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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아루츠키 Feb 02. 2023

복잡하고 북적거리는 인터뷰

모두 원하고 갈망하는 미국비자

sometimes when you're in a dark place, you think you've been buried, but you've actually been planted.


때때로 당신이 어두운 곳에 있을 때 당신은 땅속에 묻혀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거예요. 하지만 사실은 심어져 있는 것이지요





지난 22년 9월 회사에서 주재원 발령을 받고 남편은 팀 이동을 하면서 우리에겐 약간 묘한 기운이 감돌았다. 지난 10여 년간 출장이 거의 없던 남편은 지방 공장 출장이 잦아졌고, 우리의 이야기는 미국주재이야기로 바뀌었으며, 실제로 겪어보지 않은 인터넷에서 주워듣고 먼저 간 동료가 얘기하는 카더라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베이징에 갈 때도 참 정보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우리가 가려는 미국의 지방소도시 역시 정말 정보가 없다. 결국 그 동네에 가서 한 달 정도는 살면서 부딪혀야 몸소 알아지는 것들이라는 거다. 물가는 어떻고, 가전은 어디서 사야 하며, 아마존 배송은 어떻게 받고 쓰레기통 신청은 어디서 해야 하며 살기 좋은 단지는 어디이고 등등. 실제 살지 않으면 모를 내용이고 와서 겪으면 자연스레 알게 될 내용이라 암만 한국에서 알아간다고 해서 현지에서 실제로 부딪히는 건 다르다. 


이미 베이징에서 한번 겪어봤고 삶은 여행자처럼 이라는 모토로 바뀌었기 때문에 결국 카더라 이야기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냈다. 하지만 매일 정보는 수집하는 중이라는 거!




이슈에 대비해 미리미리 서류 준비하기


남편이 2월 비자인터뷰가 잡혔다며 1월 내내 서류를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물론 회사를 통해 가는 거라 스스로 비자를 준비하는 사람들보다는 덜 바빴겠지만 회사 내부에서 늦게 일처리를 하는 경우도 있고, 미국 법인에서 받아야 할 서류들도 있고, 대학교 대학원등에서 개인적으로 챙겨야 할 서류들도 있어서 타임라인 맞추는 것에 예민해져 있었다. 특히 올해 12월엔 미국셧다운이 있고 1월은 한국에 설연휴가 있어서 남편은 비자 인터뷰일정까지 빠듯하다고 느꼈던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미국 법인에서 계속 늦장 부리는 바람에 중요한 서류가 비자인터뷰를 받기 며칠 전에 도착했고 생전 화 안 내던 남편의 인내심은 폭발해 버렸다 우리에게 항상 순탄한 길은 없었다. 여행을 가도, 이사를 가도 항상 에피소드들이 너무 넘쳐나서 에피소드들만 모아서 책이라도 만들어 놓자고 우스갯소리를 했었는데 역시나 이번 비자인터뷰 준비과정에도 중간에 빌런들이 많아 에피소드를 하나 만들었다.



인터뷰 전 주의 사항

모든 전자기기 (핸드폰, 스마트워치, 태블릿, 무선 이어폰 등) 반입 금지 


미국 대사관에서 받는 비자의 종류는 다양한데 크게 이민/비이민 비자로 나뉜다. 비자 인터뷰 시간은 아침 9:30과 낮 1시 두타임만 가능했다. 인터뷰 보기 전 네이버 카페 미준모에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는데 생각보다 리젝 되는 사람들이 많았고 어떤 대사를 만나느냐에 따라 빠르게 인터뷰를 마칠 수 있었는지 공유되었다. 질문 리스트도 다양하게 수집할 수 있었는데 나중에 남편회사에 연계된 비자대행사에서 질문 리스트를 보내주었다. 남편 회사는 재정이 탄탄하고 미국에 꽤 오래전에 나가있는 회사인 데다 주재원도 많이 보냈던 회사라 크게 걱정은 없었는데 나와 남편의 입장은 다르긴 했다. 남편은 실제적으로 영어로 인터뷰를 하고 비자를 받아서 출국 후 현지에서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고 난 가족이기 때문에 따로 준비할 게 없었던 차이다. 남편에게 천천히 말하면 한인통역도 불러준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했지만 남편은 좀 긴장했던 것 같다. 


예상질문 리스트 (보통 영어로 질문함)

미국 주재원 취업은 어떻게 결정하신건가요?

미국에 아는 사람이 있나여?

미국에 어느정도 머무를 계획인가요?

미국에서 머무를 거처는 어디인가요?

주재원 근무시 어떠한 업무를 담당하나요?

미국 체류기간 중 경비는 누가 지불하나요?

급여는 얼마인가요?

언제 갈 예정입니까?

영어는 어느정도 하나요?

미 회사는 어떻게 알아본 것 입니까?

미국갈때 같이 가는 일행이 있나요?

주재원 취업 종료 후 계획이 있나요?

미국은 가장 최근 언제 다녀왔나요?

현재 직장은 얼마나 다녔나요?

현지 회사 직원은 몇명인가요?

연봉은 얼마인가요?

