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SEVILLA, SPAIN
스페인 한 달 여행을 계획할 때 많은 도움을 주었던 분이 있다.
현재 스페인에 살고 계신 가이드 겸 여행작가 G.
우리가 세비야에 도착했을 때 G는
'세비야는 정말 손바닥처럼 샅샅이 아는 데 같이 가지 못해서 아쉽다'며
맛집 리스트를 몇 개 찝어주었다.
그 중에서도 에스라바ESLAVA라는 곳은 그가 최고로 사랑하는 음식점으로 꼽은 곳.
지도를 보고 작은 골목길을 몇 개씩 지나 드디어 찾은 에스라바는 사람들로 북적북적,
완전 만원이었다.
이를 어쩌나.
밖에 나와있는 몇개의 높은 테이블에는 사람들이 따닥따닥 붙어 앉은데다
술판이 거하게 벌어진 것으로 보아 금방 자리가 날 것 같지가 않았고
실내 역시 빈 테이블은 커녕 웨이팅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려는 사람으로 꽉 차있었다.
약간 김이 빠졌지만 서둘러 실내 테이블 웨이팅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고
사람들의 팔과 팔 사이가 아슬아슬하게 간신히 떨어져있는 인구밀도 최고조의 바에
겨우 머리를 들이밀 수 있었다.
멍하니 바에 서있으니 웨이터가 혹시 와인을 한 잔 하시겠냐고 물어본다.
이왕 기다리는 김에 와인이나 마시자. 그러겠다고 하니
노란 콩처럼 생긴 작은 안주와 시원한 화이트 와인을 갖다준다.
와인 한 잔을 마시면서 주변을 둘러본다.
바에 와글와글 서있는 사람들을 하나씩 찬찬히 들여다보니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바에 서서 식사를 하고 있다.
타파스(작은 안주 겸 요리)를 앞에 놓고 와인을 마시면서.
그렇다면 우리도 뭔갈 시켜볼까.
바 위의 칠판에 분필로 빼곡하게 메뉴가 적혀져있지만
스페인어 까막눈이므로 웨이터가 영어 메뉴판을 갖다준다.
에스라바는 세비야 타파스 요리 대회에서 일등과 삼등을 차지한 메뉴를 만든 곳이다.
가장 유명한 그 두 메뉴를 시켰다. 가격도 타파스라 그런지 저렴하다.
2~3유로 정도? (한화 3000원 ~ 4500원)
그물버섯을 곁들인 보드러운 빵 위에 터질듯 탱글탱글한 계란이 올라간 메뉴 하나.
그리고 스페인 시인 베께르의 이름을 땄다는 시가처럼 생긴 바삭바삭한 타파스 하나.
둘 다 처음보는 음식이지만 생긴 것도, 맛도 모두 엄청나게 만족.
계란 타파스는 우아하고 부드러운 맛이 일품인데 입맛이 까다로운 M에게 아주 높은 점수를 땄고, 베께르는 손으로 집어 흰 소스에 찍어먹는데 둘이 나눠 먹어야하는게 아까울 정도였다.
위장에 최상급의 요리가 입장한 순간, 우리는 고삐가 풀려 실내 테이블이고 뭐고
일단 그냥 먹기로 했다. 앉지 못하면 어때, 자리가 좁으면 어때.
그 후로 꿀이 들어간 돼지바베큐, 차가운 토마토 수프인 살모레호를 더 시키고 와인도 리필.
돼지바베큐는 한국인한테 익숙한 맛인데 살짝 더 달짝지근하고,
올리브 기름과 하몽, 삶은 계란을 올린 살모레호는
뜨거운 남부 지방의 음식답게 온몸을 식혀준다.
이렇게 정신 놓고 먹는 중에 바에 가방을 걸 수 있는 고리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바에 오글보글 모여서 싸고 맛있는 메뉴를 이것저것 맛보는 재미라니.
프랑스에서의 경험으로 유럽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보다 느리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여기 바의 웨이터들은 이 수많은 사람들을 한 명도 놓치지 않고 착착 서빙하는 것이
프로도 이런 프로들이 없었다.
와인이 비어보이면 금방 물어보고, 주문한 것은 오차나 지연없이 재깍재깍 나온다.
시간이 꽤 지나서 드디어 실내 테이블에 자리가 생겼다.
우리의 이름이 불리자 옆쪽에 서 있던 아주머니가 같이 환호해주었다.
부에노! 노? (좋네요! 안 그래요?)
이미 바에 서서 같이 웨이팅을 한다는 이유만으로도 동지 같아진 사람들.
나도 엄지 손가락을 들어보이며 부에노! 하고 외쳐주었다.
아주머니와 그 친구들이 시원하게 웃는다.
아, 정말 세비야의 보석 같은 음식점. 부에노!
하드커버 양장본
식도락가 아미씨의 일러스트 기록
<EAT, DRINK, SPAIN!>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