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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아루츠키 Feb 05. 2023

떠다니는 잔향 이화원颐和园

[回梦到北京]스며들어 바뀌는 방향

刚开始不喜欢,但最终还是喜欢上了,不知道怎么会变成这样。

不是说一旦开始喜欢 就算长得丑也会看起来很漂亮嘛

-浮生六記


"처음에는 싫어했는데 결국 이렇게 좋아하게 되었군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알 수 없네요"

"한번 좋아지기 시작하면 못생겨도 이뻐보인다고 하잖아요."

-부생육기 심복과 진운의 대화






"아 여기가 서태후가 사랑했다는 그 이화원이야? 너무 기대된다!!" 냉큼 10위안짜리 이화원 지도를 산다. 나는 이미 솜사탕을 맛본 아이처럼 신나고 들떴다. "또 사? 지도 쓸데도 없는데 왜 자꾸 사?" 오빠는 가는 곳마다 지도를 사모으는 내가 못마땅하다. "언젠가 집에다 지도 다 펼쳐서 액자로 걸어놓고 상상속에서 걸을거야!" 지도와 엽서는 나만의 여행지 잔향을 모으는 방법이다. 중국은 신기하게도 여행지 곳곳에 그 관광지의 지도를 팔고 있었다. 그렇게 하나둘씩 모은 지도와 엽서들은 어느날 친구에게 편지를 쓰기도, 다시 그 여행지에 가게된다면 펴보게 되는 소중한 보물이 되었다. 나에겐 여행지에서 사온 이런 굿즈들이 잔향이 되어 그날의 온도와 하늘, 그 동네의 냄새까지도 세심하게 남아있다.




처음 이화원을 방문한 후 주기적으로 이화원을 방문했다. 뭐랄까, 항상 겉핥기식으로만 보고나와서랄까. 이화원은 이쁘다. 멋있다의 표현은 안 어울리는 곳인데다, 크고 넓어서 욕심을 부리며 하루에 다 세심하게 보기엔 힘들었다. 쿤밍호에서 바라보는 이화원은 탄성이 터져나오지만 멋있고 이뻐서라기보다 또 다른 베이징 같은 느낌이 있다. 그럼에도 계속 가게되는 건 베이징을 상징하는 마스코트 같은 느낌이랄까, 이화원은 웅장하고 화려한같은 수식어가 아닌 베이징이다 라는 문구가 어울리는 곳이다. 베이징에 살았던 사람들이 꾸던 허상같던 쑤저우거리로 이뤄내기도 했고, 불향각을 보면 누구보다 높이 있고 싶어했고 걸어서는 모든 곳을 동선에 맞춰 걸어다닐 수도 없게 넓게 만들어진 그런 부귀영화富貴榮華와 같은 느낌이 강한 곳이다. 넓고 커서 다 한번에 볼 수 없는것이 베이징을 닮았고, 모든게 다 있는 베이징을 닮았다. 그 당시의 보여주고 싶던 그리고 지금 내가 느끼는 베이징의 잔향이 느껴지는 이화원이었다. 






颐和园 Summer Palace


add. 北京市 海淀区 新建宫门路19号

No.19 xinjiangongmen Street, Haidian District, Beijing, China

public transit. 西郊线 颐和园东门 (香山方向) / 서교선 이화원동문역 하차 

business hours. 6:30 - 19:00 (입장객 마감 18:00)

charge. RMB 20



이화원을 제대로 잘 보게 된 계기는 불향각佛香阁이 보이는 장랑长廊에 앉아서 우연히 천장을 바라본 후였다. 장랑은 이화원 내에서 가장 관광객들이 많이 있는 곳으로 앞에 쿤밍호가 보이는 회랑에 걸터 앉아 담소를 나누거나 간식을 먹으며 쉬어가기 좋은 곳이다.  중국 최대의 야외 미술관으로 불리는 장랑은 회랑의 대들보에는 14,000여개나 되는  다양한 민속, 풍경, 신화 그림이 있다. 우연히 바라본 그 그림들이 이쁘고 매력적이어서 한참을 걷고 바라보았다. 그림들이 주는 감동은 엄청 컸고 섬세함과 다양함에 놀랐다. 


