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느껴본 좌절과 극복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무엇이든 골라보세요 많은 젊은이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무엇을 해야 하죠?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알아낼 때까지 기다릴래요. 아니요 그러지 마세요. 기다림은 불안하게 만들 뿐이에요. 무엇이든 골라보세요. 여러분이 생각하기에 이거 괜찮은 거 같은데? 좋아요 무엇을 알고 있겠어요 여러분이 틀렸을 수도 있어요 도전해 보세요 그곳으로 나아가세요 중간쯤 도착하면 길을 잘못 들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그건 괜찮아요 발전했으니까요 진짜 괜찮아요 여러분은 예전 위치에 있지 않아요 그리고 지금부터 세상이 조금 다르게 보일 거예요 저쪽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할 거예요 여러분이 길 중간쯤에서 실수하지 않았다면 절대 알아내지 못했을 거예요
지난 43년간 운전을 해본 적이 없다. 그러니까 운전면허 자체가 아예 없다는 말이다. 운전의 필요성을 못 느꼈달까. 모험을 좋아하지만 안전을 지향하고, 호기심은 많지만 겁은 많은 타입에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부족해서 운전같이 위험한 행동은 나보다 남을 더 믿었다. 차에 그다지 관심도 없고 대중교통이 잘되어있는 서울에만 살아서이기도 하다. 꼭 차를 타야 할 일이 있으면 택시를 타면 되었고, 지방 도시를 갈 일이 거의 없던 생활이라 굳이 운전면허를 따야 하는 필요성을 못 느꼈다.
이런 나에게 다들 나중에 아이를 낳으면 병원에라도 갈 일이 생겨서 운전을 미리 배워놓는 게 좋다고 했다. 맞는 말이긴 한데 아이를 낳을지 안 낳을지도 모르고 그렇게 긴급한 상황에서 아이를 태우고 무사히 운전해서 병원까지 갈 수 있을까도 싶었다. (차라리 119 구조대나 택시를 타는 게 더 안전하지 않을까?) 운전을 해야겠다고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었다. 결혼하고 남편이 늙어가는? 모습을 볼 때면 급한 상황에서는 내가 병원에 데려가야 할 수도 있으니까 운전을 따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내 머릿속에서 지워졌다. 운전은 나에게 우선순위에 들지도 않았고 급한일도 아니었다.
그런 태연하고 유유자적한 나에게 남편은 운전면허를 따라고 독촉하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마트 가려면 고속도로 타고 가야 해. 다음 주에 운전면허 학원 알아봐
필기시험 준비하고 있어? 시험 언제 볼 거야?
기본적으로 궁금하지 않은 내용에는 흥미가 없어서 느릿느릿하게 굼뜬 나에게 운전은 거의 수능과 같은? 서터레스를 안겨주었다. 왼쪽 오른쪽도 잘 구별 못하는데.. 왜 하필 미국 중에서도 산골오지사막으로 가서 이 난리를 피워야 되나 싶고, 베이징처럼 아예 주재원 가족이 운전을 못하게 해 주면 얼마나 좋아 하면서 회사 탓을 하기도 했다. 이럴 거면 그냥 다시 중국주재원이나 나가면 좋겠다고 되지도 않는 푸념을 늘어놓았다. 매일매일 스트레스의 연속이었다.
아무 지식 없이 아무 운전학원이나 가면 되겠지 하고 알아본 학원은 집에서 1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경기도 외곽에 있었고 (셔틀이 없었다면 분명 환불각;;) 셔틀버스 아저씨는 모든 스킬을 짜내어 도로 위에서 칼춤을 추었다. 운전을 막 배우기 시작한 나는 아저씨의 운전 스킬이 이해되지 않았다. 아니 왜 이렇게 칼치기, 급정거, 난폭운전을 하는 거지? 필기시험 전에 보는 교육시간에 알려준 것과 현실세계는 다르다는 걸 느꼈다. 역시 운전은 나만 조심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난 왜 굳이 운전면허를 따야 하는가 하며 학원을 갈 때마다 현타가 몰려왔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필기를 무사히 통과하고 기능을 통과하고서 조금씩 운전이란 게 어떤 건지 알아가게 될 무렵 크나큰 시련이 다가왔다. 도.로. 주. 행! 운전을 좋아하거나 평소 관심이 있던 사람이라면 빨리 도로주행에 나가고 싶어 하겠지만 나 같은 쫄보는 도로주행이라는 단어가 너무 공포스러웠다. 심지어 6시간 이수 후 바로 시험이라니!! 이 정도면 거의 집에서 야매로 공부하고 오는 사람들이 보는 시험이 아닌가 싶었다.(그러면 안 되지만) 교육 이수 후 때마침 다리를 접질리는 사고가 생기면서 도로주행 시험은 나에게서 멀리 떠나갔다. 다들 교육 이수 후 바로 시험 보는 게 좋다고 했지만 사정이 그렇게 되어버린걸 어찌할 수 없었다. 12월 중순쯤 살살 걸어 다닐만해서 시험을 신청하였는데 바로 탈락! 속도를 줄여야 하는 구간에서 속도를 줄이지 않았고 실수 후 멘붕이 와서 이후 다 감점! 그리고 시험을 바로 보면 되었겠지만 미리 예약해 둔 대만 여행이 있어서 또 한참을 밀려 1월 초 두 번째 시험을 보았는데 이번엔 너무 긴장해서 노란불에서 멈춘 곳이 바로 신호등 위였다. 바로 10점 감점!
