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나 풀이 좀 죽는다.
- 꽃이 좀 풀 죽어있다고 해도 꽃이지.
- ...
- 물 좀 주면 살아나는 거 아니냐.
- 아아, 내가 이 맛에 풀 죽어 있지!
익숙해져 버린 길을 걷는 건 지루하고 덧없지만 새로운 길을 찾아 걷는 것도 불안하고 무서워 결국 또 아는 길로만 걸으려는 나를 본다. 경험해 본 것만이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나쁜 습관. 겪지 않아도 될 일은 죽어도 겪어보지 않으려는 욕심. 모든 것에는 정답이 있을 거라 믿는 우매함. 다 태워 없앤 줄 알았는데 시커먼 잿가루가 남았다.
약하다 인정하지 않는 버릇은 우습게도 가장 약할 수밖에 없던 나이부터 자랐다. 내가 살던 세상은 약함은 약점이고, 약점은 감추는 것이라 가르쳤다. 나는 학습이 빨랐고, 느닷없이 변검술의 달인이 된 것이다. 겁을 먹으면 위장부터 뒤틀렸고, 불안하면 손톱을 뜯었지만 얼굴만은 평온했다. 다만, 부작용은 존재했다. 가면을 벗은 나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어느 날은 이불을 뒤집어쓰고 우는데 얼굴은 웃고 있더라.
또 언제는 지난 부정을 밑거름 삼아 긍정이란 씨앗과 함께 여기저기 뿌려놨는데 가는 비만 내려 목말라죽을 성싶을 때가 있었다. 종종 해충이 기어 나와 겨우 튼 싹을 뿌리부터 갉아먹어 놓으면, 건강한 흙으로 덮고 고르기까지 또 한참의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땅을 보는 버릇이 그때 싹텄던가. 그즈음 나는 생각했다. 아, 혹시 나는 어른이 되고 나서도 이렇게 살고 있을까. 고르지 못한 땅에 유리조각이라도 있을까 전전긍긍하며 한껏 고개 숙여 걷고 있을까. 그토록 혼자일까.
다행이다, 열아홉의 네가 부러워할 지금이라서.
충분히 행복해졌다고, 충분히 강해졌다고 확실하게 말해줄 수 있는 지금의 나라서.
삼십 대의 너에겐 하늘이 예쁘다며 고개 들어 보라 말해주는 사람이 있다.
뒤를 보는 것을 후회라 말하던 너에게, 그것은 추억이라 알려주는 사람이 있다.
느린 너의 손을 잡아끌어주고, 지친 등을 밀어 나아가게 하는 사람도.
이제는 변검술 없이도 강해진 널 보며 부러움과 질투 대신 기쁨을 말하고
지루하고 덧없던 고행을 흔쾌히 함께하며 이것은 여행이다 말해준 사람도.
앞으로의 풍경에 영원토록 새겨졌으면 하는 사람도.
그러니 그까짓 잿가루 또 털어내면 그만이다. 오늘 이만치 풀 죽어있었으면 충분하다.
곧 비가 내리고, 싹이 틀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