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프는 바뀐다
20대, 교환학생 시절에 정말 소울메이트 같던 친구를 만났다.
한국이었다면 만날 일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해 우린 같은 시기에 같은 학교로 교환학생을 갔고 옆방에 살면서 친해졌다. 말을 하면 할수록 이렇게나 잘 맞을 수가 있나 싶었다. 작은 일 하나에 배가 아프도록 웃고, 발 사이즈마저 완전히 똑같은걸 발견한 날 아니 이건 운명이야.라고도 생각했었다.
교환학생 기간이 끝나고 한국에 돌아와서 우리는 각자의 길을 걸었다. 취준생이 되었고, 친구가 먼저 취업을 했다. 생각해보면 그때부터 조금씩 어긋났던 것 같다.
기억 하나
나는 취업준비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고 부정적인 생각이 가득하던 그때, 대기업에 입사한 그 친구를 만났다. 그 친구는 나한테
"그래도 그때가 좋았어. 부럽다"
라고 했다.
기억 둘
나도 취업을 했다. 한국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해외 근무를 하게 되었고, 정말 오랜만에 휴가 내서 온 한국으로 돌아왔고, 소중한 시간을 내어 그 친구를 만나려고 했다.
그리고 돌아오는 답변은
"주말에는 애인 만나야 해 서 안돼"
이었다.
기억 셋
여행차 내가 있던 해외로 그 친구가 왔다. 근무지는 외진 곳에 있었기에 나 역시 버스로 몇 시간을 달려 그 친구를 만나러 갔다. 해외근무 여건이 정말 좋지 않아 힘들어했던 내게, 여행지의 좋은 점만을 느낀 친구는 나에게 연신 부럽다고 했다.
내가 그동안 말한 힘듦은 그 친구에겐 들리지 않았나 보다.
대화가 힘들어 시간을 보내기 위해 영화를 보러 갔다.
시간이 한참 흐른 뒤 정신적으로 어느 정도 여유를 갖게 되었다. 친구를 다시 만날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역시나 이번에도 그 친구는 본인이 있는 곳으로 오라고 했다. 이번만큼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항상 내가 갔으니까.
친구를 만난 그 몇 시간은 정말이지 버티기의 연속이었다.
나는 일을 하면서 많은 사람이 그렇듯 술꾼이 되어 술을 매우 좋아하게 되었다. 스트레스도 술로 풀고 이야기를 할 때는 특히나 어느 정도의 취기가 이야기하기 편한 분위기를 만드는데 도움이 된다. 술집 특유의 아늑한 분위기도 좋아한다. 하지만 그 친구는 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술을 마신다는 말을 하며 술을 한 잔 겨우 마실 뿐이었다. 술만 그런 게 아니고 본인이 먹고 싶다고 간 피자집에서도 도통 먹지 않고, 나한테만 더 먹으라고 하고 있을 뿐이었다.
입맛, 취향도 달랐지만 인생을 바라보는 방법이 많이 달라졌다. 그때는 학생이어서 티가 나지 않았던 걸까. 어떻게 이렇게 생각하는 게 다를까 싶은 대화들이 이어졌다.
정말이지 재미가 없는 시간이었다. 시계만 계속 바라보았다.
이 친구를 만나고 오면 힘이 많이 든다. 그 시간에 충실한 것도 아닌데 기가 빨리고 오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자꾸만 약속을 피하게 된다. 내가 먼저 연락하는 일은 이제 거의 없고 그 친구한테 연락이 오면 회피하다가 마지못해 한 번씩 나가곤 한다.
그래도 그 친구가 원해 최근에 소개팅도 해줬더랬다. 인생 좀 재밌게 살길 바라는 마음과, 연애를 하면서 정신을 뺏기길 바라는 마음이랄까. 그 과정도 어찌나 힘겹던지, 뭐가 그렇게 바라는 게 많던지. 소개 해준 뒤에는 연락도 없던 친구. 상대방이 어떤 식으로 말했는지만 물어보던. 참, 뭐랄까 씁쓸하기도 하고. 다시 한번 참 안 맞는구나 느끼게 되었다.
전에는 사람이 잘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아니다. 인생 살면서 사람은 잘 변한다. 그리고 그때마다 잘 맞는 사람이 달라진다. 그러니까 대화가 안되어 힘 빼는 인연은 뒤로 하고 지금 이 순간에 잘 맞는 사람과의 시간을 늘리고자 한다.
올해의 첫 아무 이야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