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 친구가 결혼한다 (2)

mayo : 절교, 이제야 책의 마침표를 찍어봅니다.

by 잊쑤

'친구가 결혼한다'

나는 방점을 '친구'에 찍어 이야기하려 한다.



나의 마음에는 두 개의 공간이 있다.

누구든지 들어올 수 있는 '환영의 광장', 아무나 들어올 수 없는 '비밀의 정원'


'환영의 광장'에는 나와 자그마한 인연이라도 맺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여있다.

여기 있는 사람들과는 둥글둥글하게 잘 지낼 수 있지만, 깊은 관계는 맺지 않는다.

그래서 여기 있는 사람들에게 받은 상처는 금방 아문다.

사람들과 두루두루 잘 지내는 이미지를 유지하면서 마음의 상처를 쉽게 받는 내가,

나의 마음을 방어할 수 있는 요충지이다.


'비밀의 정원'에는 나와 깊은 관계를 맺은 특별한 사람들만이 들어올 수 있다.

이곳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들을 충족해야 한다.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야 하며, 회피형인 내가 몇 번 도망을 가더라도 그 자리에 있어 주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리고 내가 나의 심연을 보여줘도 되겠다는 확신이 생기게 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굉장히 이기적인 조건들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굳이 여기에 들어올 사람들을 구하지 않는다.

'비밀의 정원' 멤버였지만 나에게 큰 상처를 주고

지금은 '환영의 광장'에서도 퇴출당한 친구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이 친구와는 고등학교 시절 같은 학원에서 만났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나와 마음이 잘 맞았고, 그래서 언젠가는 나의 '비밀의 정원'에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일 것 같았다.

고등학교 졸업 후, 우리의 삶은 정반대로 흘러갔다. 나는 하는 것마다 실패를 했지만, 그 친구는 하고 싶은 것들을 하나둘 이뤄가고 있었다. 내가 우울한 마음을 조금씩 꺼낼 때마다, 그 친구는 자신의 즐거운 마음을 꺼냈다. 혹시 내가 그 친구의 즐거운 마음을 보며 기분이 상하거든, 그것은 온전히 나의 열등감 때문이라고 스스로를 질책했다.


그러나 일은 나의 대학 합격 소식을 전할 때 일어났다.

성인이 되고 처음으로 이룬 합격이기에, 그동안 나를 응원해 주었던 그 친구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했다.

그런데 돌아오는 반응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내가 대학을 가봤잖아, 대학은 갈 필요 없어. 시간낭비 하는 거야.

항공경영과는 날씬하고 예쁜 얘들이 가는 곳인데, 너는.... 나이도 많잖아, 안 창피해? "

이 말을 들은 후에 그 친구와 나눈 대화는 잘 생각나지 않는다.

다만 '이게 뭐지?'라는 생각으로 가득 찬 머리를 손으로 받치며 집으로 돌아온 것만 기억이 난다.


이 친구의 일들이 꼬이기 시작한 때부터, 그가 내뱉기 시작한 비꼬는 말들이 쌓이고 쌓인 상태였다.

나도 그 불안하고 초조한 상태에서는 마음처럼 말이 곱게만 나오지 않는 것을 경험했었다.

그래서 친구의 비꼬는 듯한 말들에 큰 상처를 받지 않고 이해했다.

그런데 내가 얼마나 대학을 가고 싶어 했는지, 내가 얼마나 '성공'에 목말라했는지를 그 누구보다도 가까이에서 지켜본 친구에게 들은 예상치 못한 회의적인 말들은 나의 서운함을 폭발하게 했다.

당장 절교하고 싶었지만, 그 친구와의 추억들이 나를 붙잡고 달래주었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코로나로 인해 학교에 가지 못하는 나를 보고는

"거봐. 너는 학교에 가면 안 되었다니까?

오티도 못하고 엠티도 못 가는데 굳이 왜 대학에 있어?내말 들었으면 시간 낭비 하지 않았을 텐데"


이제는 상처로부터 나의 마음을 보호해야 할 때임을 자각했다.

그래서 나는, 그 친구를 '비밀의 정원' 뿐만 아니라 '환영의 광장'에서도 내쫓았다.


시간이 꽤 지난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생각을 해보았다.


그 친구의 모든 말들이 나를 깎아내리기 위해 한 말이 아닐 수 있다.

자존감이 낮아진 내가, 내 마음을 방어하겠다고 한껏 확대해석 해서 들은 것일 수도 있다.

만약 내가 그 친구에서 "너의 말들이 나를 깎아내리기 위해 하는 것처럼 들린다."

라고 솔직하게 속마음을 털어놨더라면, 어땠을까?

우리 사이에 쌓인 시간과 추억이라면 충분히 서로의 마음속에 남아있는 서운함들을 토닥일 수 있었을 텐데...


그 당시에는 그 친구의 과실이 100%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보니 나의 과실이 없다고만은 말할 수 없다.

나도 이기적이게 내 마음만 중요하게 여겨서, 대화는 해볼 생각조차 않고 그냥 끊어버렸으니까 말이다.


지금까지 그 아이와의 추억들이 담긴 책을 마무리 지어야 함을 알았지만,

마음 한켠에 남아있는 알 수 없는 묵직한 무언가 때문에 마무리 짓는 것을 미루고 미루어 왔다.

하지만 '나 또한 이 관계의 종지부에 책임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됨'으로써,

이제는 담담하게 이 책의 마무리를 찍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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