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한 미래를 싫어하는 편이라 전세 빠르게 뺐습니다.
- Bob Ross - Mountain Ridge Lake (Season 23 Episode 3)
항상 반대되는 것이 필요합니다. 어둠과 빛, 빛과 어둠. 그림에는 항상 이 둘이 있어야 하죠. 빛에다가 빛을 더하면 아무것도 생기지 않습니다. 어둠에 어둠을 더해도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없죠.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끔씩 슬픔이 있어줘야 행복한 시기가 올 때, 느낄 수 있죠. 저도 지금은 행복한 시기를 기다리는 중입니다
아마도 코로나때문에 기약없는 삶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긴게 분명했다.
중국 주재원시절 코로나가 창궐했고 회사의 명령에 따라 난 고양이들만 중국 집에 두고 한국으로 복귀하게 되었다. 말 그대로 우리 고양이들만 남겨졌다. 언제 돌아올 수 있을지 몰라 수소문끝에 집주변에 남아계신 한국분들의 도움으로 여러분들이 돌아가면서 집에 들어가서 아이들의 밥과 화장실을 정리해주셨다. 나중에는 외부인이 아파트 단지내로 입장하는것이 거절되어 다시 대서양 안에 사는 남아있는 한국분들을 수소문하다가 하우스 부동산 윤실장님의 도움으로 매일 올수 있는 중국아주머니도 구하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가 돌아갈 일정이 보이지 않았고 아이들은 우리가 없는 삶에 공포를 느낀 것 같았다. (아이들은 그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둘다 그 해 겨울 고양이 별로 돌아갔다.)
2주뒤 남편의 중국 복귀가 확정되면서 한시름 놓았지만 우리가 계획했던 한국집 매수와 인테리어때문에 한국에 남아있던 나는 3월 말 갑작스러운 중국의 Closing으로 중국에 돌아갈 수 없게되면서 기약없는 떠돌이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남편과 아이들은 중국집에서, 난 한국에서 갑작스러운 생이별을 겪으면서 혼란스럽고 고통스러웠다. 그 와중에 하루의 심장병 소식을 듣게되면서 난 좌절했고 삶의 바닥을 맛보게 되었다. 돌아가야하지만 갈 수 없는 현실이 너무 원망스럽고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무기력함에 우울증이 쓰나미처럼 덥쳐졌다. 그때부터 기약없는 불안정함에 대한 일이 생기면 그 상황으로 다시 재현되어 나를 옥죄고 숨을 막히게 한다. 트라우마가 생긴것이다.
남편이 출국하고 3월 5일부터 기약없는 삶이 다시 시작되었다. 언제 미국에 들어갈 수 있을지, 올해 안에 남편을 만날 수 있을지 모든 상황은 다시 물음표가 되었다. 상황이 더욱 불안했던 이유는 역전세장에 우리가 들어온 금액보다 1억이나 전세가 내려간 상황이었고, 전세 계약서를 쓰면서 그 사이 우리가 미국으로 주재원을 나가게되어 2년의 기간을 못채울것 같다고 집주인에게 말했지만 집주인이 계약기간을 지켜달라고하면 우리는 딱히 묘안이 없는 상태였다.
살던 곳이 신도시라 앞에 주상복합은 6월말 입주를 앞둔 상태였고 인근의 강남 개포동은 8월부터 11월까지 거의 6000세대가 입주를 앞둔 상태였다. 우리 전세값이면 개포동 신축에 들어갈 수 있는 돈이었다. (우리도 지은지 6개월도 안되었는데) 그래서 전세가 잘 빠질수 있을지 뒷 세입자가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상활이 되었다. 특히 우리집은 7층으로 저층인데다가 낮 2시에만 해가 잠깐 있을 뿐 앞동에 가려져 뭔가 애매한 집이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건 신축이고 민간 아파트라 아이들 물놀이수영장이 집에서 보이는 것과 집주인이 너무 고맙게도 1억을 낮춰 시장에 물건을 내놔준 것이었다.
다행이도 집주인이 전세가를 오픈하자마자 3월 10일경부터 매일 집을 보러오는 사람이 있었다 . 오픈하우스가 펼쳐지면서 나는 필요한 물건을 사재기 해야하는 상황이라 집은 매일 정리의 일환이 시작되었다. 가져갈 짐은 최대한 깔끔하게 보이고 꼼꼼히 볼 수 있는 동선을 만드는게 어려웠고, 그 사이 팔고 갈 것들이 비워지면서 삶의 질이 점점 하락하기 시작했다.
