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등 학생 때 나는 시험을 위한 영어만 공부했다. 대학생까지도 물론 그랬다. 영어로 된 글은 단문 독해에만 익숙했는데 대학생 때 논문과 전공교재를 보면서 처음으로 긴 글을 읽어야 했다. 속도도 당연히 느리고 무엇보다 읽고 싶지 않았다. 한글책도 두꺼우면 부담스러울 때가 있는데 영어책은 얇아도 부담은 더했다. 읽어야 하니까 조금씩 읽기는 했는데 스스로 느끼기에도 받아들이는 속도가 느렸다.
시간이 무한하다면 천천히 읽어도 되겠지만 시험 볼 때도 시간제한이 있고, 무엇보다 중요한 퇴근 시간도 있다. 주어진 시간 내에 빨리 읽는 것도 능력이다. 영어로 된 글을 빨리 제대로 읽기 위한 훈련이 필요하다 생각했다. 우연히 '읽기 혁명'이란 책으로 유명한 스티브 크라센의 말을 보게 되었고 그때부터 영어 원서를 읽기 시작했다.
다독은 영어를 익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니다. 그것은 유일한 방법이다.
언어학자 스티브 크라센
160권 정도 읽고 난 후부터 별도 카운팅은 하지 않고 있는데 이 덕분에 영어 기사를 읽거나 영어 자료를 읽을 때 크게 거부감이나 부담은 없다. 아직도 한글 읽는 속도에 비해서는 느리지만, 영어로 된 자료가 더 많고, 좋은 자료도 많기 때문에 오히려 거의 매일 찾아보고 있다. 이때 원서 읽는 습관을 만든 것이 지금도 내게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대학생 때 영어 자료 읽기로 시험 영어로 해결할 수 없는 경험을 했다면 입사 후엔 쓰기로 인한 어려움을 겪었다. 다들 잘 알다시피 우리나라는 수출로 잘살게 된 나라다. 무역 의존도가 95%를 넘는다. 요즘 경제와 자본주의에 대해 관심이 많아져서 다양한 책을 보고 있는데 미국 외에 나라는 결국 외화벌이가 가장 중요한 일이다. 내가 종사하는 업계도 수출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수출입자와의 소통에도 영어가 대부분 쓰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영어로 소통하기 위한 말하고 쓰는 연습은 거의 하지 않은 채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나만 그랬나?)
내가 입사하고 지금까지 하는 일은 해외 동향 파악이 필요한 일이기도 하고, 가끔 해외 파트너와 메일을 주고받기도 하며, 외국인들과의 회의도 참석할 일이 있었다. 어떻게든 말하고 쓰긴 했지만 편하진 않았다. 내가 한 말이 맞는지도 확신이 없었다. 그리고 다른 회사의 경우를 들어봐도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해외사례는 어떻냐고 물어보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영어로 읽고 쓰기만 잘해도 편하게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토익에 비즈니스 영어가 나온다고 하지만 도움이 되었는가 생각해보면 거의 아닌 것 같다. 그때부터 실전 영어를 잘하기 위해 전화 영어도 해보고 내가 하는 일과 관련된 영어 기사나 자료를 읽었다. 일부 전화 영어는 매일 한 가지 질문을 주고 500자까지 제한된 글을 쓰면 첨삭을 해주기도 했다. 그런데 이 질문이 크게 내가 대답하고 싶지 않은 것들이라 흐지부지하게 됐고, 첨삭 수준도 자연스러운 표현을 제안해주기보다 오타를 고쳐주는 수준이라 그만두었다.
내가 한국말로 할 일이 없는 말이라면 외국어로도 할 일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주어진 답변을 연습하는 것이 초보 단계에서 필요할 수 있지만 내가 말하고, 쓰고 싶은 것들을 따로 연습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고 빠른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만의 영어 영작 노트를 만드는 것은 이미 많은 영어 정복자들이 추천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영어 메일을 써야 할 때 어떻게든 쓰긴 하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거나 내 의도가 제대로 전달될까 찜찜하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이렇게 주먹구구로 영어를 쓰기도 싫고 애증의 영어를 이젠 제대로 익히고 싶어졌다. 완벽히 영어를 다 공부한 다음에 글쓰기를 시작한다면 평생 시작하지 못할 것 같았다. 처음엔 어렵겠지만 하다 보면 익숙해질 것이고 뭐든 어렵게 공부해야 내 것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지난 30일 동안 매일 Medium에 영어로 글을 썼다. 실제로 30일간 영어 글쓰기를 하고 나니 원서를 읽고 난 후와 비슷하다. 아직 완벽하지 않지만 적어도 두렵지는 않다. 30일 동안 영어 글쓰기를 하며 느낀 점이자 앞으로도 계속 쓰려는 3가지 이유이다.
