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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비밀은 있다

자기 역사를 쓴다는 것

by 유프로


어린 시절에는 위인전이나 자서전을 즐겨 읽었다. 다른 사람이 살아온 시간을 읽는 것이 재밌기도 했고, 내가 경험하지 못한 일들은 나중에 비슷한 일이 닥쳤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 볼 수 있어서 예방접종받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읽으면서 언젠가 나도 자서전을 쓰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했다.


한 직장에서 37년간 근무하고 올해 퇴직하신 아버지가 그간의 경험을 책으로 쓰고 싶다고 말씀하셔서 아버지를 도와드리고 싶다는 생각과 더불어 나의 옛 생각이 떠올랐다. 때마침 지인의 우연한 추천으로 <자기 역사를 쓴다는 것>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고, 어떻게 아버지를 도와드릴 수 있는지 도움받을 수 있었다.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 ' '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 책으로 접한 적이 있는 다치바나 다카시의 <자기 역사를 쓴다는 것>은 시니어들의 역사 기록을 돕는 수업을 요약한 책이다.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책을 만난 것 같아 반가웠다. 후반부에는 참가자들의 예시가 많이 나오는데 일본 역사를 잘 몰라서 그런지 크게 와 닿지는 않았다. 그래도 왜 자기 역사를 써야 하는지, 어떻게, 무엇을 써야 하는지 3가지를 얻을 수 있어서 읽어볼 만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1. 왜 쓰는가?

첫 번째 이유는 치유의 글쓰기다. 아래 문장은 자기 역사를 기록한 사람의 후기의 일부이다. 자기 역사는 자기 자신을 위해 쓰는 것이다. 기록은 치유의 힘이 있다. 누구나 괴로운 일은 있다. 그것을 제대로 치료해온 경우도 있고 아닌 경우도 있을 것이다. 오래전일이라도 제대로 극복하지 않았다면 언젠가 터질 수 있다. 자기 역사를 쓰며 그러한 아픔들을 다시 보고 정화할 수 있다.


"싫어했던 것이나 괴로웠던 것을 자기 역사로 써 내려가면서 조금씩 정화되면서 모든 일이 그리운 추억으로 자리해 갔다"
한 사람의 자기 역사는 그 인생을 살아낸 자기 자신을 위해 쓴다.
<자기 역사를 쓴다는 것>


두 번째는 자기반성이다. 기록하다 보면 객관적으로 보거나 나 자신이 나를 한 발 떨어져서 볼 수 있다. 과거에는 옳다고 생각해서 한 행동이 지금 다시 돌이켜 보면 달리 보일 수 있다. 기록하지 않으면 그냥 넘어가거나 다시 생각하기 어렵다.


냉정한 자기 분석은 필수, 자신의 실패를 숨김없이 써 내려가면서 그 실패에 대해서 면밀하게 자기 분석을 하는 부분이다.

자기 역사를 작성하는 일은 단순히 자신의 과거를 써 내려가는 것에 머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자신의 과거가 지금의 내가 바라볼 때에 어떻게 보이는가? 좀 더 자세하게 말하자면 지금의 내 관점에서 과거를 다시 보고, 어떻게 시작이 달라져 왔는지를 포함해서 작성하는 일이 자기 역사이다.

<자기 역사를 쓴다는 것>



2. 무엇을 쓰는가?

크게 3가지의 기록이 필요하다. 1) 이력서, 2) 개인생활, 3) 가족사이다. 이를 표로 만들어 깔끔하게 기록한 예시가 책에 나온다. 유년기, 학생, 입사 초기, 경력 중반, 은퇴 이런 식으로 크게 어떻게 구분하여 작성할지 스스로 고민해보고, 자신의 역사뿐만 아니라 세계나 우리나라의 주요 사건과 그 사건들이 내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도 기록한다. 책에 나온 여러 가지 예시들을 참고하면 이해하기 더 쉬울 것이다.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구분할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지점에서부터 자기 역사의 집필은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아무튼 사진의 인생을 몇 가지 시대로 크게 구분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인생을 큰 시대별로 구분해서 볼 수 있는 자기 역사 연표를 만드는 일이다. 구분을 마쳤다면 그 구분 하나하나에 적당한 이름을 붙이는 것이 좋다.

자기 역사를 써 내려갈 때, 처음부터 큰 틀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가를 생각하는 일은 중요하다. 개인사를 들여다보는 눈뿐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를 들여다보는 눈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는 바로 이런 의미이다.

