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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보르미 Jun 24. 2021

시어머님이 아이를 잃어버렸다

못 찾겠다 꾀꼬리

못 찾겠다 꾀꼬리

"애미야! 아가 없어졌다"

"네? 무슨 말씀이세요? 어머니? 지금 어디신데요"


땅이 뜨겁다 못해 불타 오르던 한 여름의 대낮.


여름방학을 시작한 어린이집.

맞벌이로 아이가 아플 때마다 연차를 써댔던 통에 휴가까지 쓰기엔 남은 연차가 간당간당하여 지방에 계신 시어머니에게 어렵게 SOS를 요청했다.


본업인 가게문을 잠시 닫고 먼길 달려와주신 고마운 시어머님.

그런 어머의 다급한 전화였다.


"여기는 집인데... 아가 없어졌다. 내랑 숨바꼭질하고 있었는데 20분째 아가 안 빈다.

우짜면 좋노?"


엥? 집이라고?

깜짝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하하, 집 안에 있겠죠 어머니. 다시 한번 찾아보세요.

장롱 속에도 잘 숨고, 식탁이랑 의자 사이에도 잘 숨어요. 책상 아래도 있고요."

평소 숨어 있는 동안 잠시 쉬기도 하고, 핸드폰 검색도 할 수 있어 숨바꼭질은 우리의 최애 놀이.


"없다. 아무리 찾아도 없다. 아무리 불러도 없다.

내가 하도 더워가 현관문을 좀 열어놨는데 그리로 나간 거 아닌가 모르겠다.

아님 베란다 난간으로 떨어졌나 싶어가 1층에도 갔다 왔는데 없다.

우짜면 좋노. 아가 없다."


첨엔 가볍게 생각하다 어머님 말씀을 듣고 있는데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졌다.


현재 30개월.

눈에 띄는 곳이면 어떤 곳이든 상관없이 뛰어다니며 에너지 팡팡 쏟아내는 사내아이.


"어머니, 우선 조금만 더 찾아보시고요, 없으면 다시 전화 주세요.

안되면 경비실에 가서 CCTV로 엘리베이터 탔는지 확인해 봐야 할 것 같아요."


일은 손에 잡히지 않았고, 안절부절 핸드폰만 만지작 거리길 10분. 다시 걸려온 전화.

"애미야 없다. 아무리 찾아도 없다 우짜면 좋노"

당황한 어머님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어머님 경비실로 가서 CCTV 부탁해 보시구요, 저도 바로 갈게요."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손은 덜덜 떨렸고, 쿵쾅거리는 심장의 소음이 멈추질 않았다.

제발 별일 없기를 제발...


회사에서 출발한 지 10분이 지났을까?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애미야, 아 찾았다. 다시 드가 봐라"

"네? 어디서요? 괜찮아요?"

"책상 아래에 서랍장 그 뒤에 숨어가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기라.

내가 그래 불러싸도 대답도 안 하고, 분명히 책상 밑에도 찾았는데 그때는 비지도 않더구먼..."

"니 할매가 부르는 소리 들었나 못 들었나?"

핸드폰 너어머님의 다그침에 아이가 대답하는 소리가 들렸다.


"할머니가 못 찾겠다 꾀꼬리 안 했잖아요"


아이가 어머님의 애타는 부름에도 대답을 할 수 없었던 이유.

못 찾겠다 꾀꼬리는 빠지고,

주혀이 어딨노 빨리 나온나였고,

아이에게 할머니의 애타는 부르짖음은 놀이의 연장선상.

어머님의 치명적 실수였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나는 다시 차를 돌렸다.

팀장님껜 뭐라고 설명드려야 하나...

못 찾겠다 꾀꼬리가 문제였다고 해야 하나...


우리에게 새겨진 여름날의 추억 하나.


그렇게 혼줄이 나신 어머님은 그래도 몇 번 더 여름이면 아이를 돌봐주러 오셨다.

오실 때마다 그날의 이야긴 두고두고 우리의 안주거리가 다.

그 뒤 아무리 더워도 문은 절대 열어놓지 않으시는 어머.

평소 모임도 많고, 친구도 많으신 분이 답답할 법도 하신대, 여름이면 휴가도 반납하고 몇 해를 와주신 고마운 어머님.

덕분에 아들은 이젠 책상 밑에 숨으면 금방 들켜버릴 정도로 쑥 잘 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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