1. 아웃풋을 하며 스스로 다양한 상황을 연습할 수 있다
어렵게 배운 것이 잊기도 어렵다. 글쓰기는 아웃풋을 통한 인출 효과가 있다. 실전에서는 사전도 파파고도 없다. 바로바로 말과 글이 나가야 하는 상황에서 미리 사용해봤던 표현과 말들은 자연스럽게 인출될 것이다. 내 앞에 어떤 상황이 펼쳐질 지 알 수 없다.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상황에 대한 인출 연습을 해본다면 어떤 상황이 펼쳐져도 대응이 가능할 것이다.
'울트라러닝'이란 책의 저자 스콧 영은 독학으로 MIT 4년 과정을 1년 만에 배우고, 언어도 3개월에 한 개씩 배웠다. (그중 하나가 한국어다.) 9가지의 효과적인 공부 방법을 소개하는 데 언어를 배울 때는 '직접 하기'를 추천한다. 언어 연습은 남의 말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직접 연습해야 실력이 향상된다.
2. 실전을 위한 실수 예방접종이 된다
말이든 쓰기든 실전이라 생각하고 연습해야 한다. 당연히 틀릴 것이다. 이 실수는 다음에 나의 실전에서 실수를 줄여줄 것이다. 지금 연습할 때 실수하고 바로잡지 않으면 나중에 실전에서 실수한다. 시험볼 때 이전에 틀려서 다시 공부했던 문제와 처음 보고 실수도 안 해본 문제 중, 어떤 문제의 정답률이 더 높겠는가? 한 번 틀리고 다시 공부한 문제는 내 것이 된다. 차라리 지금 실수하며 배우는 것이 낫다. 연습할 때 실수를 두려워하거나 부끄러워 하지 말고 지금 마음껏 실수하자.
3. 내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읽을 때는 다 이해해도 직접 써본 적이 없으니 내가 표현할 수 있는 문장이 어느 정도인지 잘 모른다. 글을 쓸수록 내게 어떤 표현과 구조가 부족한지 깨닫고 있다. 직접 글을 써보니 현재 나의 수준과 앞으로 무엇을 더 공부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영어 자료를 읽다가 내가 하고 싶었던 표현을 발견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지금 내가 익숙하지 않은 영어 글쓰기는 사물이 주어로 나오는 문장과 후치수식이다. 영어는 후치수식이 많고 한국어는 전치수식이 많기 때문에 아직 익숙하지 않지만, 영어로 글을 쓸 때 구조를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그리고 영어를 읽을 때도 내가 잘 못 쓰는 표현이나 쓸 법한 문장은 유심히 보게 된다. 다음에 따라 써보기 위해 암기도 하고 있다.
나는 [한달미디엄]이라는 환경설정과 함께하는 동료들 덕분에 지난 달 30일 동안 영어 글쓰기를 할 수 있었고, 위 3가지 이유로 이 방법이 내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 운동이든 악기든 뭐든 천천히 하지 못하면 빨리도 못 한다. 영어도 천천히 쓰지 못하는 문장을 내가 빨리 말할 수 있을까? 앞으로 많은 실수를 공개적으로 하겠지만 바로 잡아가는 과정이니 두렵지 않다. 나중에 중요한 순간에 실수하지 않고 빠른 퇴근을 위해 나는 오늘도 마음껏 실수하겠다.
영어 공부를 제대로 하고 싶은 분, 글쓰기의 두려움을 없애고 싶으신 분이 있다면
우리 함께 미디엄에서 두려움은 없애고 실력은 쌓아갑시다! :-)
[한달] 커뮤니티 둘러보기
https://www.site.handal.us
[한달미디엄] 프로그램 구경하기 (진행 기간 : 2020.6.15(월)~7.15(수))
https://www.site.handal.us/blank-5
[한달] 입문 과정 [반달 쓰기] 신청하기 / (2020.6.3(수) 18:00 마감)
https://bit.ly/반달쓰기_신청하기
(이번 반달쓰기를 통과하면 바로 한달 7기 프로그램에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