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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루아 Jul 07. 2020

남자들은 왜 긴 생머리를 좋아하는가.

나의 일상, 나의 생각

남자들은 왜 긴 생머리를 좋아하는가.     



남자들은 왜 여자들의 긴 생머리를 좋아할까? 이것은 우리 남편만이 해당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가깝게는 내 친구네 집에서도 들려오는 말이다. 그 남편 역시 친구의 머리를 자르지 못하게 한다고 했다. 앞머리 자르는 것조차 싫어했다는 말이 있다. 또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말들을 들어보면 남자들은 이상하게도 여자들의 긴 생머리를 좋아하는 것 같다.




한 달쯤 전에 머리를 잘랐다. 어깨를 살짝 닿는 단발이다. 자르기 전의 길이는 어깨를 넘어 가슴을 가릴 정도의 길이였다. 단발 길이가 되기까지 20년이 걸렸다. 20년을 지내는 동안, 가장 길었던 머리카락의 길이는 거의 허리에 닿을 정도였고 가장 짧았던 때는 어깨를 좀 넘을 정도였다. 이것은 다 남편 때문이었다.     


남편은 결혼을 해서 20여 년을 지내는 동안, 내 머리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했다. 내 머리카락은 내 몸에 붙어 있고 내 몸에서 영양분을 뽑아 먹고 있었지만, 내게 소유권이 있지 않았다. 내가 머리를 자르고 싶다는 말을 할 때마다 남편은 ‘이혼’을 거론했다. 정말 어이가 없었다.     


시부모님조차도 어쩌지 못할 정도였으며, 오죽하면 내가 친구에게 이렇게 말을 할 정도였다.     


“내가 쇼트커트를 했다? 그럼, 남편이랑 이혼한 거다.”     


말은 이랬지만 뭔가를 하지는 않았다. 그냥 내 한 몸이 불편을 감수하고 집안의 분란은 없이 살자,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말하고 끝내면 남편이 좀 억울해(?)할 수 있으니 한마디 보태자면... 아주 가끔씩 남편이 머리를 감겨주긴 했다.     


머리가 길면 머리를 감는 것조차 힘들다. 그래서 ‘자르지도 못하고, 머리 감는 것도 힘들고... 징징징’하면 가끔씩 머리를 감겨주긴 했다. 이 말을 들으면 모르는 사람들은 ‘어머, 부부 사이가 좋은가 봐요.’라고 말한다. 그렇지 않다. 이건 순전히 남편이 긴 머리가 좋아서 자르지 못하게 하려고, 한 번씩 달래주는 행동에 불과했다.    

      


참,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지 않은가. 내 몸에서 자라고 있는 머리카락에 내가 소유권 주장을 하지 못하다니 말이다. 그래서 반항을 했다. 나이는 먹어가는데, 머리카락을 내 마음대로 자르지는 못하더라도 염색은 내 마음대로 하자고 생각했다. 그래서 긴 머리의 반절을 염색했다.      


일단, 내 피부는 아토피라서 두피도 약하다. 그래서 머리의 반절만 하기로 했다. 그런데 기왕 하는 염색 좀 찬란한 색으로 하고 싶었다. 그래서 핑크색으로 도전했다. 먼저, 탈색을 하여 색을 빼고 핑크색을 입혔다. 하지만 동네 미용실의 한계는 핑크색이 아닌 빨간색을 만들어주었다. 그렇게 내 머리 반절은 빨강머리가 되었다.  

   

남편은 당연히 난리가 났다. 하지만 이미 색이 변한 뒤인 것을 어쩌겠는가. 돈까지 쓰고 난 뒤인데 다시 검은색으로 하는 것은 완전 돈만 버리는 일이 아니던가.(후훗!) 그때가 벌써 음, 5년쯤 전의 일이다.    

 

반항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염색이 한계를 드러낼 때쯤이면 난, 또 탈색과 염색을 했다. 한 1년을 주기로 반복했던 것 같다. 그렇게 올해가 되었다. 남편은 이제 나이도 마흔인데 염색도 그만하라고 했다. 이젠 염색도 못하게 하냐!     


사실, 나 역시 이제 슬슬 눈에 띄는 염색은 그만할 생각이었다. 내가 요 몇 년 사이에, 머리카락에 염색을 했던 것은 남편에게 반항을 하려는 이유도 있었지만, 내가 갖지 못했던 20대의 시간을 조금이나마 갖고 싶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남들보다 조금 이른 나이에 결혼을 해서 아이들을 키우느라 나의 20대는 온통 아이들밖에 없었다. 정신을 차리니 30대가 되어 있었고, 나의 20대는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억울하다기보다는 좀, 아쉬웠다. 나도 뭔가 남들처럼 기억할 수 있는 20대의 뭔가가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고 말이다.    

      

잠시 이야기가 옆으로 샜는데. 나이를 먹으니 이젠 남편의 완강했던 마음도 좀 해이해지는 것 같았다. 곧 죽어도 긴 생머리가 아니면 안 된다고, 자르기만 하면 이혼이라더니... 겨우 게임 한판에 무너져 버렸다.(훗!)        

  


결국 난, 결혼하고 20년 만에 머리를 잘랐다. 하지만 여전히 못마땅해하는 남편이었다. 볼 때마다 뭐라고 구시렁거리더니, 며칠이 지나고서야 조용해졌다. 그래도 아직, 한 마디씩 말한다. 저번 주에는 이런 말을 했다.     


“머리가 짧으니까, 이젠 정말 아줌마 같다.”     


남편의 말에 슬쩍 노려보았다. 하지만 이내 답했다.     


“그럼, 내가 아줌마지.”     


내 나이는 이제 누가 뭐래도 아줌마다. 내가 아무리 아줌마 소리가 듣기 싫다고 하더라도 아줌마라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나이가 마흔인데, 더구나 애가 둘인데 어디 가서 ‘나 아가씨야’ 하는 건 거짓말이지 않은가.     


남편, 당신 부인은 이제 아줌마 맞아. 그러니까 적응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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