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사적인 글
글을 다시 써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왜 내가 글을 멈췄냐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다.
첫째. 연재에 대한 부담감.
아무도 연재에 대해 강요하거나 요청하지 않았었는데 괜히 나 혼자 뒷이야기에 대한 글쓰기가 부담스러워서 하루 이틀 미루다 결국 여기까지 오게 됐다.
<글감에 대한 부담은 아마 글 쓰는 평생 가지게 되는 '양날의 검'같은 거 아닐까.
부담감이 있지만 또 그 부담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바뀔 수도 있는...>
둘째. 나를 드러내는 일에 대한 두려움.
가정사에서부터 건강에 관한 이야기까지... 정갈한 포장지에 내 몸을 쏙 집어넣고 살아왔던 내가 포장지를 뜯고, 그 포장 안에 제대로 된 물건이 아니었던 내 모습을 보이는 것은 발가벗은 느낌이었고, 불특정 다수가 나를 알아간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마저 엄습했다.
브런치의 유명 작가 조니워커처럼 철저하게 지인과 직장 등 자신을 아는 사람에겐 전혀 모르게 유지했다면 어땠을까에 대한 생각은 수도 없이 해봤다.
그 두려움으로 완전히 다른 계정을 만드는 사람도 봤으니...
<그러나 나를 보는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나를 극복할 수 없을 것 같다.>
셋째. 댓글에 대한 두려움.
글을 읽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글을 쓴 의도와 다르게 달리는 댓글을 읽는 그 순간부터 심장이 요동을 친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내게 내뱉는 소리에 내 심장이 콩닥거리고 그때부터 불안해진다.
<글쓰기의 최전선[메멘토 출판]에서 작가 은유는 "사람들은 말을 합리적 인식이 아니라 자신의 정서로 판단한다"라고 했다. 각자의 정서가 다른 것이니 의연해질 필요가 있다.>
넷째. 글을 쓰면서 느껴지는 우울감.
어린 시절부터 유독 글쓰기를 좋아했고, 글로 내 마음을 표현하는 게 익숙했다. 문제는 글로 내 마음을 표현하다 보면 더 감성적이어지고, 내 감정에 내가 취해 늘 눈물로 마무리된다는 것이다.
출산 후 몰려오는 우울감에 글을 쓰는 행위가 더해져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꼴이었고, 그때부터 나는 쓰는 행위를 멈췄다.
이러한 많은 이유를 두고, 나는 왜 글을 쓰려고 하는가...
나는 내가 아무리 벗어나려 해도 벗어나기 힘든 내 모습이 있는데
그것은 말로 하는 것보다 글로 쓰는 것이 편한 사람이라는 것.
글을 씀으로 내 생각이 정리되고, 내 마음이 정리되는 사람이라는 것.
글을 씀으로 내 안의 아픔이 객관화된다는 것.
그리고 글 쓰는 행위로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꼴을 면하려면 혼자만의 글쓰기가 아닌 보여지는 글쓰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일기장 속 글쓰기는 감정의 극치를 달려 더 깊은 감정의 골로 빠져들지만, 보여지는 글은 그 감정을 극복하는 글을 쓰게 된다는 것.
내가 쓰기를 다시 시작하는 이유는 그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통해 나를 치유하고, 좀 더 나은 삶에 한걸음 다가가는 것.
천천히 시작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