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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나의취향과 윤글 Aug 01. 2016

발톱 요정




놀이터를 지나던 중이었다. 원체 삭막한 동네라 그런 건지, 어른들의 근심 걱정이 가득해서 그런 건지 초저녁만 되어도 놀이터엔 그림자 하나 없이 비어버리곤 했다. 하지만 오늘은 한 꼬마가 모래바닥에 아무렇게나 퍼져 앉아 울고 있었다.


동네의 삭막을 닮아버린 나는


‘아, 좋겠다. 아무데나 앉아도 되고, 아무데서나 울어도 되고.’


따위의 생각을 하며 무심하게 지나치려다 뭐에 이끌린 듯 다시 돌아섰다. 나도 별 수 없이 걱정 많은 어른이 되어가는 중이라 그런지 걱정이 좀 되었다.


‘그래, 저렇게 크게 우는데 가 봐야지.’


나는 꼬마에게 다가가서 옆에 살그머니 앉았다. 그리고 꼬마의 눈을 보며 물었다.


“꼬마야, 왜 혼자야? 엄마는 어디 가셨어?”


꼬마는 얼마나 울었던 건지 코가 빨개져서는 훌쩍거리며 답했다.


“누나, 누나, 나 다쳤어요.”


“다쳐? 어디 보자. 아, 발톱이 좀 깨졌네. 이거 아프지 않은 건데?”


내 말에 꼬마는 상처 입은 고양이 눈을 하고 나를 올려다보았다. 괜히 미안해진 나는 다시 말했다.


“아. 아니다. 많이 아팠겠구나, 꼬마야. 그럼 깨진 발톱은 찾아 봤어? 그거 누나 주면 누나가 작은 선물을 줄게.”


마침 주머니에 사탕 두 개가 있다는 것을 깨달은 나의 비책이었다.


“선물이요?”


꼬마는 선물이라는 말에 당장 울음을 멈췄다.


“응, 선물. 꼬마 너 이빨요정이 누군지 알아?”


“그게 뭐예요?”


꼬마는 눈물이 아직 그득해 또랑또랑해진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꼬마, 너 ‘이-’ 해봐.”


꼬마의 앞니 두 개가 빠져있었다.


“여기, 이 두 개 빼서 어떻게 했어?”


“음, 엄마가 가지고 갔어요.”


“그랬구나, 그럼 엄마가 이빨요정한테 바로 줬나보다. 이빨요정은 빠진 이를 가져가고 선물을 주거든.”


“어떤 선물이요?”


“그건 잘 몰라. 이따 엄마한테 가서 이빨요정한테 선물 받았냐고 물어봐.”


“그럼 누나는 발톱요정이에요?”


“으..응. 그렇지. 네가 발톱이 깨졌다는 소식이 들려서 이렇게 왔잖아.”


그래, 요정인 척이라도 해보자. 꼬마는 눈을 반짝거렸다. 그리고 고사리 손으로 맨땅을 휘젓다 1분도 채 안 되어 다시 울기 시작했다.


“으에에에에엥, 안 보여요 누나아아아”


그 와중에 존댓말을 쓰는 꼬마가 대견해 잠시 쿡쿡 소리죽여 웃다가 대답했다.


“꼬마야, 이름이 뭐야?”


꼬마는 울음기 섞인 시무룩한 목소리로 말했다.


“최한결이요.”


“그래, 한결아, 울지 말고, 뚝!”


한결이는 거짓말처럼 눈물을 그치고는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한결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원래는 깨진 발톱을 찾아야 주는 거지만, 한결이한테는 특별히 그냥 줄게.”


한결이의 눈이 다시 반짝였다.


“정말요?”


“그럼, 한결아, 이렇게 양 손을 모아 봐.”


나는 한결이의 양 손을 펴놓고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사탕 두 개를 꺼내서 그 위로 얹어주었다. 한결이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우와, 사탕이다!”


“응, 이거 한꺼번에 다 먹으면 아야해. 조금씩 먹어야 해, 알겠지? 약속.”


“응, 누나!”


사탕 두 개를 꼭 쥐고 웃는 것을 보니 나도 조금 웃을 수 있었다. 그때 마침, 한결이를 찾는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리나 싶더니 이내 가까워졌다.


“한결아-!”


“엄마~”




“네가 주고 간 거라 먹지도 못하고 괜히 주머니에 넣고 다녔는데. 줘버렸네. 나는 어차피 저 맛 싫어해. 넌 몰랐겠지.”


“마음요정은 없던가……. 나는 마음이 깨져버렸는데.”


서느런 봄밤, 마음이 깨져버린 나는 발톱이 깨진 꼬마가 앉아있던 자리에 그대로 앉아 한참을 숨죽여 울었다.









윤, 그리고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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