<자기 역사를 쓴다는 것>
자기 역사 연표의 골격은'이력서(학력, 경력)+개인 생활사+가족사' 등이므로 먼저 그에 관한 아우트라인을 자신의 생각이 떠오르는 대로 메모해 두는 것부터 시작하면 된다.

경력 부분은 담당했던 업무의 역사, 직장 이동의 역사가 들어가는 것이 좋다. 개인 생활사는 주소 변경의 역사를 확실하게 기록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기 역사를 쓴다는 것>
인간관계 측면에서 자기 자신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때그때 자기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인간관계 클러스터 맵(인간관계 유형지도)을 만들어 보는 것도 필요하다.

동시대에 일어났던 세상의 사건과 상황을 기입하는 공간을 만들어 두면 좋다. 시중에 판매되는 연표보다는 자기 자신의 기억에 강하게 남아 있는 사건과 상황을 기입하는 것이 좋다.

<자기 역사를 쓴다는 것>


3. 어떻게 준비하는가?

한 번에 완벽하게 기록하겠다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

자기 역사를 쓸 때마다 자신의 생각이 변화한다. 자기 역사는 아무리 써도 다 쓰지 못한 느낌이 들어 좀처럼 만족스럽게 마무리되는 경우가 드물다.

인간은 생각이 날마다 바뀌는 존재이므로 자기 역사를 한 번 써서 일단 책으로 완결시켰다고 하더라도 생각이 거기서 멈추는 것이 아니다.

<자기 역사를 쓴다는 것>


지금까지 나의 자기 역사 연표를 하루 만에 적어 보았는데, 역시나 다음날 바로 더 컸던 사건이 떠올랐다.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는 것들도 있고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건도 바뀔 수 있다.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평소에 꾸준히 기록하고, 생각이 바뀔 가능성을 충분히 감안할 필요가 있다.


자료를 정리하면 기억이 되살아난다 자기 역사 연표를 만듦과 동시에 자료를 정리해 둘 필요가 있다. 자기 역사와 관련한 여러 자료들이 책상 서랍이나 서랍장 속, 혹은 종이 더미나 각종 파일 속에 있을 수 있다.

인간의 기억은 결국 에피소드 단위로 정리되어 있기 때문에 무엇이든 에피소드가 떠오를 때마다 메모할 '에피소드 수첩'을 만들어 놓는 것이 좋다.'자기 역사 연표', '인간관계 클러스터 맵', '에피소드 수첩'이 세 가지가 자기 역사를 쓰기 위한 3대 준비 작업이라고 해도 좋다.

<자기 역사를 쓴다는 것>


추가로 자기 역사를 기록하며 마지막을 준비하기 위해 아래와 같은 것들을 기록해도 좋다.


"자기 역사의 마무리 방법, 유언과 비슷한 요소, 묘지나 장례식 혹은 사후 장기기증이나 유산의 분배 등을 일반적인 관습이나 법적 원칙에 따르려는 사람들은 특별히 할 필요가 없는 것, 하지만 일반적인 관습에 따르지 않고 이렇게 하고 싶다 혹은 이렇게 해주었으면 좋겠다 나아가 이렇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등의 생각이나 적극적인 희망사항이 있으면 분명하게 기록해 두는 것이 좋다. 분명한 의사 표시 기록이 있으면 남겨진 사람들이 큰 어려움 없이 뒷일을 마무리할 수 있다."


올해 목표 중의 하나가 사소한 기록이라도 꾸준히 하는 것이다. 아직까진 두 달 넘게 잘 이어오고 있다. 한 때 몇 년간 일기를 매일 썼었지만 찾아보기 어렵고 기록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려 그만두었다. 올해부터는 워크플로 위에 매일 주요 내용을 기록하고 태그로 구분하고 있다. 매월, 매년 주요 사건을 정리할 계획이다. 나의 자기 역사 기록은 다시 시작되었던 것이다.


언제 완성될지 모르는 자기 역사이지만 다른 사람들의 예시를 읽고 나니 어떻게 기록해야겠다는 방법도 배울 수 있었고, 절대 한 번에 완성될 수 없음을 깨달았다. 꼭 자서전을 내지 않더라도 이력서처럼 정기적으로 업데이트해야겠다. 자기 역사 기록은 누구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기록임을 다시금 깨달았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자기 역사인 안네의 일기도 본인을 위해 쓴 것이 큰 목적일 것이다. 나를 위한 것이 결국 남을 위한 것이 되기도 한다. 먼저 자신의 기록을 사랑하고 기록해보자.




*참고문헌 : 자기 역사를 쓴다는 것, 다치바나 다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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