미국대사관은 지나가만 봤지 들어가 본 것은 처음이었는데 약간 위압감이 드는? 장소였다. 친절히 안내해 주긴 했지만 미국이라는 나라가 비자에 좀 까다로운? 느낌이 많아서 그런지 전반적으로 공기가 무거웠다. 모두 제복을 입고 계셨으며 조용히 업무만 보는 오피스 느낌이 강했다. 미국 대사관에서 가방을 맡아주지 않기 때문에 노트북이나 전자기기 반입은 안되고 가방 안에는 전자 기기 없다면 매고 입장할 수 있었다. 우리는 L비자를 받아야 해서 1층에서 핸드폰과 보조배터리를 맡기고 2층으로 바로 올라갔다. 2층에 올라가서 접수를 하고 접수된 서류가 확인이 되면 비자인터뷰 줄에 가서 기다려서 인터뷰를 보면 되는데 티브이에서 드라마로 본 인터뷰 모습과 다르게 은행 창구같이 된 여러 창구 앞에 각 순서대로 서서 인터뷰를 보았다. 비자접수까지는 한국분들이 해주시고 인터뷰는 미국대사가 하는 방식이었다. 인터뷰는 사람마다 달랐고 3월 학기 때문인지 학생이 많았고, 남편처럼 미국주재로 나가는 사람들도 많았다. E비자는 한쪽에 아예 줄을 따로 세워 전용 창구가 있었다. 평일 오전이었음에도 정말 비자 신청하고 인터뷰 보는 사람이 많아서 엄청 북적였다. 


아니, 이렇게 다들 미국에 가는 걸 원한단 말이야 하면서 나랑 다른 마음을 보며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공부나 사업, 회사, 개인적인 사정으로 미국비자를 원하는 사람들로 꽉찬 인터뷰장은 삶을 개척하는 느낌이 들어서 살짝 응원하는 맘도 생겼다. 난 한국에서의 삶도 벅차서 해외유학은 30살쯤 처음 생각했던 거 같은데 어린나이에 공부하러 간다는 학생들의 용기가 부럽기까지 했다. 



우리에게 중요한 건 신분이 확실하다는 것을 보여주며 긴장하지 않고 인터뷰 보는 태도


기다리면서 자연스럽게 리스닝을 할 수 있었는데 미국대사들 마다 질문과 대답들을 들을 수 있어서 계속 경청했던 것 같다. 영어를 잘 못하면 한인통역이 붙기도 했고, 미국 대사들도 한국어를 어느 정도 조금씩 할 줄 알았던 거 같다. 한 미국대사는 정말 한국어를 대화할 만큼 유창하게 해서 놀라기도 했다. 


9:30분에 인터뷰가 몰리다 보니 기다리는 시간은 대략 1시간 정도 서있어야 볼 수 있었고 우리 앞에 두 분이 리젝 되는 걸 보고 남편은 더 긴장을 했다. 우리는 금발의 여성대사였는데 다행히도 많이 물어보지 않고 서류를 꼼꼼히 보시곤 두 가지 질문을 하셨다. 


회사에서 얼마나 근무했냐고 물어본 후 미국에 나가서 직급이 어떻게 되는지 정도만 물어보고 바로 1주일 후에 비자를 송달받을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다행히 남편의 장기근속기간에 놀라워하며 리액션도 해주시고, 남편의 해외직급에 대해선 그레잇라며 웃으며 좋은 인상을 주어 남편의 긴장도를 낮춰줘서 고마웠다. 가족에겐 따로 질문이 없다더니 정말 하나도 없었다. 


남편은 한 달간 전쟁같이 준비한 비자가 무사히 나오게 되었다는 이야길 듣고서야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중국주재원으로 나갈 때와 다른 건 여행비자로 나간 후 현지에서 외국인출입국사무소를 통해 비즈니스 비자를 받아서 대사를 만나 인터뷰를 한다거나 따로 준비할 것들이 없었는데 미국비자는 실제로 영어인터뷰를 하고 준비할 자료도 많다 보니 남편에겐 엄청 부담이었던 게 느껴졌다. 


이렇게 우린 정말 미국에 가게 되었다.


*그리고 정확히 2일 후 금요일 우리는 택배로 비자를 받았다. 일양택배를 통해서 왔는데 집으로 배송받으면 각 비자당 18000원의 택배비가 든다. 이걸 알았더라면 일양로지스에 찾아가서 비자를 수령했을텐데 몰랐던 남편은 집으로 배송 요청을 했고 우리는 고스란히 36000원의 택배비를 내어드렸다. 회사에 청구되나요 ㅠ_ㅠ




우리에게 2막이 펼쳐지는 하루였다. 중국에서 6년을 지내면서 배운 것은 가족이라는 울타리의 소중함과 오롯이 혼자 일어서는 방법이었다. 나의 하나아_루츠키와 남편과 내가 우리의 울타리 안에서 서로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알게 했고, 아이들이 떠나면서 스스로 일어서는 방법을 알려주었던 베이징이었다. 


미국에서의 시간은 또 삶을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상상도 할 수 없지만 우리가 바라는 것은 단 하나이다. 아무 일 없이 잘 지내는 것. 평안하고 평범한 매일을 보내는 것. 가장 어렵고도 가장 바라는 삶이다.

아! 진짜 영어공부 빡세게 해야겠구나라고 느꼈다 ㅜㅅ ㅜ!



삶은 여행, 어디서든 여행하듯 살아가는 마음가짐으로 살고 있어요 

이번엔 미국에서 생활여행자로 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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