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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혜 Nov 21. 2019

대학원생과 학회와 출장과 발표

툴루즈 집순이의 4 주 3 학회 체험

이전 글에서 유럽에서의 시간은 한국에서보다 여유롭다..라고 쓴 것 같은데, 지난 3주 간은 예기치 않게 여러 세미나와 교육, 학회 등 외부 일정이 많아서 평소보다 좀 더 바빴어요. 10월 마지막 주는 파리에서 워크숍, 11월 첫 주는 델프트에서 교육 + 학회, 셋째 주, 즉 이번 주는 저희 프로젝트 자문위원회 회의 및 그에 딸린 미니 학회. 둘째 주는 그다음 주 자문위원회 회의에서 발표할 박사과정 계획 및 진행상황 준비만 하면 되니까 그래도 좀 여유가 있지 않을까 했는데 갑자기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3분짜리 영상을 만들어 보내야 된다고 해서 이틀 만에 촬영하고 편집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언젠가 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발표 전 주라니, 이틀 만에 완성해야 하다니, 게다가 내가 담당이라니.. 싶었는데 사실 촬영과 편집이 꽤 재밌었어요. 미뤄둔 브이로그 편집도 얼른 해서 올려야지 싶은 마음이!


그리하여 근 한 달을 진득하게 앉아서 연구 같은 것을 할 (= 논문 읽고 정리하고 말이 되는 뭔가를 새로 구상하고 쓸), 시간이 별로 없었네요. 대신 많은 이동을 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는데, 멀리까지 탄소발자국을 남기며 가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난 만큼, 세션도 다 들어가고, 저녁 모임도 다 가고, 티타임에도 점심시간에도 저녁시간에도 옆에 사람들과 발표자에게 가서 뭐라도 말 걸고, 물어보고, 뭔가 새로운 걸 배워야 한다는 압박이 좀 있더라고요. 심지어 델프트 학회는 혼자 간 데다가 비행기까지 타고 가서 죄책감도 드는 만큼 더 부담이 되었어요.


수많은 새로운 아이디어와 방법론과 의견들을 보고 들었기에 신나기도 하고, 교수님이 프로젝트 예산을 써서 학생들 교육과 학회를 보내는데 적극적인 편이라는 게 고맙기도 했어요. 그런데 새로운 분야의 발표들이다 보니 들어도 다 알아듣는 게 아니라서 머리도 아프고, 좀 알아들은 것들을 어떻게 우리 프로젝트에 접목해서 써먹나 고민도 되고, 이게 연속으로 쌓이다 보니 집순이에게는 흥미로우면서도 꽤 피곤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학회 시간과 공식 저녁 모임 외에는 파리고 델프트고 구경은 하나도 안 하고 숙소에 콕 박혀서 다음날 있을 세션 설명을 열심히 읽거나 푹 잤죠. 보통 세션들이 아침에 9시쯤 시작하니까, 평소 10시 출근자의 기준에서 보면 너무나 일찍인 것. 대체 어떻게 서울에서 3년도 넘게 주 5일 8시 출근을 했는지 모르겠네요. 사실 대체 어떻게 고등학교 때는 출근 할 때 보다도 더 일찍 등교하고 더 늦게 하교하면서 공부를 했는지, 어떻게 하루 종일 수능을 봤는지도 전혀 기억이 나지 않으니 과거의 나는 내가 아닌 것이야....