이때부터 스트레스가 극심하게 몰려왔다. 자발적으로 돈을 계속 내가면서 시험을 봐야 한다는 게 너무 짜증스러웠달까. 운전은 나랑 맞지 않는데 어쩔 수 없이 따야 하는 상황이 너무 스트레스였다. 미국만 가지 않았더라면 내 인생에 없는 운전이 이렇게 날 괴롭히다니! 스스로에게 원망스럽기도 했다. 남들 다 운전해서 다니는 거 왜 그렇게 겁이 많은 건지, 뭐가 무서운 건지 하면서 스스로를 자책했다. 악몽도 꾸고 계속 도로주행 시험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남편에게 마지막으로 연수한번 받고 시험을 보겠다고 했고 이번에 떨어지면 그냥 시험 안 보겠다고. 미국 가서도 혼자 집에서 잘 지낼 수 있다고, 주말에 장 보면 된다고 했다. 남편은 알겠다고 했으나 삼세번이라고 이번엔 붙을 거라며 나의 운전면허증에 집착을 버리지 못했다. 결국 세 번째에 교육을 받고 무사히 합격증을 받았다. 이게 뭐라고 사람을 좌절시키고 또 극복시킨단 말인가. 이런 극도의 스트레스는 너무 오랜만이라 적응이 안 되었달까. 플라스틱 카드를 받아 들고 씁쓸해졌다.
극도의 스트레스의 원인은 아마 게으름이 아니었을까. 도로주행을 떨어지고 시험기간의 텀을 보통 15일 이상 잡았는데 그렇게 오랫동안 시간을 끌었던 게 더 불안감을 높였던 게 아닐까 싶다. 생각하기 싫어서 게으름 피우며 미뤄뒀던 것이지만 결국 언젠가 해내야 하는 것이라면 기다리는 동안 날 잠식한 것은 불안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 미뤄두기만 한다면 난 항상 그 자리에 정체되어 있을 것이고, 거기에 매몰되어 결국 우하향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나에게 미뤄둔 일들이 아주 많다. 그래서 해야 할 일도 많다. 올해 목표는 하나씩 해보는 것. 틀려도 좋고, 망해도 좋다. 그냥 우선 해보는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남의 눈이 아닌 내가 쌓아 올린 것이 더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고, 기다림은 불안감만 조성한다. 오랜만에 맛본 좌절은 날 감정의 쓰레기통에 던져놓았지만 그걸 극복해냄으로써 또 하나 배우는 게 있었다. 나이에 상관없이 의지의 문제라는 걸 말이다. 내 삶의 핸들링을 누가 하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40년 동안 충분히 많이 미뤄봤고, 게으름도 충분히 피운 것 같다. 이젠 정말 실행을 해서 내 것을 해야 할 때라는 이야기다. 운전이라는 하나의 산을 넘으니 영어라는 산이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안 비밀이다.
운전을 하게 되니 안 좋은 점이 생겼다. 바로 속도와 주행에 민감해진 것!
옆자리나 뒷자리에 않아도 조금만 속도가 높아져도 심장이 빨리 뛰고 (60을 넘어가면 안 됨), 옆좌석에서 고나리질을 하지 않게 되었으며 모든 운전자가 존경스러워지고, 내비게이션을 찰떡같이 믿게 되었다.
삶은 여행, 어디서든 여행하듯 살아가는 마음가짐으로 살고 있어요
이번엔 미국에서 생활여행자로 살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