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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눈보 Sep 27. 2022

헤어진 그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사랑을 끝내며 갖는 애도 기간에 대하여

무엇이든 과몰입은 해롭다. 아무튼 그렇다. 요즘 <환승 연애 2>에 푹 빠져 있는데, 이 프로그램은 과거에 다양한 이유로 헤어졌던 커플들이 한 숙소에 모여 지내면서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가는 관찰 연애 프로그램이다. 남편은 남의 연애가 뭐 그리 재밌냐며 사람들 반응까지 챙겨보는 나를 이해 못 하는 눈치다. 하지만 재미 중의 재미는 남의 연애 이야기 아닐까 싶다. 나의 연애일 땐 객관적으로 볼 수 없었던 면들을 남의 연애라는 유리창을 통해 비춰보며 자신의 연애에 대한 반성, 후회, 공감과 같은 다양한 감정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려주는 것 같다.


아무래도 헤어진 X들끼리 모여 지내다 보니, 미련이 남은 출연자들이 과거 연인과의 감정을 청산하지 못한 채 다시 재결합하고 싶어 하는 상황도 종종 연출된다. 그렇게 미련이 많이 남아 붙잡지 못해 우는 사람과 붙잡히지 않으려 도망치는 사람, 그 둘의 팽팽한 줄다리기를 보다 이내 과거의 나를 소환하고야 말았다.


'누군가'와 헤어진 후 함께했던 순간들을 회상하다 보면 꼭 힘들고 어두웠던 기억은 무거운 성질 탓에 밑으로 가라앉고, 즐겁고 행복했던 순간들은 가벼워 계속 계속 위로 떠오른다. 그러다 생각의 끝은 '누군가'와 함께했던 순간들이 대부분 즐거웠고, 유익했으며, 나를 기쁨으로 이끌었구나 하는 거대한 착각의 풍선으로 부풀려진 채 종결되기에 이른다. 그 착각의 풍선은 천장 위에 둥둥 떠다니며 '누군가'와 함께 행복했던 영상을 무한 반복으로 재생시켜준다. 그러다 깨닫는다. '다시 만난다면 행복했던 그때의 나와 그의 표정을 되찾을 수 있겠구나!'


'우린 남들과는 다르다.', '이번엔 다르다.'라는 이 거대한 착각은 다시 '누군가'를 만나지 않고서는 절대 깨지지 않는 명제로 남는다. 그렇게 다시 재회한 둘은 그들 사이에서 끝끝내 풀지 못했던 근본적인 문제에 금세 봉착하게 된다. 그리곤 '아, 우리가 이래서 헤어졌구나.' 하는 간단명료한 깨달음을 얻고 착각의 풍선을 거침없이 터트린다. 이미 결말을 함께 본 관계는 앞으로의 이야기보단 알아버린 결말을 향해 가는 길이 더 쉽다는 사실을 한 번 더 깨닫고 짧게 쓰인 책을 성급하게 덮어버린다.


이런 미친 짓을 반복하다가 문득 생각한다. 과거의 나와 '누군가'는 헤어짐과 동시에 관계가 종결된 이상 사망선고를 받은 게 아닐까 하는. 그래서 연인 관계가 종료되면 연인으로서 잠시나마 함께 살았었던 나와 '누군가'를 온전히 떠나보내 줄 수 있는 애도기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같이 살았던 그 시간을 충분히 떠올리고, 슬퍼하며, 감정의 밑천까지 다 드러난 나를 마주하고, 이내 스스로 일어날 수 있는 힘을 길어 올릴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 주는 건 참 중요하다고 말이다. 때론 나의 슬픔과 상실감을 내가 아니면 누가 알아줄까 하는 지극히 기본적인 생각이 도움이 될 때가 있다.


충분한 애도기간은 앞으로 찾아올 인연들을 어떻게 마주 할지에 대한 단서를 준다. 과거의 나를 몇 발자국 떨어져 볼 수 있게 해 준다. 그리고 아팠던 기억과 얼룩진채로 표류했던 마음 잔해들을 그 자체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해 준다. 또 성급하게 구멍 난 마음을 메우기 위해 다른 이의 손을 대충 잡아 끝이 보이는 결말을 향해 전력 질주하지 않도록 막아준다.


그리고 난 오늘도 방구석에서 <환승 연애 2>를 보며 생각한다. 과거의 연인과 다시 시작하기 위해선, 애도기간을 끝낸 채 새로운 사람을 다시 알아간다는 마음가짐으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그렇게 혼자만의 참견을 마치며 시청을 마무리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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