웃는 잘 사는 평양이라는 그 수식어도 어찌 보면 부러웠다. 촌스럽지만 그들 나름대로 과거의 전통을 현재에 잘 융합해서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었다. 촌스러운 자신감. 중국에서 느낀 아이덴티티랄까. 과거의 시간과 경험이 쌓여 중국만의 유니크함을 만들고 있었다. 그래서 외부에서 많은 것들이 들어와도 다 중국스럽게 흡수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 뿌리에는 판자위엔 같은 현재에도 살아있는 골동품들이 지키고 있었다. 기억하고 싶은 과거만 간직하는 게 단점이긴 하지만.
그때부터 좀 더 자세히, 깊게 베이징을 바라보게 되었다. 남은 시간을 아쉬워만 흘려보내기엔 베이징은 넓고 재미있었고 동양 무드의 절정에 있었다. 뉴타운이 끝나는 길에 올드타운이 있었고 택시를 타고 시간을 거슬러 난 과거에도, 현재에도 있었다. 어쩌면 그 시간에 난 행복하고 즐거웠지만 한편으론 부러움과 질투심에 사로잡혀있었던 것 같다. 어떻게 이렇게 전통을 잘 이어가는 거지, 서양 무드를 중국화로 만드는 과정은 어떻게 하는 거야, 가장 동양적인 것을 쉽게 쉽게 상품화해내는 능력이 부러웠고 그 상품들이 현재에 잘 어우러지는 것도 부러웠다. 당시에는 한국에 전통의 기조가 많이 없을 때라 더 부러웠던 것 같다. (최근에 많아져서 너무 기쁘다)
그때부터 한국적이고 동양적인 것을 하고 싶어 졌달까, 한국의 우아하고 세련된 느낌 살아있는 디테일적인 것을 하고 싶어졌다. 그렇게 중국 생활에서 목표가 생겼다. 가장 나답고, 가장 동양적인 것을 해보는 것. 최종적으로는 뉴욕과 서울, 베이징에 매장을 낼 수 있는 것을 하고 싶다였다.
베이징에서 본 동양 무드의 부러움을 그렇게 날 한 발자국 더 성장하게 만들었다. 판자위엔에서 내가 외국인의 시선으로 그 골동품을 바라보지 않았더라면, 그냥 일반 관광객이었더라면 스쳐 지나가는 하루의 재미로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판자위엔의 과거는 현재의 나에게 가야 할 길을 알려준 듯하다. 어디서든 결국엔 나는 동양인이고 동양적인 게 어울리며, 동양적인 것을 해야 단단한 뿌리를 내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했다. 언젠가 나의 매장에서 판자위엔처럼 과거와 현재를 잇는 제품들로 동양의 아름다움을 계속 이어가는 일을 하고 싶는 목표가 생겼다. 아름다운 가치는 오랫동안 시간을 타고 이어져야 한다는 걸 그날 판자위엔의 골동품 시장에서 배웠다.
부럽기만 했던 그 시간은 지금의 나를 만들어주었다. 부러움이라는 것은 부러움의 대상을 가지지 못하는 현실에 고통이나 괴로움을 느끼는 것이라고 한다. 당시의 나는 모든 것을 중국화 해버리는 그 모습을 시기 어리게 질투했던 것 같다. 어차피 남의 것을 베낀 거잖아라며 그 능력을 무시했었다. 외부의 것을 바로 흡수하는 무서움을 그때는 치부했었다. 결국 그렇게 남의 것을 베끼고 흡수해서 중국스럽게 결과물을 내놓는 것. 그 능력을 부러워하며 애써 외면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렇게 자기의 아이덴티티를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모든 것들은 과거에서 시작된다. 새롭게 발명하고 창조해내는 것들도 결국은 과거의 이유와 히스토리들로 생겨나는 것이다.
브랜딩을 준비하면서 그 부러움들이 계기가 되어 어떻게 베이스를 만들어갈지, 디테일하게 어떤 걸 풀어갈지. 어떤 식으로 운영할지 기획하고 세부적인 내용을 고민하게 되었다. 부러움은 목표를 만들어주었으며,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잘하는지. 그리고 꿈꾸는 것들을 하나씩 실행할 때의 기쁨을 알게 했다. 不怕慢 只怕站 (bùpà màn zhǐpà zhàn)이라는 말이 있다. 늦은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멈추는 것을 두려워하라는 말이다. 이 말을 알고서 한동안 큰 위로가 되었다. 지금의 나는 내 시간 위에 서있다. 천천히 단단하게 나만의 벽돌을 쌓고 있고 결국엔 내가 원하는 목표가 이뤄질 거라는 것을 분명하게 알기에 매일을 기대하는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