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삶은 유죄인가요, 무죄인가요.
[독후감] 심판(저, 베르나르베르베르)
나의 삶을 심판하게 된다면 유죄일까, 무죄일까. 몇 년 전 웹툰 기반 영화인 ‘신과 함께’에서 이승에서 살아온 삶에 대한 심판을 받는 장면을 보고 한동안 이런 한갓진 소리를 하고 다녔던 적이 있었다.
지금 와 생각해 보면 한 사람의 생이란 그 사람을 둘러싼 여러 사람의 생이 뒤섞여 시시때때로 모양을 달리하며 흐르는 거대한 물줄기와 같다고 느껴진다. 명확하게 너와 나의 삶이 어디서 어디부터까지 인지 구분되지도 않고, 보이는 말과 행동 그 기저에 깔린 의도와 맥락은 쉬이 읽혀 지지도 읽을 수도 없는 영역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는 한 사람의 인생에 대해 단편적이고 조각난 정보들을 이리 꿰고 저리 꿰어 천 피스 퍼즐 중에 단 다섯 피스만을 맞추고도 다 안다고 말하는 오류를 자주 범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천상계에서 심판하는 삶은 어떨까? 나의 선택에 깔린 의도와 고민, 추악함과 선함의 무게를 모두 알고 있고, 그 선택에 의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훤히 꿰뚫고 있는 신이 심판하게 되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희곡인 ‘심판’은 지상에서 판사였던 아나톨 피숑이 폐암으로 사망하고 천상의 재판대에 오르게 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천사 가브리엘, 변호사 카롤린, 베르트랑 검사가 아나톨 피숑의 삶을 심판하게 되며, 우리들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아나톨 피숑은 자신이 좋은 학생, 좋은 시민, 좋은 남편, 좋은 가장으로서 살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천상계에서 죄를 판단하는 기준은 본인을 행복으로 이끄는 선택을 했고, 그 선택에 충실했는지의 여부를 따진다. 아나톨은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보다는 적당히 자신과 맞을 것 같은 배우자를 선택해 평생토록 아내에게 권태로움을 느꼈고, 배우로서의 자질을 타고났고 연극을 사랑했지만, 안정적인 삶을 위해 연극을 업으로 삼지 않았다는 이유로 비판을 받는다.
베르나르베르베르가 독자들에게 주고 싶은 메시지는 정확해 보인다. ‘당신을 행복으로 이끄는 선택을 하고 있나요? 삶 속에서 행복을 충분히 누리고 있나요?’라고 이야기하는 듯하다.
아나톨의 삶을 보고 ‘당신은 유죄입니다. 행복이 이끄는 선택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싶다. 보통 우리는 아나톨과 같이 현실과 타협하는 선택들을 하게 된다. 그 무수한 선택 속에서는 본인이 행복해지고 싶다는 강한 욕망을 쉽게 눌러버릴 더 중요한 요소들이 많을 것이다. 나의 소중한 사람들의 배를 곯게 하기 싫어 출세가 보장되지 않은 불확실한 길을 포기하고 안정적인 직장을 얻었을 사람들도 무수히 많았을 테니. 과연 그런 사람들에게도 본인의 순수한 욕구를 무시했다는 명목으로 유죄를 내릴 수 있을까?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것은 용기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사랑하는 이들이 삶에서 더 소중했던 사람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었다. 본인의 행복보다 사랑하는 이의 안위가 더 소중했고, 그 선택에 억울함은커녕 깊은 안도를 느끼는 사람들도 분명히 존재할 테니 말이다.
이런 생각들을 하고 나면 죽고 난 후 유죄를 받더라도 후회는 없을 것 같다.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나의 순수한 욕망을 애써 무시한 죄로 다시 태어나는 형벌을 받게 되더라도, 또다시 같은 선택을 반복하며 살 거라 예상해 본다. 나의 행복만을 위한 순간을 살기도, 사랑하는 이의 행복을 지켜주는 순간을 살기도 하면서 어느 한쪽으로 무너지지 않도록 균형을 맞춰가는 삶의 태도가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