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해 뭐해 싶냐만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국내 기업의 재택근무 도입률(2016년 기준)은 3.0%로, 미국(38.0%) 일본(11.5%)에 비해 낮다. 거래처에서 확진자와 접촉한 분들은 가끔 있었지만 위와 같은 통계와 보수적인 직장 문화로 인해 재택근무는 절대 못할 줄 알았다. 주변에서 하나, 둘 재택근무를 도입하는 기업이 늘어나더니 우리 회사도 재택근무를 약 2주간 시행하고 있다.
썸네일로 우연히 본 웃긴 사진을 하고 싶었지만 출처를 알 수 없어 사용하지 못했다. 컴퓨터 앞에는 엄마로 보이는 여성이 헤드셋을 끼고 앉아있고, 남자아이 셋은 손과 밖이 묶인 채로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누워있다. 나도 재택근무를 며칠 하고는 있지만, 어린이 집 개학이 연기된 조카 두 명 중 한 명이 우리 집에 와 있어서 실감했다. 아이와 단둘이 집에서 근무하는 것은 쉽지 않다. (두둘은 축하한다..) 하지만 이는 우리 모두에게 처음인 상황이고, 개학을 한다면 아이와 집에 같이 있는 시간은 줄어들 것이다.
모든 직업이 재택근무를 하기는 어렵지만 이번 기회에 도시의 사무직 근로자들은 어느 정도 재택근무를 진지하게 고려해봤으면 좋겠다. 몇몇 기업에서는 이미 유연근무제나 자율 좌석제 등을 실행하고 있어서 재택근무에 필요한 시스템이나 노트북 등을 제공하기 쉬웠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비해 재택근무 도입률이 높다고 하던데 이런 이유도 있을 것 같다. 1주일 간 재택근무를 처음 해보고 느낀 4가지 장점이다.
1. 매일 출퇴근으로 인해 소요되는 시간을 아낄 수 있다. (하루 평균 약 세 시간)
준비하는 시간이나 직장과 자택 위치에 따라 개인차가 크겠지만 보통 왕복 이동 시간 2시간, 아침에 준비하고 저녁에 퇴근하고 씻는 시간 1시간이다. 거기에 근무 8시간과 식사 시간 1시간을 합치면 하루 평균 직장으로 인해 보내는 시간이 12시간이나 된다. 근무 시간만 보면 8시간이지만 그 8시간을 일하기 위해 앞 뒤로 준비해야 할 시간이 추가로 든다. 재택근무는 출퇴근 시간을 아무리 오래 잡아야 10분이다.
2. 시간뿐만 아니라 교통체증으로 인한 스트레스도 없다.
대다수의 직장이 9-6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때 가장 길이 많이 막힌다. 대중교통도 혼잡도가 심하다. 출퇴근 시간이 길어질수록 느끼는 몸의 피로도도 커진다. 이는 부동산과도 연결되는데 직장이 많이 있는 곳 주변 집값이 비싼 이유이기도 하다. 재택근무를 한다면 굳이 직장 근처에 살 필요도 없고 매일 이동하는데 받는 피로도도 줄어든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위생적으로나 정서적으로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평소 근무 환경이 좁은 사무실의 경우 재택근무로 사무실을 더 넓게 활용할 수 있다.
3. 업무의 자유도가 높아진다.
깨어 있는 리더는 고객보다 직원이 중요하다고 한다. 고객을 만나는 직원의 기분이 좋아야 고객에게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재택근무를 싫어하는 직원이 있을까? 자율 좌석제도 관리자는 불편하지만 다른 직원들은 다 좋아한다. 재택근무를 한다고 해서 365일 일 년 내내 하려는 기업은 없을 것이다.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이 더 편하고 빨리 진행될 때도 있다. 재택근무를 번갈아 한다면 바뀐 환경으로 인해 직원들이 생각의 폭이 확장될 수 있다. 그리고 업무의 자유도가 높을수록 보스가 뒤에 없을수록 직원들이 편안함을 느끼는 것은 말하지 않아도 잘 알 것이다. 다들 그런 경험은 있으니까
4. 어린 자녀가 있는 맞벌이 부부의 걱정을 줄일 수 있다.
어린 자녀가 있다면 부부가 직장에 있는 동안 아이를 맡길 곳을 찾기 위해 애쓴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아이만 그렇게 두는 부모님의 마음이 편한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더 어리다면 등 하원 도우미 고용 등으로 월 지출 비용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기도 한다. 이런 것들이 아이를 키우는 데 더 어려운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현장 근로자 등을 제외하고 꼭 현장에 출근해야 할 이유는 없다. 물론 지금은 준비 없이 재택근무를 하게 됐고 학생들의 개학이 연장되고 다들 집에 있는 것이 나은 상황이지만, 앞으로는 미리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는 적절한 근무 환경을 조성하고, 상호 신뢰관계가 잘 구축돼 있다면 단기적인 이벤트가 아니라 정기적으로 시행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쩔 수 없이 재택근무를 한 것이 아니라 이렇게 해도 되는구나를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사람은 적응을 잘하고 또 쉽게 잊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예전처럼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가 사람들 기억에 각인될 만한 이벤트가 많았기 때문에 모든 것이 종료돼도 어느 정도 사회 변화 요인이 될 것 같다. 우리가 의식하긴 어렵겠지만 어느 순간 보았을 때 2020년부터 무언가 시작된 것이 많다고 느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