그제야 겉핥기로 보던 이화원이 다르게보였다. 장랑에서 바라본 불향각의 독특한 구조는 이화원을 압도하는 무게감이 느껴졌다. 건륭제가 좋아해서 지었다는 소주가苏州街는 이후에 나를 쑤저우 여행길에 오르게 만들기도 했고, 그날 들었던 디즈笛子연주가 너무 좋아서 한동안 발걸음을 멈추고 정자에 앉아 감상했던 적도 있다. 그날 이후 관광지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지루하고 재미없는 곳이란 생각에서 지켜가야하고 관리해야하는, 시간의 흐름을 이겨낸 대단한 건축물로 보이기 시작했다. 이화원의 장랑을 보고 난 후 베이징 곳곳의 박물관과 미술관을 탐닉하기 시작했고, 남겨진 건축물들을 찾아다니며 옛것이 주는 아름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렇게 자세히 본 이후 동양적인 심미에 빠져들며, 한국과는 또 다른 중국미술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아시아의 문화에 대해서도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그날 보았던 장랑의 잔향은 남은 중국 생활에 색채를 더해주었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용기를 주었고, 내가 살고 있는 현실을 제대로 바라보게 만들어주었다. 









나도 그렇지만 사람들은 여행지에 갔을 때 그 곳을 기억할 무언가를 사온다. 미그네틱, 스노우볼, 엽서등등 아마 새로운 곳에서 느꼈던 그 감정을, 시간의 잔향을 기억하려 굿즈 안에 담고 싶은 마음이 아닐까. 나에게 베이징과 중국 역시 진한 잔향이 되어 삶을 공생하고 있다. 티비에서 나오는 역사 프로그램에서 중국이야기가 나오면 쫑긋하게 되고, 중국 드라마를 일부러 찾아본다. 중국 노래를 듣고, 중국어로 된 책을 번역하며 노는게 취미생활이다. 


삶속에서 떠다니는 베이징의 잔향을 지울 수 없는 이유는 나와 하루와 아키와 나츠, 그리고 남편과 함께했던 우리 다섯의 이야기가 완성된 곳이기 때문이다. 잊을수 없고, 잊고 싶지 않고 떠나보낼 수 없는 마음과 같다. 나의 하나아_루츠키와 시간을 보낼 수 있었고, 처음으로 넓은집에서 이사다니지 않고 오랫동안 추억을 쌓을 수 있었다. 아마 그 곳에서 처음으로 안정감이라는 단어를 배웠던 것 같다. 물가는 저렴했고 시간은 많았으며 돈을 벌지 않아도 우리가 살수 있는 삶을 영위했던 곳이 처음이었다. 나를 위해 많은 시간을 쓸 수 있었고, 일상을 고요했고 평화로웠다. 한국사회에서 해방되어 우리끼리만 살수 있었던 동굴같다고 해야할까 아늑했고 따뜻했고 즐거웠고 여유로웠다. 나와 남편에겐 그래서 베이징이, 중국생활이 그립다. 완전했던 우리가, 하루와 아키가 아침이면 침대로 올라오던 그 날이, 저멀리서 걸어오는 하루의 발걸음 소리가, 새벽이면 밥달라고 물고 울던 아키가, 신나게 우다다하던 우리 아이들과 즐거웠고 이쁘고 사랑스러웠던 곳. 처음엔 중국어가 하나도 안들려 감옥같다 생각했는데, 지금 모든걸 겪고 온 후에는 그곳이 우리의 동굴이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었기에 짙은 잔향도 질리지 않은 우리의 베이징이다. 


삶에서 그 잔향 짙게 베여있다는 것은 그로 인해 내 삶이 달라지게 되었다는 뜻도 담겨있다. 삶은 어느 순간 번쩍하고 터닝포인트를 만들게도 하지만 대부분 스며들어 천천히 삶의 방향을 바꾼다. 편협한 시각을 바꿔주고 타인을 인정하고, 어찌할 수 없음을 받아들이고, 스스로의 삶은 매일 발전시켜나가야한다는 것을 베이징의  6년이란 시간동안 천천히 잔향이 되어 나에게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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