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20대에 내가 마주한 10번의 달(月)에 있었던 일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들을 골라내어 이야기로 풀어낸다. 그 이야기를 마무리한 뒤에는, 그 순간을 통해 내가 얻은 깨달음이나 생각들을 적어 낸다.
5월에는 절친한 친구가 결혼을 했다. 그래서 친구의 결혼 이야기를 주제로 삼았다.
'친구'와 '결혼'
이 두 가지 소재 중에 어느 쪽에 방점을 찍고 이야기를 풀어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그러던 중, 한 번도 연애를 못 해봤으면서 나에게 결혼이라는 일이 찾아올까 하는 우울한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내가 결혼에 대한 로망은 엄청 많다. 문제는 나랑 결혼할 남자가 없다는 것...이지...
아무튼 고민 끝에, 친구에 방점을 찍고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20대 초반, 친구들이 내 힘듦을 위로해주지 않는다고 느끼면서, 그들이 더 이상 의미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애써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없으니, 서서히 멀어지자고 다짐했다.그런데 이런 생각을 하면서 정작 나는 반대로 행동하고 있었다.
친구들의 연락처를 지워야겠다고 생각했으면서도, 누구보다 꼼꼼하게 연락처를 백업해 두었다.
단체 톡방을 나가야 한다고 마음먹었으면서도, 카톡 왔다는 알림에 누구보다 빠르게 반응했다.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도 끊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면서도, 나를 팔로우하는 친구가 늘었나 줄었나를 매일 확인했다.
친구들과 멀어지겠다고 했으면서 친구들을 놓지 못하는 나의 행동을 보며,
곰곰이 친구들에 대한 나의 태도를 되짚어 보았다.
나의 모순적인 행동은, 나에게 관심을 줬으면 좋겠지만 그러지 않았던 친구들에게 혼자 삐져서 어리광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관심받지 못한 어린아이가 떼쓰는 것처럼 말이다. 모든 친구들이 나의 힘듦을 알고 싶어 하는 것도 아니고, 나에게 관심을 주고 싶은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이런 어리석고 부끄러운 행동과 생각을 했음을 깨닫고 나서, 친구들과의 심적으로 적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법을 연습했다.
친구란, 내가 힘든 것을 얘기하면 듣고 위로해 주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반대로 말하자면 나는 내 친구의 친구이기 때문에,
그가 힘든 것을 얘기하면 듣고 위로해주어야 하는 존재였다.
하지만 나의 힘듦만 늘어놓았지, 친구들의 힘든 이야기는 듣지 않았다.
어쩌면 누군가는 보다 더 힘든 상황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당시에는 자기 연민에 갇혀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마음조차 없었다.
친구 자격을 박탈당해야 했던 것은 나였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에 나의 이야기를 덜 하게 되었고,
그들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듣는 쪽으로 바뀌게 되었다. 그러면서 두루두루 친구들과 잘 지내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친구가 진지하게 물었다. "요즘은 괜찮아?"
사실 그때 나의 상황은 여전히 안 좋았지만, 웃으면서 괜찮다고 했다.
"힘든 일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
그 말을 듣고서야, 나는 나의 힘듦에 걱정하고 있는 사람도 있음을 깨달았다.
그 일을 계기로 '친구가 결혼한다 (2)'에서 말한,
나의 마음에 누구든지 들어올 수 있는 '환영의 광장'과
아무나 들어올 수 없는 '비밀의 정원'을 만들게 되었다.
'환영의 광장'에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친분을 유지하는 사람들이,
'비밀의 정원'에는 나의 이야기를 하고,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서로 깊은 유대감을 갖는 사람들이 모여있다.
'환영의 광장'에 들어올 친구들은 많으면 좋다.
세속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사회에 나가면 나의 인맥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비밀의 정원'에 들어올 친구는 적으면 좋다.
이들에게는 좀 더 많은 에너지를 쏟고 싶기 때문이다. 한정된 에너지를 소수의 친구들에게 집중해 줄 수 있다면, 그들이 느낄 내 진심도 더 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