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BELEM, PORTUGAL
대항해 시대가 시작된 곳이라 알려진 벨렝 지구.
세계사에서 한 번 들어봤을 법한 인도항로를 개척한 포르투갈의 항해사 '바스코 다 가마'와 엔리케 왕자가 그 주역들이다.
바스코 다 가마의 묘가 있는 벨렝 지구의 제로니무스 수도원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곳인 데다 마누엘 양식의 정수로 꼭 봐야할 건축물 중에 하나라고 들었기 때문에 벨렝을 방문하기로 했다.
호스텔 매니저에게 가는 길을 물어 기차를 타니 얼마 안 가 벨렝역에 도착했다.
스페인이나 포르투갈이나 한 낮의 태양은 강렬하기 이루 말할 수가 없는데,
하얀 제로니무스 수도원 건물 앞까지 도착하니 그 빛이 반사되어
제대로 눈을 뜨지 못할 정도였다.
수도원 안의 성당 내부와 수도원 건물은 듣던대로
정말 화려했고 눈이 닿는 모든 곳의 촘촘한 장식이 인상 깊었다.
강한 태양이 조금 누그러지고
건물 표면에 노란 빛을 더할 때까지 수도원을 찬찬히 즐긴 것까지는 좋았는데,
너무 여유를 부리느라 벨렝탑 내부 관람 시간을 놓치는 바보짓을 하고 말았다.
역과 가까운 수도원과는 달리 벨렝탑은 꽤 멀리 있었는데,
허탕을 치고 다시 역 쪽으로 걸어오려니 힘이 빠졌다.
겨우 수도원 근처로 다시 돌아온 우리는
벨렝 지구의 마지막 목적지를 향해서 발을 옮겼다.
벨렝이 유명한 또 하나의 이유는 에그타르트의 탄생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벨렝 관광의 종점을 1837년에 오픈한 원조 에그타르트 맛집으로 정했던 것인데,
더위에 한창 지친데다가 갈증도 너무 심해서 에그타르트에 대한 호기심은 증발.
거의 반 의무감으로 가게를 찾고 있었다.
그렇게 발견한 에그타르트 가게 파스테이스 데 벨렝Pasteis de Belem.
파란 차양이 달린 이 가게 앞에는 테이크 아웃을 하려는 사람들이 줄을 이루고 있었고
안에도 사람이 많아보였지만, 내부가 제법 크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에 과감하게 들어갔다.
(나중에 화장실을 찾느라고 돌아다녀보니 계속해서 더 큰 내부 홀이 나타나서 깜짝 놀랐다)
우리는 둘 다 단 것을 별로 안 좋아하는데다 디저트에도 큰 관심이 없어서
고민하다 에그타르트 세개를 시켰다.
각자 한 개 반씩 먹으면 되겠지.
아이스 커피 한 잔도 시켰다.
(다른 유럽 지역과 달리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더워서 그런지 얼음 넣은 커피도 잘 판다)
그리고 드디어 나온 에그타르트.
겉모습은 그냥 평범해보였다. 우리나라의 에그타르트 가게에서도 본 비주얼.
한 입 베어먹는 순간 바삭, 하고 겉의 크러스트가 바스러지면서
안의 따끈하고 몰캉한 에그크림이 입 안을 채웠다.
아니, 내가 디저트에 감동할 줄이야.
두 입 먹으니까 벌써 한 개가 다 없어졌다.
입맛은 누구나 공통인듯,
각자 한 개를 먹고 나니 나머지 한 개를 차지하려는 긴장감이 팽팽했다.
공평하게 반 개를 나눠먹긴 했지만 '이게 끝이야?' 하는 아쉬움이 밀려왔다.
몇 번을 테이크 아웃 줄에 서서 한 박스를 사갈까 고민하다 가게를 나왔다.
이미 벨렝탑에서의 허탈한 마음이나 뙤양볕 아래의 지침 따위는 사라진 다음이었다.
하드커버 양장본
식도락가 아미씨의 일러스트 기록
<EAT, DRINK, SPAIN!>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