새삼스러운 진리지만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들여야겠습니다. 나름 노력한다고 11시 반에 자러 누워도 12시 반이 넘어서야 잠드니.. 폰도 (거의) 안 봤는데! 몇 년간 취침시간이 1시쯤이었더니 제 몸은 자정 전에 잠들 수 있다는 사실을 아직 납득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꾸준히 시도하면 발전이 있겠죠? 좀 더 현실적으로는 사무실 바로 옆 걸어서 5분 거리로 이사하는 게 훨씬 더 쉬운 해결책이라 할 수도 있겠습니다. 30-40분 걸리는 통근 시간도 시간이지만, 아 어둡고 추운데 (서울보다 안 추운데 서울보다 더 어둡긴 함) 나가서 자전거를 타거나 지하철을 타러 가야 하다니.. 하는 생각에 더 뒹굴거리기도 하는 것 같더라고요. 걸어서 5분이면 그런 부담도 덜하고! 사실, 퇴근은 아무리 늦게 해도 8시쯤 하니까, 특별히 저녁 약속이 있어서 늦게 들어가는 날이 아니면 (50여 일간 단 6번) 11시에 잘 수도 있는 것인데 그때는 아무래도 뭔가 잘 시간이 아닌 것 같아서 자러 가기가 너무 이상해... "시간을 때우는" 개념으로 인터넷 서핑을 하거나 영상을 보거나 했는데 그 시간이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 요샌 차라리 팟캐스트를 들어요. 들어도 들어도 끝없이 에피소드가 남은 듣똑라 사랑해... 가끔은 책을 보는데, 주로 전자책을 폰이나 패드로 읽다 보니 눈이 금방 피곤해져서... 그런데 얘네가 기계음으로 책을 읽어줄 수 있다는 걸 얼마 전에 발견해서 들으면서 눈으로 따라 읽다 보니 나름 더 잘 읽히더라고요. 그러고 보면, 어차피 놀 거면 그 시간에 왜 프랑스어 공부나 요가나 명상은 시도하지 않는지 또 의문이 드네요. 침대 바로 옆에 프랑스어 책도 갖다 놨고, 발밑에 요가매트도 24시간 펴 놨는데..


델프트에서 머물렀던 숙소의 테라스와 고양이. 여름에 왔더라면 정말 좋았겠다.

 

이번 주는 월요일에 회의, 화요일에 미니 학회를 하고, 수요일은 하루 종일 연구실 자리에 앉아서 지난주 한일, 이번 주 할 일을 정리하고, 월요일 회의에서 피드백받은 거 정리해보고, 논문 뭐부터 읽을지 좀 고르고, 그러다 논문을 더 찾아버리고 (....) 하다 보니 시간이 후딱 갔어요. 그러다 6시쯤부터 머리도 식힐 겸 이 글을 쓰기 시작.. 하여 마무리는 목요일 점심시간에 하고 있네요. 아직 지난 3주간의 인풋, 특히 혼자 갔던 델프트 학회에서 배운 내용, 을 차분히 정리하고 추천받고 찾은 논문들도 읽고 정리하고 연락도 좀 하고, 우리 프로젝트에 어떻게 반영하면 좋을지 정리하고 싶은데 아직 못 하고 있어요. 흥미로워 보이는 논문만 쌓여가고... 그런 와중에 이번 월요일 자문위원회 회의에서의 발표를 위해 연구 계획을 정리하고 교수님과 회의하다 보니, 연구 방향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잡고 어떤 방법론을 써서 뭘 해야 할지, 구멍이 너무 많이 보이는 거예요! 처음 지원할 때 본 프로젝트 계획은 굉장히 그럴듯했는데, 논문들도 조금 더 읽어보고, 내용도 자세히 파헤치며 계획을 세워보니, 정해지지 않고 불분명한 부분이 많아서 당황. 박사과정이 당연히 그래야 하듯, 아무도 안 한 새로운 연구 분야고, 프로젝트의 일부는 교수님도 전문이 아닌 분야다 보니 당연한 거라지만, 아니 이거 너무나 그럴듯하지만 그냥 따라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었어.... 교수님이 다 잘 알아서 짠 줄 알고 약간 안심하고 있었는데 전혀 아니구나, 하긴 그럼 연구가 아니겠고, 내가 알아서 찾고 조언을 구하고 하는 게 맞긴 하는데, 방향을 어디로 잡아야 하지! 하고 약간 방황하게 되었어요.


