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일에 필요한 세 가지 역량
안되면 되게 하라
우리 회사는 진입장벽이 낮기도 하고, 어찌 보면 높기도 하다. 누가 하든 조금만 하면 어느 정도는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이직률이 높지 않아 채용을 자주 하지 않는 점에선 진입장벽이 높다고 볼 수 있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누가 하느냐에 따라 차이는 분명 존재한다. 입사 초기에 같은 일을 둘이서 했는데 나한테 문의하거나 나를 찾는 사람이 더 많았다. 내가 다른 일을 했다면 반대가 됐을 수도 있다. 별 차이 없어 보이는 일에서 차이를 만드는 것도 능력이다.
내가 처음 입사했을 때 우리 회사의 일을 보고서 생산직이라고 설명하는 분도 있었고, 네이버 지식인처럼 누군가 문의할 때 응대하는 일이라고도 표현하기도 했다. 그런 말도 일리는 있지만 핵심은 아닌 것 같다. 나중에 후배에게 나는 우리 일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혼자 고민한 적이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우리는 대리인이다.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해결 방법을 고민하고 찾아주는 서비스직이다. 고객의 시간을 줄여주고 고민을 대신한다. 때로는 중간에서 의견을 전달하기도 한다. 단순 의견 전달이 아니라 그 의견이 받아들여지도록 설득해야 한다. 지금까지 내가 겪어본 바로는 이 일을 잘하려면 3가지 역량이 필요하다. 학습, 표현, 사람이다.
1. 학습
고객이 어떤 문제를 의뢰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미리 예상하고 공부하긴 어렵다.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단기간에 핵심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제너럴리스트다. 스페셜한 분야는 전문가에게 의뢰하면 된다. 내가 어디까지 알아야 하는지 파악하고 핵심을 빠르고 정확하게 학습한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혀 생각지도 못한 부분까지 찾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
고객이 의뢰한 문제는 기본적으로 해야 할 일이다. 수동적으로 고객이 이야기한 문제만 신경 쓰는 직원도 많다. 내가 먼저 학습해서 고객이 미리 신경 쓰고 선제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는 문제를 알려주면 좋다. 고객과의 신뢰를 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왜 그 문제를 지금 신경 써야 하는지 고객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학습 능력은 아래 두 가지 역량의 토대가 된다. 표현 방식에 대한 학습과 사람에 대한 이해는 평소 기본 교양 쌓듯 학습해야 하기 때문이다.
2. 표현
주로 말하기와 쓰기를 잘해야 한다. 우리는 회의가 일이다. 회의를 참석해야 할 때도 있지만 직접 개최하고 진행하는 경우가 더 많다. 회의 참석자들이 호락호락하지 않기 때문에 어설픈 학습으로 대충 말하면 될 일도 안된다. 말만 잘하는 사람이 있고, 보고서만 잘 쓰는 사람이 있다. 둘 중 하나만 잘하는 것보다 둘 다 잘해야 한다. 보통 회의 전에 사전 자료가 오가기 때문에 글도 잘 써야 한다. 글이 첫인상이 된다. 보고서가 별로면 암만 말을 잘해도 삐딱하게 듣게 된다.
우리 일이 대부분 누군가를 설득해야 하기 때문에 말과 글이 중요하다. 게다가 우리가 상대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순환보직이라 3년 정도 지나면 새로운 사람이 온다. 이 내용을 처음 보는 사람도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표현해야 한다. 결국 회의를 여러 번 준비하고 참석하다 보면 다른 사람들을 통해 배울 수 있다. 아무 생각 없이 몸만 왔다 갔다 하면 늘지 않는다. 말하기와 글쓰기는 평소에 학습이 필요하다.
3. 사람
결국 일은 사람이 한다. 우리 일은 사람 사이에 생기기 때문에 사람에 대한 공부와 인맥 관리는 필수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사람은 다양하다. '고객, '우리를 도와줄 전문가', '설득할 상대, ' '내부 의사결정권자' 등이다. 기본적으로 사람을 직접 응대할 일도 많고(위에서 말했듯 회의 참석이 일이므로 끝나고 회식도 많다) VIP 의전도 하므로 소통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평소의 대화가 신뢰를 쌓아 나중에 문제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또한 고객의 상황과 설득할 상대방의 성향, 원하는 것 등을 파악해야 설득에 용이하므로 사람의 심리와 설득 방법 등 사람에 관한 전반적인 학습이 필요하다. 이는 직접적으로 자주 만나서 배울 수도 있고 책을 통해 배울 수도 있다.
