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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으로 평가되는 나의 가치?

충동구매

by 이원희


여자라면 누구나 다 한 번쯤은 명품백을 고민 없이 사들고 쇼핑백을 한가득 안고 나오는 상상을 해보지 않았을까. 나도 한 번쯤은 그렇게 원 없이 쇼핑을 하고 싶을 때가 있다.


나는 물욕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나이가 들어가니 모임에 들고나갈 수 있는 백하나쯤은 가지고 있어야 하나 생각이 자꾸 들었다. 친구들이 리셀을 하면 된다고 하나둘 사들이는 것을 보며 속물이라. 사치라 생각했었던 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내가 돈이 없어서 안 사나, 사고 싶지 않다. 물욕 따위가 뭐 밥 먹여주나? 나는 내멋에 산다라는 자존심이 있기도 했는지 명품에는 나에게 큰 감흥을 주는 물건은 아니었다. 단순히 몇백에서 수천을 하는 가방을 구입하는 행위가 나에게 어떤 위로와 감격을 선사하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날 위해 그만큼 지갑을 열어 구매할 수 있는 용기가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다행히도 나는 백보다는 액세서리와 신발을 좋아한다. 그래서 꼭 가방을 사러 갔다가도 액세서리를 구매하며 좋아했었던 내가, 뭔가 그냥 뒤틀리는 마음이 들었는지 명품숍으로 달려가 가방이 사고 싶었다. 그래서 간길에 내가 좋아하는 운동화도 하나 시원하게 구입했다.


내 과시욕이었으리라. '나도 이 정도 능력은 있어~'라고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열심히 일하고 있는 나에게 선물을 한다라는 명분을 만들었지만, 현장에서 일하는 내가 잘 들고 다닐 일이 없는데 그렇게 비싼 가방이 필요했었나 싶은 마음에, 충동구매를 했나 싶어 후회 아닌 후회가 되기도 했다. 그 가방을 올 3월에 구입하고 딱 2번 들었다.


올해 내 생일날에도 나에게 선물을 하고 싶어서 고민을 했지만 결국 지름심은 나의 손을 들어주지 못했다.

사람 욕심은 끝이 없다. 벤츠는 하차감으로 탄다고 그러던데, 나 역시도 명품백은 그런 의미였을까?

그런데 과시하려고 산 명품백이 과시는 커녕, 옷방 자리만 차지하고 있다.


다들 '내가 명품이 되어야지.'라고 이야기하지만, 명품을 들고 있는 그들의 시선에는 '명품이 곧 능력이다.'라고 한다. 돈이 많으면 능력자라는 소리인 걸까?


큰아이 다니던 유치원에서 엄마들이 아이들이 유치원을 갈 때 명품옷을 입히는 것을 보고 이상했다. 내일이면 한 뼘씩 자라나는 아이들인데 왜 굳이 저리 비싼 옷을 입힐까 싶었다. 나 어릴 적엔 물려 입어야 건강하게 잘 산다며 사촌언니들의 해진 옷을 물려 입기도 했었는데 말이다. 아이는 모른다 명품이 뭔지, 돈의 가치가 무엇인지도, 같은 반 친구의 아버지 직업이 무엇이라도 상관없다. 그래도 엄마들은 명품을 입혔다. 어른들의 시선에서는 아이의 명품이 신분을 나눠준다고들 했다. 우스갯소리로 구스다운이 오리털 함량 퍼센트에 따라 보온성은 다 똑같은데 비싼 명품이 더 따뜻하게 느껴지는 것은 비싼 옷이라서 어깨가 더 당당하게 펴지기 때문에 혈액순환이 잘되어 그렇단다.




우리의 신분이 명품으로 나눠지는 건가 싶다. 나도 신분상승이라는 것이 하고 싶었던 것일까? 스스로를 생각해 본다. 명품을 사는 것이 단순히 물건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나도 이런 걸 가질 자격이 있다"는 과시가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나에게 물질적인 소비는 심리적 만족을 주지는 못했던 것 같다.


나 스스로 명품이 되어야 한다는 상투적인 말로 포장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나이에 맞는 태도와 행동들로 어디서든 어떤 백을 들고 다니던 위축되지 않는 당당함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쓸데없는 충동구매 하지 말고,
나답게 당당하고 우아하게 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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