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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나의취향과 윤글 Aug 27. 2016

잃어버린 인형이 생각나는 밤이에요.

당신이 우울한 나를 이해해줄 수 있을까요?



아, 갑자기 좀 우울한 것 같아요. 이상하죠? 아까까지 당신이랑 즐겁게 보내 놓고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전화하다 갑자기 이러니까.


아뇨. 그게 뭐가 이상해요? 스스로 너무 깎아내리지 마요. 무슨 일 있었어요?


아뇨, 그냥 무슨 생각이 나서.


어떤 생각이요?


아끼던 인형이 하나 있었어요.


네.


부모님께 생일 선물 받은 거라 굉장히 애지중지했었는데, 저만큼 내 인형을 아끼던 사람이 있었나 봐요.


듣고 있어요.


누가 몰래 가져갔더라고요.


아이고.


되게 많이 울었어요. 잃는다는 게 뭔지 처음 느꼈거든요. 그걸 감내하기엔 너무 어렸고.


알아요, 애써 변명하지 않아도 돼요. 많이 슬펐겠어요, 나의 어린 연인.


아, 세상에. 갑자기 그렇게 훅 들어오면 제가 하던 얘기를 마무리지을 수가 없잖아요.


크크, 귀여워라. 그 인형을 누가 가져갔을까, 어린 당신이 어디다 떨어뜨려서 잃어버렸을 확률은 없죠?


네, 제 기억으로는 책상 위에 두고 잠시 나갔다 온 뒤로 없어졌거든요.


아아, 그렇구나. 누군지도 모르죠?


. 그땐 이것저것 의심하는 버릇이 들기 전이라서 그냥 슬플 뿐이었어요. 많이 우는 저를 달래준 사람 중 한 명이 아니었을까 하고 지금에서야 의심해요. 쓸 데 없다는 걸 알지만.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역시 사람 속은 알 수 없으니까.


, 오늘은 잃어버린 그 인형이 자꾸 생각나요. 잃은 것들은 꼭 제 탓이 되어버리고, 알 수 없는 죄책감이 들어요. '만약 내가 그때 인형을 거기 두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하게 돼요. 기억 속에 너무 진하게 남아서 잃었어도 잊을 수는 없어요. 그래서 가끔 이렇게 문득문득 떠올라서 우울해져요. 그 인형이 아직 세상에 있을까요, 버려졌다면 너무 슬플 것 같아요.


어딘가에서 당신 지문을 간직하고 있을 거예요.


고마워요, 그렇게 말해줘서.


우울한 거 다 얘기해줘서 고마워요. 집에는 잘 도착했죠? 아까 얼핏 현관문 닫히는 소리 들은 것 같은데.


네, 도착했어요. 당신 아니었으면 길에서 울어버렸을지도 모르겠어요. 고마워요.


고마워하지 않아도 돼요. 그리고 다시 나와줘요. 당신 목소리 듣다 보니까 다시 보고 싶어서 당신 집 앞에 와있어요.


세상에. 당신 막차 놓친 거예요?


음, 내가 보낸 거죠. 당신이 더 중요하니까.


못살아, 정말.


나와요, 어여. 보고 싶어요.


곧 비 온다고 했는데. 우산 없잖아요, 당신. 아까 빗방울이 조금 떨어지는 것 같던데.


그러고 보니 비 냄새나네요.


걱정되니까 이리 들어와요.


조금만 기다려요, 달려가고 있어요.









윤, 그리고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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