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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눈보 Feb 20. 2024

생각은 단순하게, 발걸음은 씩씩하게.

[독후감] 몬테로소의 분홍벽(저, 에쿠니 가오리)

  하스카프는 조금 게으르고 낙천적인 고양이다. 여느 때처럼 단잠을 자다 깬 하스카프는 이내 알게 된다. 늘 꿈에서 보던 아름다운 몬테로소의 분홍벽으로 가야 할 때가 지금이란 것을. 자신과 늘 함께였던 부인과 애틋한 작별인사를 나누고 호기롭게 목적지를 향해 발걸음을 내딛는 하스카프. 몬테로소의 분홍벽으로 가는 길은 만만치 않은 과정이었다. 고독한 예술가의 함께하자는 제안을 뿌리쳐야 했고, 미칠듯한 배고픔을 이겨내야 했으며, 비가 오면 비를 맞고, 차에 몰래 타기도 하는 고단한 여정이었다. 그렇게 몬테로소의 분홍벽에 도착한 하스카프는 분홍벽에 스며들며 행복함에 취한다.

  <냉정과 열정사이>, <도쿄타워>로 유명한 에쿠니가오리의 작품이다. 이 책은 그림책으로 엉뚱한 상상력과 귀여운 고양이의 매력이 돋보이며, 페이지마다 다채로운 색감의 일러스트 덕분에 이야기가 더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살아가면서 하고 싶은 게 정확하게 무엇인지 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꼭 이뤄내고야 만다는 것은 실로 엄청난 힘이다. 사람들은 하스카프를 늘 잠만 자는 게으른 고양이라고 불렀지만, 꿈을 꾸는 동안이야 말로 앞으로의 계획을 준비하는 시간이었다는 건 하스카프만 아는 비밀이다. 하스카프는 수많은 유혹과 슬픔, 고단함을 온몸으로 느끼지만 머릿속엔 오직 하나, ‘몬테로소의 분홍벽에 꼭 가야 해.’하는 생각뿐이었다. 살고 싶은 대로 살기 위해선 단순해져야 한다는 걸, 그래야 유혹을 잘 뿌리칠 수 있다는 걸 아는 현명한 고양이였다.

  책장을 덮고 나니, 나도 하스카프처럼 꿈꾸고, 단순해지고, 하고 싶은 건 하고야 말테야 하는 귀엽고도 단단한 생각으로 가득 차오른다. <반짝반짝 빛나는>이란 작품으로 스무 살 초반의 나를 울렸던 에쿠니가오리 작가는 서른의 마지막즈음에 다다른 나를 또 한 번 기쁘게 한다. 이제야 떠올랐다. 이 사랑스러운 특유의 문장들이 그리웠던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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