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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나의취향과 윤글 Apr 06. 2018

[단편] 운이 나쁜 여자, 운이 좋은 남자 2

5.
"어때요? 좀 시원해졌어요?"


  은행 atm창구에 들어오자마자 그녀가 먼저 손을 풀었고, 그는 아쉬운 마음에 손을 만지작거린다.


"아직요, 금방 들어왔고 또 뛰어 왔잖아요."


"아, 그러네요. 덥겠다. 열 좀 식혀요."


"네, 그쪽도요."


  그녀는 올해 초에 헤어진 남자친구 이후로 너무 오랜만에 이성과 단 둘이 있게 된 터라 어색해서 견딜 수가 없다. 자꾸 손끝을 매만진다. 그녀의 손을 잡아 은행으로 이끌던 그의 손 감촉이 자꾸 떠올라 얼굴에 오른 열이 식지를 않아서 큰일인데, 옆에서 자꾸 그녀를 쳐다보는 시선이 신경 쓰여 뭘 할 수가 없다.


"저기, 잠시만 돌아보고 있어 주시면 안 될까요?"


"아, 부담스러워요? 죄송해요."


"아뇨, 제가 지금 땀이 많이 나서요. 잠시 정돈 좀 해보게요."


그녀의 말에 그는 어느새 또 웃고 있다.


"네, 얼른 해요."


  그는 그녀의 반대편을 보면서 서 있고, 그녀는 그가 준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고 다시 화장을 수정한다.


"여름 진짜 싫다니까, 정말."


"혼잣말 하는 버릇 있나 봐요. 귀엽다."


"혼잣말인 거 알면서 대답하는 취미 있나 봐요?"


그는 다시 작게 웃는다. 그에게는 지금 그녀의 퉁명스런 말투조차 미화되어 귀엽게 들린다.


"뻘쭘할까 봐요."


"다 됐어요."


  그는 그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돌아서서 그녀를 마주본다.


"예쁘네요."


  잠시 둘 사이의 눈맞춤, 역시 그녀가 먼저 눈을 돌린다.


"거짓말 잘하시네요."


  그녀는 얼굴이 화끈거려 다시 손부채칠을 시작한다.


"아, 더워 정말."


그는 웃는다.


"많이 더워요? 저쪽에 정수기 있으니까 물 좀 마셔요."


"네, 고마워요. 근데 그쪽은요? 괜찮아요?"


"저 더울까 봐 걱정해주시는 거예요? 하하, 저는 더위 잘 안 타서 괜찮아요."


  그녀는 그의 웃는 모습을 빤히 보다가 정수기 쪽으로 몸을 돌려 걷는다. 정수기 앞에 다다르고, 물을 마시며 그가 서있는 쪽을 흘끔 본다. 그는 휴대폰을 내려다보고 있다.


'내가 마음에 드는 건가?'


  그녀는 혹시나 그가 날 마음에 들어 하는 건가 싶어 잠시 기분이 좋아졌다가, 또 갑자기 맥이 풀린다.


'아냐, 저런 사람이 날 좋아할 리가 없어. 나한테 왜 이러는 거지? 아아, 모르겠다, 일단 이것부터 해결하자.'


  그녀는 물을 마시다 말고 가슴 언저리로 손을 가져다 댄다. 그렇게 몇 초 더 마인트 컨트롤을 하고, 그가 있는 쪽으로 다시 걸어간다.



6.
  한편, 그는 아까부터 계속 쌓여가는 문자함을 열어본다. 소개팅 주선자의 문자가 가득이다.


-야, 어때?
-마음에 드는 거냐?
-영 아니야?
-혹시 지금까지 같이 있냐?
-야!!!


  그는 한숨을 내쉬며 답장한다.


-주선해줬으면 끝이지, 뭘 그렇게 궁금해 하냐? 닥쳐 좀. 바빠.


"어휴, 이 정신없는 놈."


"누가요?"


"깜짝이야!"


"뭘 놀라고 그래요? 아까 그쪽이 했던 짓이잖아요."


"그러게요, 하하. 이제 안 할 게요. 되게 못된 짓이네, 이게."


  어느새 다가와 나름의 복수를 한 그녀의 표정이 아까보다 어두워진 것을 감지하고, 그가 다시 말을 건다.


"어디 갈까요, 우리?"


그의 물음에 그녀는 건조한 목소리로 말한다.


"정말 저랑 더 있으시려고요?"


"네."


  그의 단호한 대답에 그녀가 잠시 당황하고, 이내 아무렇지 않은 척 답한다.


"그럼 술 마셔요."


"술 좋죠, 술 좋아해요?"


"네, 날도 덥고 갈 데도 없잖아요. 더 있고 싶단 말 진심 아니면 이쯤하고 헤어져도 되고요."


  그는 그녀가 자신을 테스트하는 게 귀여워 다시 웃는다.


"진심이라니까요, 망설일 것도 없이 콜이죠."


"이번에도 장소는 제가 정할게요."


"근처에 아는 데 있어요?"


"네. 여기서 가까워요."


"좋아요."


  그녀가 은행 문을 열고 나선다. 그는 그녀를 따라 나와, 당연하게 그녀 옆에 서서 걷는다.



7.
  그녀를 따라 도착한 곳은, 작은 펍이었다. 그녀는 익숙한 듯 가게 문을 당겨 연다. 문에 달린 작은 종이 '딸랑'하며 경쾌하게 울린다.


"어, 오셨네요?"


"네, 오랜만이죠. 잘 지내셨어요?"


  그녀는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바에 서 있는 사장에게 다가가 잠시 인사를 나눈다. 그 사이 그는 문에서 조금 떨어진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오늘은 혼자가 아니네요?"


"아, 하하. 그렇게 됐어요."


  그녀가 살짝 웃는다. 사장은 멀뚱히 앉아있는 그를 곁눈질로 살짝 보고는 그녀에게 말한다.


"기다리시는 것 같은데? 가 봐요, 얼른."


  사장이 그녀의 몸을 돌려 세우고 등을 떠민다. 그녀는 사장에게 고개를 돌려 다시 한 번 인사하고, 그가 있는 쪽으로 간다. 그는 그녀가 올 때까지 가게를 좀 둘러본다.


'이런 분위기를 좋아하는 건가?'


  그녀는 그가 딴 생각을 하는 동안 조용히 다가와 그의 맞은 편에 앉는다.


"어, 왔어요?"


"네. 죄송해요."


"아녜요, 괜찮아요. 근데 한 군데 정해놓고 집중적으로 다니시나 봐요?"


"네?"


"여기도 단골이신 것 같아서요."


"아, 네. 맞아요. 왜요? 여기 마음에 안 드세요?"


"아뇨, 좋아요. 그냥 그쪽이 궁금해서요. 새로운 것들에 적응하기 힘들죠?"


"네, 조금요. 그새 저를 파악하셨나 봐요?"


"뭐, 아주 조금?"


  그녀는 그와 대화를 나눌 때마다 손끝이 닳도록 매만지고, 그 모습을 아까부터 지켜보고 있다. 그러다 그는 얼마 전, 심심해서 들춰 본 어느 심리 서적을 떠올린다. 계속되는 그녀의 적대감이 불안함에서 나온다는 걸 눈치 챈다.


'뭐가 그렇게 당신을 불안하게 만들어요?'


  그녀는 그가 자신을 유심히 보는 걸 느낀다. 자신의 말투가 센 걸 알면서도 웃어 넘겨주는 그의 모습에 조금 미안해진다.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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