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수고했어, 오늘도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나의 인생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위와 같다.
나는 고생의 아이콘이었다. 가난을 제외한 비극을 직간접적으로 거의 다 겪어봤다. 통제영역 밖의 사건사고가 많았다. 친한 친구들이 힘든 일을 겪을 때 내게 전화를 해서 하소연을 하다가, 본인들이 괜스레 내게 전화한 것을 미안해 하거나 너에 비하면 자기들은 아무것도 아니라며 위안을 얻고 갔다. 그리고 너는 젊어서 고생했으니 노년이 편할거라는 희망적인 말을 해 줄 정도였다. 예전에 나는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라는 말에 어느정도 동조했었지만, '안해도 될 고생은 안해도 된다'라고 생각한다. 나중에는 고생에 대한 스스로의 보상 심리가 생겼는지 얻을 수 있는 편안함을 거부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점점 치열하게 사는 것에 멀어져 간 것 같다.
예전에 어디선가 읽은 이야긴데 어느 유명한 철학자에게 가난한 아이와 부자 아이 중, 누구의 가정교사가 되겠냐는 질문에 부자 아이의 가정교사가 되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왜냐하면 가난이 가르쳐 준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런 고생 덕분에 나도 배운 것이 많았다. 내가 얻은 것 중 하나는 또래에 비해 일찍 철이 든 애어른이 됐다는 점이다. 직장에서도 10살이상 차이 나는 분들도 내게 하소연을 잘하신다.
비극이 더한 비극으로 이어졌던 일은 내탓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걱정하지 않도록 힘들다고 표현하지 않았고 아파도 잘 티가 안나는 타입이다. 그리고 또 개그 본능이 숨어있어 남을 웃기는 것을 좋아했다. 언제나 농담을 잘하니 다른 사람들은 내게 무슨 일이 있는지 잘 몰랐다. 힘든 일이 있어도 그것을 잘 극복하고 사람들을 만나거나, 힘들면 힘들다고 이야기했어야 했다. 내 마음은 아직 괜찮지 않은데 다른 사람들에게 그것을 표현하지 못했다. 나의 속마음과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의 괴리감이 날 더 병들게 했다. 다른 사람들에겐 희극을 보여주면서 내 스스로는 비극이었다. 난 연기를 잘하니까 희극을 보여주다 보면 괜찮아지겠거니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비극적인 일들 때문에 스스로는 비관적으로 보낸 시간도 있지만,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라는 책을 읽고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이란 말에 꽂힌 뒤 마음을 고쳐먹었다. 인생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내가 선택할 수 없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나의 반응과 태도뿐이다. 어떤 비극을 겪어도 그것에 주눅들지 말자고 다짐했다. 저말은 곧 '도전하라, 한번도 실패하지 않은 것처럼', '살아가라, 한번도 비극이 없었던 것처럼' 등등으로 보였다.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을 도와줄 '손바닥 자서전 특강'을 읽고 있다. 오늘 3개의 인상적인 문장을 만났다.
모든 사람의 삶은 한 권의 책이다.
내가 예전에 했던 생각과 비슷하다. 내 블로그 주소가 lifeisbook 이다. 책이 사람을 만들고 사람이 책을 만든다. 모든 사람의 삶도 한 권의 책과 같다. 우리 모두의 스토리에는 기승전결도 있고 교훈도 배울 점도 있다.
당신이 알고 있는 그 이상의 무엇이 당신에게 있다.
사실 늘 내 안에 품고 있는 생각이다. 당신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든, 없다고 생각하든 생각하는 대로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무언가 더 할 수 있는 잠재력이 내 안에 있다고 생각한다.
기록해보지 않고는 자기가 누구인지 알 수 없습니다.
나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뭐든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기록은 나를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도와준다. 한 때 매일 일기를 썼었다. 쓰다보니 보통 매일 30분이 걸렸다. 그 때 치유의 글쓰기를 느꼈다.
마침 올해 나는 기록 중독자가 되기로 했다. 모든 것을 기록하고 있다. 일단은 키워드 위주로 기록하고, 이것들 중 글로 쓰고 싶은 것은 글로 풀어 써보려고 한다. (브런치에 다시 기록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기도 하다.)
기록하다보면 내가 알고 있는 것 이상의 내 안의 무언가를 발견할 것이고, 그 무언가가 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올해 나의 모토 중 하나.
기록하라, 한 번도 경험하지 않은 것처럼 :)
설렘을 갖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