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외. 내가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
03. 가슴을 울리는 관능의 춤, 플라멩코.
많은 사람들이 스페인의 춤 하면 플라멩코를 떠올리는만큼,
그 본고장인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에 가서 꼭 플라멩코 공연을 보리라고 다짐하며
마드리드에서는 플라멩코 공연을 보지 않았다.
나는 남부에 내려와서 세비야와 그라나다, 두 곳에서 공연을 보았다.
현재의 화려한 의상과 퍼포먼스 형식은 세비야에서
항해하는 사람들을 상대로 돈을 버는 수단으로 플라멩코를 무대에 올리면서 발달되었다고 하지만
그 시작이 어디가나 환영받지 못하는 떠돌이 집시들의 한의 춤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세비야의 플라멩코 공연보다는 그라나다의 플라멩코 공연이 그 원형과 가깝지 않았을까.
그라나다에는 집시들이 은신해 살던 동굴들이 밀집한 지역이 있는데
내가 본 플라멩코는 그런 동굴 안에서 이루어졌다.
동굴의 하얀 벽에 등을 대고 앉아 손 뻗으면 닿을 것 같은 거리에서
가수의 기타와 목소리, 다른 무용수의 손발로 맞추는 박자에만 의지해
움직이는 플라멩코 댄서의 춤은 그냥 춤이라고 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퍼포먼스가 아닌 그들의 삶, 그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듣는 것 같은.
마치 접신한듯 발을 부서져라 구르기도 하고,
얼굴에는 어떤 고통과 슬픔의 표정이 스쳐가고
눈을 감고 음악에 몸을 맡기는 그 모습에 숨도 함부로 내쉴 수 없을만큼,
나는 완전히 압도되고 말았다.
이 후 세비야에서도 플라멩코 공연을 보았지만,
화려한 그들의 퍼포먼스와 의상에도 불구하고 내 머리에 남는 것은
동굴 속의 그 플라맹코 댄서의 강렬한 이미지였다.
하드커버 양장본
식도락가 아미씨의 일러스트 기록
<EAT, DRINK, SPAIN!>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