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우리로부터 멀어지는 여행을요.
하루가 참 기네요. 억수처럼 쏟아지던 비도 이제 멎었어요.
저는 요즘 떠날 준비를 하고 있어요. 이곳에서, 그러니까 당신과의 기억에서 잠시라도 멀어지고 싶어서요. 당신은 모르겠죠, 이 기억들 때문에 지금 제가 얼마나 괴로운지.
아프고 슬픈 기억만 있는 건 아니에요. 멀어지려는 이유가 아프고 슬퍼서가 아니거든요. 실은, 저를 괴롭게 만드는 당신과의 기억들 대부분이 아주 행복하고 사랑스러운 기억들이에요. 당연하죠, 당신과 함께였으니까요.
근데요, 행복한 기억들은 현재의 행복을 갉아 먹으며 자라나거든요. 그래서 제 현재는 덜 행복하고 그때의 행복만 이만큼씩 더 커져요. 그래서 제가 아픈 거고.
여태껏 당신과 함께 있던 자리에서 밥을 먹고, 잠도 자고 그렇게 생활했더니 꿈을 거의 꾸지도 않던 제가 이제 거의 매일 당신 꿈을 꿔요. 그리고 여기 있으면 뭘 하다가도 문득문득 맞은 편에서 당신 목소리가 들려요. 그렇게 결국 두 달도 넘었고. 아프지 않은 게 아니라 너무 아픈데 참다 보니 무뎌져버렸어요.
당신과의 기억으로부터 멀어지고, 낯선 이들 틈에서 진짜로 혼자가 되고 싶어요. 그리고 이제는 도저히 견디지 못하겠다고, 외치고 싶어요. 여태 잘 견디고 버텨냈지만 너무 아파서 더 이상은 힘들다고 허공에다가 외치고 싶어요. 그러면서 펑펑 울어버리고 싶어요. 낯선 곳에, 낯선 이들 틈에서 다 털어내고 싶어요.
아아, 낯선 곳에서는 조금 솔직해질 수 있을까요?
어디로 떠날지, 언제 떠날지는 아직 정하지 않았어요. 그냥 내킬 때 갑자기, 어디로든 떠나버릴 거예요. 당신에게 배웠어요. 갑자기 떠나는 것도.
이제 그만하고 싶어요.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어요.
작아져 가는 현재의 행복을 되찾고 싶어요.
아아, 여행지에서 당신과의 기억을 몽땅 털어내고 돌아올 수 있을까요?
윤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