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겨지지 않는 것이 어디 있겠나

by ami


구겨지지 않는 것이 어디 있겠나. 마음이란 구겨질수록 단단해지는 법이다. 찢어져 생긴 틈으로 구태여 빛을 찾아야 하는 법이지. 손 때 묻지 않은 편지지, 흰색 스케치북, 눈물 자국 없는 페이지란 너무 슬픈 말이니까.


무지했기에 경험이 두려웠다. 교훈은 늘 상처와 고통 뒤에 따랐고. 모순적이게도 누군가의 방패가 된다는 것은 낭만이었다. 미안하다는 말의 꼬리를 물고 따라오는 다정히 달았을까. 영원의 탈을 쓴 찰나였다는 것을 알았다면 달랐을까. 충혈된 마음으로 비탈길을 굴렀다. 바위가 되겠지 싶은 마음에.


산짐승의 기댈 곳이 되어주고, 제비의 먹는 샘물이 되어주던 나약. 결론적으로는 사랑이라 믿었던 비약. 떠밀려 내려오다 보니 오늘에 다다랐다. 얕은 눈가 주름사이에 넉살을 낀 채 세상을 본다.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노래를 듣는다. 언젠가 그들이 까무룩 잊어버리면 다시 불러주기 위해.


꾸깃꾸깃 뭉쳐놓은 백지장이 제법 무거워졌어. 고맙다. 진득이 엉겨 붙어있는 사람들아, 함께 살아내주어 가만히 벅차다. 엉겅퀴를 손에 들고 흐드러지게 웃을 수 있다면 그뿐이니 오롯이 존재한다면 그뿐이지. 이제는 우리를 우리라 부르고 아픔을 아픔이라 하며 사랑을 사랑으로 받고. 먼지가 쌓여 상해버린 마음을 급히 삼키려다 체하지 않아야지.


기다렸던 만큼 행복히도 울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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