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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보르미 Jun 03. 2023

80대 환자의 수술에 대해

존중과 방치

고집불통에 대한 존중인가 방치인가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김범석 저)를 읽고, 나는 이 글을 써야겠다고 결심했다.

딜레마

나이 : 81세

성별 : 여

진단명 : 당뇨, 천식, 경도의 우울장애, 울화병, 변비

복용약 : 진단명의 약들 복용 중

주증상 : "밑이 빠져요, 변을 보기가 너무 힘들어요, 화장실 갈 때 피가 나요"


이 환자는 나에게 가끔 전화를 한다.

나도 이 환자에게 아주 가끔 전화를 건다.

전화 내용은 늘 비슷하다.

딸이 여섯이나 있어도 전화하는 년(참 듣기 싫은 표현...)은 한 년도 없고(사실 그렇지도 않다, 본인 성에 차지 않을 뿐인 거지...), 어디가 아프고, 남편이 힘들게 하고, 속에서 천불이 나서 매일 공원으로 걸으러 나가고...


이 환자는 엄마다.

엄마는 간호사인 나에게 어디가 어떻게 아프다는 말을 많이 하는 편이다.

니가 간호 사니깐 물어본다며 이걸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묻고 나는 병원을 가보라고 말씀을 드린다.

사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병원을 가보라고 이야기하는 것도 입이 잘 안 떨어진다.

혼자 어디 가서 뭘 하길 두려워하시는 분이니 혼자 가실리 만무하고, 누군가 동행을 해야 하는데 멀리 사는 나는 동행을 해드릴 수 없는 상황이고 그럼 답은 뻔하다.

가까이에 사는 딸들 뿐인데...

엄마는 곁에 사는 딸들에게 늘 화가 나 있다.

본인을 살뜰히 챙기지 않는다는 것에...

곁에 사는 언니들은 다 결혼을 했고, 워킹맘이다.

엄마가 오랄 때 오고, 가랄 때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그러기에 병원을 가보라고 하는 내 맘도 편치만은 않다....

최근 들어 변비가 심하고, 자궁이 내려앉은 느낌이고, 치질도 심해졌다고 이야길 자주 하셨고, 어렵게 병원을 가보는 게 좋지 않겠냐고 말씀을 드렸다.

그래 알겠다고 하시더니 이내 부항을 떴고, 운동을 더 열심히 했고, 병원 가봤자 별거 있겠냐고 혼자 결론을 내리곤 전화를 끊으셨다.

나에게 뭔가 해결을 해달라는 의미가 아니라 그냥 내 이야길 들어달라는 의미일까, 아님 이걸 본인이 직접 말하기 껄끄러우니 곁에 있는 딸들에게 대신 이야기 해달라는 의미일까....

아프다는 이야길 듣고 뭘 어떻게 해야 하나 싶은 내 맘이 참 불편하다.

이래저래 멀리 사는 나는 엄마에게도 언니들에게도 늘 죄인이다...


얼마 지나 불편감이 커졌는지 곁에 있는 언니를 불렀고, 산부인과를 다녀왔으나 이상은 없었다.

그리고 좀 더 지나 엄마는 곁에 사는 엄마의 여동생, 이모를 불러 대장 항문외과에서 진료를 받았고, 장기의 처짐이 너무 심해 일부 절제 수술을 해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 이야길 듣는 순간 엄마는 수술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아니다 다를까 병원을 다녀온 날 바로 엄마는 자주 이용하는 한의원에 가서 한약을 지었다.

엄마의 지론은, 내 몸은 내가 더 잘 안다.

제사로 신경을 써서, 아빠가 속을 썩여서 나타난 신경통이며 이것은 수술 없이도 치료가 가능할 것이다....


나는 엄마를 설득할 생각은 전혀 없다.

사실 설득할 힘이 없다는 표현이 어쩌면 더 맞을지도 모른다.

간호사 딸이라서 물어본다며 항상 전화를 하지만 엄마는 내 말을 전혀 듣지 않는다.

본인이 진단하고 치료한다.

지난번엔 자동차에 직접 부딪히는 교통사고가 있었음에도 병원을 가지 않고 혼자서 파스를 붙이며 버텼다.

그때도 엄마는 내 말은 단 1프로도 듣지 않았다.


사실 나는 엄마가 배를 열어 수술을 해야 한다는 이야길 들었을 때, 선뜻 그래 얼른 해야지 하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지금 생활이 불편하긴 하지만 생명의 촌각을 다투는 위급한 상황은 아닌 질환이다.

엄마는 팔십을 넘겼고, 당뇨를 20년째 앓고 있으며, 당 조절은 잘되지 않는다.

천식도 심한 편이라 기침을 자주 하고, 가래도 자주 뱉어 내야 한다.

그런 노인에게 전신마취를 하고, 개복술을 시행하는 것이 맞을까...

회복은 잘할 수 있을까..

지금은 하루에도 만보는 족히 걷고 또 걸으시는 분이 수술 후 혹시 쇠약해져 오히려 건강을 더 잃지는 않을지 걱정이 앞서기도 했다...


엄마는 아직 본인의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의식을 가진 사람이다.

나는 그 뜻을 존중(?) 해주고 싶다.

그러나 이면에 그 존중을 방패 삼아 엄마가 병상에 눕게 되는 것이 두려워 내 마음을 숨기고 있는 것은 아닌가 깊게 깊게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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