여기서 일하면 정말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컨택하게 된다.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느 분야의 어떤 전문가를 찾아야 할지 알 수 없다. 평소에 많은 사람을 알고 있으면 다른 연결을 통해 찾게 될 수도 있다. 그러니 평소에 좋은 관계를 잘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 우리 일은 사람이 역량이 된다.
조직에서 성공하는 데 가장 필요한 네 가지 혹은 다섯 가지 항목을 꼽는 리스트들을 보면 동료들과 협력해 일하는 능력은 반드시 포함된다.
학습, 표현, 사람 이 세 가지 역량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또 영향을 준다. 우리 일을 다시 정의해보면 <학습한 것을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표현하고 설득하는 일>이다. 이 역량이 필요한 이유는 누군가를 효과적으로 설득하기 위함이다. 설득은 혼자 할 수 없다. 동료들과 협력해야 한다. 문제를 해결할 때 동료는 우리 회사 직원만 동료가 아니다. 동료는 고객이 될 수도 있고 우릴 도와줄 전문가일 수도 있다. 위 문장은 사람을 역량이라 표현한 이유이기도 하다.
설득의 종류도 다양하다. 고객에게 이 문제 해결이 불가능하다고 설득할 때도 있고, 필요성이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설득할 때도 있다. 우리 일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 협상 상대방뿐만 아니라 때로는 내부자도 설득이 필요하다. 의사결정권자가 나와 생각이 다른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학습> 사람> 표현 순으로 강점이 있다. 표현 방식은 아직 부족함을 많이 느끼고 있고, 사람은 호불호가 분명한 타입이라 기버가 아닌 테이커들을 설득하는데 약하다. 상대에 따라 설득 수완이 부족한 경우가 있다. 사람에 따른 대응 방법을 다양하게 준비하고 표현 방법을 발전시키기 위해 아래 3가지 노력을 하고 있다.
1. 독서
사람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설득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심리, 설득, 협상 관련 책을 읽고 적용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최근에는 '운을 부르는 외교관'이란 책이 내가 하는 일과 비슷한 것 같아 읽을 계획이다. 책만 읽는 것이 아니라 국내에서 벤치마킹할 가능성이 높은 해외 사례도 미리 파악하기 위해 관련 자료들을 읽는다.
2. 시뮬레이션
회의에 참석하기 전에 시작부터 끝까지 상상해본다. 시작 인사는 부드럽게 하려는 편인데 가끔 누군가는 바로 안 된다며 본론으로 들어가거나, 바쁜 사람 부른다고 기분 나쁜 티를 팍팍 내는 경우도 많다. 이때 상대의 반응에 흔들리면 우리가 준비한 말도 다 못 하기 때문에 그런 상황이 발생하면 어떻게 답변할지 미리 생각해본다. 또 상대가 어떤 말을 할지, 어떤 논리로 반박할지 예상해보고 그에 따른 시나리오를 생각하고 준비한다. 모든 회의가 우리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미리 생각해본 자와 아닌 자는 대응 방식에 큰 차이가 있다.
3. 많이 쓰고 피드백 구하기
보고서를 빨리 잘 써야 한다. 급하게 제출해야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평소에 보고할 만한 것들을 미리 정리해 둔다. 그리고 타 부서나 이 일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 읽어보고 이해가 쉬운지 피드백을 구하고 적용한다. 평소에 기록을 많이 한다. 말이 글보다 쉽기 때문에 보고를 말로 때우는 사람도 많다. 같은 팀 과장님이 기록왕이어서 옆자리에 앉아있던 나도 보고 배웠다. 웬만한 회의나 전화는 다 기록하고 보고는 무조건 글로 한다. 기록은 기억을 이긴다. 기록해두면 나중에 찾기도 쉽고, 기억보다 정확하며 신뢰가 생긴다. 그때 회의가 어떻게 끝났는지 누군가 물어봤을때 기억에 의존해 답변하는 사람과, 기록을 보여주는 사람 중 누가 더 신뢰가 쌓이겠는가?
우리는 대부분 우리 자신이 믿는 것보다 더 능력이 있다.
매번 주어지는 도전을 개인의 성장을 위한 수단으로 삼을 수 있다.
<자존감의 여섯 기둥>
누구나 처음은 어렵다. 나도 그랬다. 모든 순간, 회의를 나의 성장을 위한 수단으로 삼았고 쟤도 하는데 나도 할 수 있다고 믿었다. 지금은 일이 어느 정도 익숙해졌지만 언젠가 또 다시 내가 예상하지 못한 도전이 주어질 것이다. 나는 동료들과 함께 또 그 도전을 수단으로 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