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o : 친구는 많은 게 좋아요? 적어도 괜찮을까요?
유명한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서 찾아봤다.
누구는 많아야 한다고 하고, 누구는 적어도 된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이 문제는 정답이 없는 문제인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나의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 '친구'라는 가치관을 토대로
'많고' '적음' 중에 어느 방향으로 갈지를 고르기로 했다.
학창 시절에는 '친구는 많아야 좋은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소심한 성격 때문에 학기 초마다 친구를 사귀어야 한다는 압박감에 밤잠을 설친 적도 많았다.
어떤 친구 무리에 속하게 되면, 그곳에서 내쳐지지 않기 위해 애쓰곤 했다.
그 무리의 관심사에 관심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관심 있는 척하며 그 안에 섞여 있었다.
누군가가 무리 밖의 친구를 싫어하면, 나도 그 분위기에 맞춰야 했다. 그 친구가 나와 아무런 접점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친구를 무시하려 했다.
무리 안의 친구들에게 간간이 관심을 끌기 위해 개인적인 이야기들도 꺼내곤 했다.
혹시 그 구성원의 수가 홀수일 때는 그 안에서 나와 짝을 이루어줄, 좀 더 친한 친구를 만들어야 했다. 수학여행 가서 버스에 혼자 앉으면 창피하니까.
다행히도, 친구들의 눈치를 보며 무리에 잘 섞여 있었던 덕에 고등학교까지 왕따를 당하지 않고 졸업할 수 있었다. '친구는 많아야 좋은 것이다'라는 가치관을 잘 지키며 살았었다.
성인이 되면서 '친구는 적어도 좋다'라는 생각으로 바뀌게 되었다.
20대 초반, 친구들은 대학생활을 하고 나는 재수 생활을 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나 : 재수하기 너무 힘들다. 다른 사람들보다 뒤처진 것 같고,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으니 불안하다. 너희는 대학 가서 자유롭게 생활하고 좋겠다.
친구들 : 앉아서 공부만 하는데 뭐가 힘드냐. 대학 가봐라. 알바도 해야 하고, 과제도 해야 하고, 선배들도 챙겨야 하고, 동기들과도 잘 지내야 하고... 얼마나 신경 쓸 것이 많은데, 공부만 하는 때가 좋은 거야.
중고등학교 때는 주어진 환경들이 비슷했기 때문에 서로의 고충들이 비슷했었다.
하지만 성인이 되고 나선 각자 다른 환경에 놓이게 되니 서로의 고충들이 달라졌다.
언제나 자기가 경험하고 있는 고통이 제일 크다면서 자신의 이야기만 하기 바빴다.
그때의 나는, 내 고통이 제일 크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를 위로해주지 않는 친구들이 너무 미웠다. 만날 때마다 이런 대화들이 반복되다 보니 나중엔 혹시 자신들의 고충을 말하는 척하면서 은근슬쩍 나에게 자랑하는 것 같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그렇게 나에게 친구들은 부질없는 존재가 되었다.
이렇게 쓰고 보니 정말 부끄럽다.
그때는 나도 내가 이렇게 어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