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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눈보 Sep 12. 2022

인생이 시트콤이라면

한 발자국 떨어져 보면 제법 웃긴 내 일상

"따르르릉" 전화벨이 한 번 울리면 두 번이 이어서 울리기 전 잽싸게 수화기를 낚아챈다. "네, 감사합니다. ○○○과, ○○○입니다." 습관적으로 붙이는 '감사합니다'의 진정성이 흐려진지는 조금 된 것 같다. 입안에 맴도는 인사 멘트를 높낮이 없이 기계적으로 말한다. 역시나 수화기 너머의 이름 모를 '민원인 1'은 화가 잔뜩 나있다. 이 '민원인 1'은 몇 달 전부터 본인 집 앞에 있는 작은 화단의 풀을 베어 달라는 민원을 성실하게 넣는 나의 단골 고객이다. 화단에 풀의 키가 10cm라도 넘어갈라치면 바로 불호령이 떨어진다. "빨리 베어주세요. 전화 안 줘도 알아서 딱딱 베어주면 안 돼요?"라는 뒷말은 긴긴 민원요구 끝에 자동응답 멘트처럼 이어 붙이는 추임새이다.


'여름철엔 하루만 자고 일어나도 무릎 높이까지 껑충 자라 있는 게 잡초인데 인력으로 할 수 없는 일을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에 약간의 억울함이 울컥 솟구친다. 그와 반대로 나의 입에선 "네, 접수됐으니까 빨리 처리해드릴게요." 하는 육성이 흘러나온다. 하지만 '민원인 1'의 인내심은 그렇게 길지 않다. 지금, 당장, 바로 내 눈앞에 있는 풀을 깔끔하게 베어주지 않으면 쫓아올 기세로 당장 처리하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전화를 끊고 나면 대체 무엇이 '민원인 1'을 저렇게 화나게 만들었을까 하는 근본적인 의구심도 살짝 든다.


이런 비슷한 종류의 민원을 숨 돌릴 여유 없이 연거푸 처리하고 나면 내 머릿속은 텅 비워져 있는 상태로 소란스러워진다. 비포장 도로를 달리는 빈수레처럼 탱탱 거리며 의미 없는 소음만 울렸다 없어지길 반복한다. 인류애가 더 사라지기 전에 휴식이 절실하다. 퇴근 후 집에 들어와 씻고 누워 텅 빈 눈으로 오늘 하루 있었던 일을 천천히 복기해본다. 그러다 별알간 풀을 베어 달라고 역정 내며 소리치던 '민원인 1'이 머릿속으로 쳐들어온다. 큰일이다. 불편한 손님인 '민원인 1'은 내 머릿속에서 방방 뛰고 화내며 내가 나가라고 할수록 더 신나게 돌아다니고 있다. '하, 별 수없지.' 하는 생각으로 기분 전환할 겸 고전 시트콤인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를 시청하기로 한다. 알고리즘이 레전드 편이라며 '못 말리는 노구 고집'편을 추천한다. 소파와 물아일체가 된 나는 몇 번 고쳐 눕다 가장 마음에 드는 자세를 찾아 웃을 준비를 마친 후 시트콤을 시청한다.


신구 할아버지는 짜장면 곱빼기를 다 못 먹고 남길 거라는 며느리의 말에 발끈하며 꾸역꾸역 마지막 한가닥까지 입안에 쑤셔 넣은 뒤 혼자 방에 가 소화제를 몰래 들이킨다. 또 지나가다 마음에 드는 의자를 주워오는데, 가족들이 의자 높이가 너무 높아 쓸모없다고 버리라고 하자 역정을 내며 기어코 식탁의자로 쓰겠다며 고집을 피우기 시작한다. 의자는 역시나 너무 높아서 앉으면 반찬도 잘 안 집어지고 찌개 국물도 질질 흘리게 되지만 불편해 보인다고 버리라고 만류할 때마다 화내며 꿋꿋하게 식탁의자로 쓴다.


나는 시트콤을 보며 5초마다 배경으로 깔리는 웃음소리를 따라 깔깔대며 따라 웃고, 신구 할아버지가 말도 안 되는 고집을 피우는 장면마다 빵빵 터진다며 신구 배우의 연기력에 감탄한다. 그러다 문득 저 상황이 실제고 내가 며느리였다면? 아들이었다면? 자신의 시아버지나 아버지가 매사 고집 피우고 떼쓰고 심심하면 역정 내는 게 다반사라면 얼마나 고단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순간, 내게 툭하면 풀을 베어달라고 화가 잔뜩 난 채 전화하는 단골 고객 '민원인 1'을 응대하는 내 모습을 배경으로 웃음소리 효과를 깔았다면 시트콤 한 편 뚝딱이겠는데 하는 생각까지 이어진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Life is a tragedy when seen in close-up, but a comedy in long-shot.
- 찰리 채플린 -


찰리 채플린의 명언이 떠올랐다. 혹시 내가 삶을 너무 가까이에서 들여다보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 무엇이든 너무 가까이 두면 전체를 볼 수가 없다. 그럴 땐 몇 발자국 뒤에서 상황을 관조해보는 게 어떨까. 웃음소리 배경도 깔아 두면 더욱 좋을 것 같다.


다시 민원인을 응대하던 그 시각으로 돌아가 본다. 고집 피우는 신구 할아버지의 탈을 쓴 민원인 1, 2, 3.... 을 연거푸 응대한 후 흐린 눈으로 머리를 긁적이는 나를 비추던 장면이 깔깔거리는 웃음소리와 함께 페이드 아웃되며 오늘 하루 시트콤이 마무리된다. 그러자 어느새 머릿속에서 방방 뛰며 괴롭히던 '민원인 1'이 사라졌다.


오늘도 즐거웠던 하루였구나. 심플하게 기억되는 하루. 몇 발자국 뒤에서 지켜봤던 하루.

그렇게 인생을 멀리서 희극으로 보는 연습으로 하루를 마무리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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