시작은 세탁기였다. 미국과 수압방식이 달라 세탁기를 가져갈 수 없다고 해서 언제 팔릴지 몰라 빠르게 당근에 내놓은 세탁기는 금새 팔렸고 집이 언제 나갈지 모르는 상황에서 세탁기가 없으니 여간 불편한게 아니었다. 집앞에 크린토피아에 빨래방이 같이 있어서 그나마 불편함을 감수하고 빨래를 할 수 있어서 감사했다
그리고 가전 중에 가장 팔리지 않았던건 식세기였다. 펌프방식이 달라 사용할 수 없는 가전이라 가져갈 수도 없는데 가격을 낮춰도 팔리지 않았다. 부모님댁에 보내고 싶었지만 귀촌을 하신 상태라 이동비가 더 들었고 결국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었던 언니네집으로 보내게 되었다.
보러오는 사람은 많았지만 계약은 쉽사리 이뤄지지 않았고 피말리는 시간이 계속 되었다. 집앞 주상복합이 입주하기 전인 6월전에 이사를 하고 싶었던 나는 부동산 실장님들께 돌아가며 연락을 하기 시작했다. 급한건 나니까. 다행히도 주상복합의 전세시세는 우리보다 5천 가량 높았다.
기약없이 매일을 보냈다. 불안하면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 타입이라 그 알 수 없는 몇주가 너무 스트레스가 되었다. 결혼 10년차에 이미 중국주재원도 다녀온 상태라 남편곁에 붙어있어야하는 타입도 아니었고, 4월에 있을 중문학과 중간고사를 앞둔 상태에 내고 싶던 제과책을 전자책으로 준비하고 있어서 그것들을 만들면서 내 삶을 살아가면 되는 상황이었는데도 불확실한 상태는 확실히 날 옥죄였다. 겉으로는 잘 사는듯했지만 불안정함이 주는 불안함을 이겨내기 힘들었다.
가능한한 많은 부동산에 물건 내놓기 (실장님께 비번 알려드려서 언제든지 오픈하우스)
매일 집 깔끔하게 정리 & 환기 & 청소하기 (제일 힘들....)
우리집만의 특장점 부각하기 (쇼파 위치를 바꿔보았더니 아파트뷰가 가려지고 정원뷰가 생김)
집에 오신 부동산 실장님들께 간식이나 음료 기프트콘 쏴드리기
일주일에 한번씩 집 안나간거 부동산에 노티하고 빨리 빼달라고 문자보내기
누군가 나에게 그런 얘길 했다. 운이없는 사람은 아니라서 순조롭게 잘 풀릴 줄 알았어. 라고. 난 나대로 매일을 치열하고 선택의 기로와 불안감에 떨면서 사는데 그렇게 보일 수도 있구나 했다. 내가 원하는 삶의 방향이 아닌 어쩌다보니 가게되었던 삶들에 대해 다기 생각해보게 되는 문장이었다. 순조롭다는 말이 내가 아는 의미와 다르게 들렸다.
전세는 결국 3월 말에 다음 세입자가 나타나면서 나의 트라우마는 잠재워졌다. 한달도 안되는 3-4주의 시간동안 지옥같은 시간을 보낸나는 얼마나 약한 사람인지 다시금 깨달았다. 펜트리가 없고 낮은 층인데다 앞뒤동으로 막혀있는 동이라 걱정했지만 그런 집도 임자가 있었다. 내 생각엔 쇼파위치를 바꿔서 보여주었던 공원뷰가 맘에 들었던거 같다. 원래 하나가 이뻐보이면 다른건 눈에 안보이니까. 5월 4일 전세집을 빼기로 하고 한달동안 짐정리와 해외이사 그리 중간고사를 마쳐야하는 일정이 시작되었다. 전세로 입주아파트에 들어오면서 많을 걸 배우게 되었다. 언젠가 돌아갈 한국에서 집주인으로서 우리가 입주할때 어떤걸 체크해야 하는지, 전세가 들어오고 나갈때 행정처리를 어떻게 해야하는지, 만약을 대비한 하락장에 잔고 관리를 어떻게 해야하는지, 전세들어오는 세입자를 어떻게 받아야할지 많은걸 배웠던 시간이었다. 나도 하남집주인같은 긍정적이고 여유있는 집주인이되어야할텐데 라는 생각을 많이했다.
이제 미국에 가면된다. 언제?
삶은 여행, 어디서든 여행하듯 살아가는 마음가짐으로 살고 있어요
이번엔 미국에서 생활여행자로 살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