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 가까이엔 책도, 거창한 이론도, 숱한 지식인의 말도 없었지만
페이스북이 알려준 1년 전 일기,
저는 이미 꿈을 이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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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막걸리를 마시던 아빠는 집 근처 연어 집에서, 가족끼리 처음으로 간 홍콩 숙소 1층 레스토랑에서- 와인을 주문하던 나를 두고. 그렇게 말했다. 딸 덕분에 이 와인을 마셔본다고.
운 좋게도 해외를 자주 돌아다닌 나는 한국과 멀어진 거리만큼 자유로웠지만 그만큼 무거웠다. 해외 한 번 가본 적 없던, 나를 제외한 우리 가족이란 존재는 나의 또 다른 선택지들을 막아설 정도로 무겁고 그만큼 소중했다.
장소에 따라 물 가격만큼 저렴하기도 한 고작 와인이라는 게 우리 가족에게는 거창했다. 그래서 해외로 기어코 가족 여행을 가야만 했고 그곳에서 나는 기어코 레스토랑에 가고 와인을 마시고 싶었다. 계급이란 게 뭘까. 거창한 이론을 두고 설명하지 않아도 이미 내 일상이 어떤지만 봐도 답할 수 있는 게 현실인데 왜 이리 덧붙여지고 덧붙여져야만 누군가의 삶에 가까워진다고- 사람들은 믿는 걸까.
직접 돈을 벌어서 쓴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아느냐고 물었던 게- 몇 년을 일한 공장에서 야간근무로 바뀌어도 그저 웃으며 일했던 엄마의 삶이었고. 일하면서의 실수가 바로 경찰서에 가는 게 아니라 상사에게 혼나는 거였으면 좋겠다는 게 버스운전을 내리 했던 아빠의 삶이었다.
이들 가까이엔 책도, 거창한 이름의 이론도, 숱한 지식인의 말들도 없었지만. 그래도 누군가에게 상처는 주지 말아야 한다고, 거짓말은 하지 말라고 했던- 너무나도 중요했던 가르침들을 주었던 내 곁에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여성학 석사과정을 희망하던 나의 졸업 후 계획은 동화를 쓸 수 있는 사람이었다. 수많은 이론들을 공부해 더 쉽게 말할 수 있는 사람.
거리에 나선 수많은 이들의 삶을 엮어내고 다시 그들에게 말할 수 있는 사람.
너무 쉬운 꿈이라고 생각했는데 너무나도 무겁고 어려운 꿈이라는 걸 다시 한번 실감하는 밤이다. 현실은 그렇게 만만한 언어로 풀어지지 않고. 나는 다시 혼자 서 있는 것만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