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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잊쑤 Oct 31. 2024

5월 : 친구가 결혼한다 (2)

mayo : 절교, 이제야 책의 마침표를 찍어봅니다.

'친구가 결혼한다'

나는 방점을 '친구'에 찍어 이야기하려 한다.



나의 마음에는 두 개의 공간이 있다.

누구든지 들어올 수 있는 '환영의 광장', 아무나 들어올 수 없는 '비밀의 정원'


'환영의 광장'에는 나와 자그마한 인연이라도 맺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여있다.

여기 있는 사람들과는 둥글둥글하게 잘 지낼 수 있지만, 깊은 관계는 맺지 않는다.

그래서 여기 있는 사람들에게 받은 상처는 금방 아문다.

사람들과 두루두루 잘 지내는 이미지를 유지하면서 마음의 상처를 쉽게 받는 내가,

나의 마음을 방어할 수 있는 요충지이다.


'비밀의 정원'에는 나와 깊은 관계를 맺은 특별한 사람들만이 들어올 수 있다.

이곳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들을 충족해야 한다.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야 하며, 회피형인 내가 몇 번 도망을 가더라도 그 자리에 있어 주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리고 내가 나의 심연을 보여줘도 되겠다는 확신이 생기게 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굉장히 이기적인 조건들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굳이 여기에 들어올 사람들을 구하지 않는다.

'비밀의 정원' 멤버였지만 나에게 큰 상처를 주고

지금은 '환영의 광장'에서도 퇴출당한 친구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이 친구와는 고등학교 시절 같은 학원에서 만났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나와 마음이 잘 맞았고, 그래서 언젠가는 나의 '비밀의 정원'에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일 것 같았다.

고등학교 졸업 후, 우리의 삶은 정반대로 흘러갔다. 나는 하는 것마다 실패를 했지만, 친구는 하고 싶은 것들을 하나둘 이뤄가고 있었다. 내가 우울한 마음을 조금씩 꺼낼 때마다, 친구는 자신의 즐거운 마음을 꺼냈다. 혹시 내가 친구의 즐거운 마음을 보며 기분이 상하거든, 그것은 온전히 나의 열등감 때문이라고 스스로를 질책했다.


그러나 일은 나의 대학 합격 소식을 전할 때 일어났다.

성인이 되고 처음으로 이룬 합격이기에, 그동안 나를 응원해 주었던 그 친구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했다.

그런데 돌아오는 반응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내가 대학을 가봤잖아, 대학은 갈 필요 없어. 시간낭비 하는 거야.

항공경영과는 날씬하고 예쁜 얘들이 가는 곳인데, 너는.... 나이도 많잖아, 안 창피해? "

이 말을 들은 후에 그 친구와 나눈 대화는 잘 생각나지 않는다.

다만 '이게 뭐지?'라는 생각으로 가득 찬 머리를 손으로 받치며 집으로 돌아온 것만 기억이 난다.


이 친구의 일들이 꼬이기 시작한 때부터, 그가 내뱉기 시작한 비꼬는 말들이 쌓이고 쌓인 상태였다.

나도 그 불안하고 초조한 상태에서는 마음처럼 말이 곱게만 나오지 않는 것을 경험했었다.

그래서 친구의 비꼬는 듯한 말들에 큰 상처를 받지 않고 이해했다.

 

그런데 내가 얼마나 대학을 가고 싶어 했는지, 내가 얼마나 '성공'에 목말라했는지를 그 누구보다도 가까이에서 지켜본 친구에게 들은 예상치 못한 회의적인 말들은 나의 서운함을 폭발하게 했다.

당장 절교하고 싶었지만, 그 친구와의 추억들이 나를 붙잡고 달래주었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코로나로 인해 학교에 가지 못하는 나를 보고는

"거봐. 너는 학교에 가면 안 되었다니까?

오티도 못하고 엠티도 못 가는데 굳이 왜 대학에 있어?내말 들었으면 시간 낭비 하지 않았을 텐데"


이제는 상처로부터 나의 마음을 보호해야 할 때임을 자각했다.

그래서 나는, 그 친구를 '비밀의 정원' 뿐만 아니라 '환영의 광장'에서도 내쫓았다.


시간이 꽤 지난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생각을 해보았다.


그 친구의 모든 말들이 나를 깎아내리기 위해 한 말이 아닐 수 있다.

자존감이 낮아진 내가, 내 마음을 방어하겠다고 한껏 확대해석 해서 들은 것일 수도 있다.

만약 내가 그 친구에서 "너의 말들이 나를 깎아내리기 위해 하는 것처럼 들린다."

라고 솔직하게 속마음을 털어놨더라면, 어땠을까?

우리 사이에 쌓인 시간과 추억이라면 충분히 서로의 마음속에 남아있는 서운함들을 토닥일 수 있었을 텐데...


그 당시에는 그 친구의 과실이 100%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보니 나의 과실이 없다고만은 말할 수 없다.

나도 이기적이게 내 마음만 중요하게 여겨서, 대화는 해볼 생각조차 않고 그냥 끊어버렸으니까 말이다.


지금까지 그 아이와의 추억들이 담긴 책을 마무리 지어야 함을 알았지만,

마음 한켠에 남아있는 알 수 없는 묵직한 무언가 때문에 마무리 짓는 것을 미루고 미루어 왔다.

하지만 '나 또한 이 관계의 종지부에 책임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됨'으로써,

이제는 담담하게 이 책의 마무리를 찍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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