게다가 지난주 목요일에 회의하고 업데이트해서 의문점들과 함께 교수님한테 보냈는데 금요일에도 주말에도 내내 전혀 피드백이 없는 거 있죠. 아니 월요일 오전부터 하루 종일 회의고 나는 오후에 발표인데!! 그래서 그냥 의문점들에 대해 나름대로 새로 읽고 정리한 내용들을 추가하여 월요일 점심때 언급해 보았으나 교수님은 주말에 회의와 학회 준비로 너무 바빠서 못 읽었다는 말만 하고 자문위원들에게 가버렸어요... 그냥 내 맘대로 발표해도 상관없다는 건가 싶어서 (믿어서 그런 건지, 어차피 시작한 지 1달 반째이고 피드백을 받는 자리이니 좀 허술하면 허술한 대로 그대로 보여주면 되니 상관없는 건지) 교수님과 검토하지 못한 새 내용도 마음대로 발표하였습니다. 그날도 사흘이 지난 오늘까지도 발표 내용에 대해 직접적인 코멘트는 하지 않았고, 자문위원들이 여러 가지 의견을 내고 위원들과 교수님의 토론으로 흘러갔는데... 제가 제시한 의문점 3가지 중에 한 가지에만 피드백이 있었고, 자문위원들마다 의견이 조금씩 다르기도 하고, 약간 중구난방식으로 각자 자기가 할 말만 해서 뭔가 합의에 이른 것은 아니고, 구체적인 방법론을 제시한 건 아니라서, 다음 주까지 열흘간은 다른 거 안 하고 정말 골라둔 논문만 쭈우우우욱 읽고 정리해서 교수님과 의논해 볼 계획이에요.


그러고 나면 연구주제가 좀 정리가 되려나 싶은데 정리가 되면 되는대로 안 되면 안 되는 대로 이승혜의 박사과정 주제는 대체 무엇이 될 계획인가 여기에도 정리해 공유할게요. 지금은 저도 굉장히 흥미롭다 싶으면서도 혼란 혼란스럽네요. 다들 박사 1.5개월 차인데 잘 아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니야 라기도 하고, 첫 1년은 자유로운 영혼의 철학자가 되어서 써야 할 논문이나 방법론에 갇히지 말고 자유롭게 구상을 할 필요가 있어!라고 조언해 준 분도 있었지만, 저의 박사과정이 단 36개월!이라 아쉽게도 1년의 철학자 생활은 조금 어려울 것 같아요. 다행히도 교수님은 다음 주 내내 학회 및 휴가라서 갑자기 비디오를 만들어야 된다거나, 새로운 인풋이 생긴다거나 하는 변수는 적을 것 같으니, 앞으로 열흘은 아주 자유롭게 브레인스토밍 해보고, 피드백 한번 받고, 연말까지 한 달여 간도 또 논문 더 읽으면서 브레인스토밍 해 보면 어떨까 싶어요. 그럼 시작한 지 석 달이 휙 지나겠네요.


다음 글 쓰기 주제들은


- 연구실의 인구 구성과 분위기와 역학관계.

- 이승혜는 과연 무엇을 박사과정 주제로 삼고 있는가.

- 비행기를 타는 것과 죄책감은 당최 무슨 관계?

- 학회에서 채식으로 밥 먹기는 가능한지, 나라마다 어떻게 다른지?

- 논문 라이브러리 + 아이패드 싱크에 관하여.

-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 (혹은 일찍 자기) 시도 및 집 구하기 진행상황 공유.


정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순서는 정해지지 않았어요.


위에서 언급한 프로젝트 소개 영상은 차후 공개가 되면 공유할게요! 주 정부가 하는 워크숍의 요청으로 찍은 영상은 프로젝트 팀원들이 각자 자기 분야를 영어나 프랑스어로 소개하고 영어 영상 부분에만 프랑스어 자막을 단 상태입니다. 프랑스어를 못하는데 프랑스어 자막 싱크를 하는 진기한 경험을 했는데 프랑스어 부분에 영어 자막을 다는 게 다음 차례죠.. 그러고 보니 소프트 자막으로 만들걸 그랬나 싶은데 언젠가 시간이 나면 해 보는 걸로!


영상이 공개되었습니다! 저희 팀원들이 각자 맡은 연구 주제를 설명하는 모습을 볼 수 있어요. 자막은  영어와 프랑스어 중 선택할 수 있게 소프트 자막을 달았는데, 언젠가 시간이 된다면 한국어 자막 작업도 해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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