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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마음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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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혜정 Jan 17. 2024

구독의 시대

내게 머문 마음

  핸드폰에 알람이 뜬다. 구독 설정을 해 둔 채널에 새로운 영상이 올라왔다. 보고 싶은 마음은 벌써 저만치 마중 나가 있다. 영상을 클릭하고 싶은 마음이 전력 질주를 한다. 하지만 최애 영상은 홀로 비밀 일기를 쓰듯 온전히 누려야 제맛인 법! 정신없던 하루를 마감하는 샤워 시간. 아껴 둔 영상을 플레이한다. 샤워부스는 마치 영화관처럼 소리가 울리고 적당한 온도의 물과 기다리던 영상은 최고의 하모니를 이룬다. 나만의 화캉스(화장실에서의 바캉스)가 시작된다.      


  내가 구독하는 채널이 몇 개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대략 십여 개 남짓 될 것 같다. 주제도 다양하다. 미니멀 라이프에 대한 것도 있고 내가 체험해 보지 못한 부유한 생활을 엿보는 것도 있다. 먹방이나 살림에 관한 채널도 있다. 구독 리스트는 마음의 변화에 따라 시시각각 바뀐다. 오랫동안 살아 있는 채널도 있고 며칠을 견디지 못하고 구독 취소를 당하는 채널도 있다.      


  꽃을 좋아하는 나는 가끔 꽃을 사다 꽂곤 한다. 그러다 우연히 꽃도 구독 서비스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신이 원하는 간격으로 꽃을 집으로 보내 준단다. 다양한 종류의 꽃을 꽃집까지 가지 않아도 편히 받아볼 수 있다. 시들지도 모르는 생화를 집집마다 배달해 줄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구독 서비스는 나에게 알려주지도 않고 벌써 우리 생활 곳곳을 파고들었다.      


  꽃뿐만 아니라 영양제도 개인의 건강 상태에 맞춘 구독 서비스가 진행되고 있고, 마시는 차나 면도기도 구독 서비스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간편식 구독 서비스는 이미 자리를 잡은지 오래고 자동차까지도 구독하는 시대라고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의식주 전반에 관한 구독 서비스는 앉은 자리에서 모든 것을 손에 넣을 수 있게 해주었다. 굳이 가게에 가서 물건을 고르고 무엇을 선택할지 고민할 필요도 없다. 빅데이터 기반 AI들이 나를 분석하고 내게 맞는 것들을 내 앞에 고이 모셔다 준다. 유형의 물건을 구독하는 서비스는 그 가짓수를 셀 수도 없을 지경이다.      


  이제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구독 서비스는 무형의 것이 아닐까 싶다. 이름하여 ‘마음 구독 서비스’. 누군가 나를 사랑해주고 보살펴 준다는 마음을 느끼고 싶을 때 그런 마음을 구독하는 거다. 타임캡슐처럼 어딘가에 보관되어 있던 사랑하는 마음을 내가 필요로 할 때 구독할 수 있다면 좋겠다. 위로가 필요할 때는 위로를, 용기가 필요할 때는 용기를, 축하가 필요할 때는 축하를 선사해 주는 구독 서비스! 상상만으로도 이미 구독한 듯한 착각에 빠진다.     


  물론 이런 구독 서비스가 생기는 게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경험들이 마음 근육을 더욱 단단하게 하는데 각종 마음 구독 서비스는 우리의 정신을 자라지 못하게 할지도 모르겠다. 모든 순간에 성장은 있고 실패나 어려움을 경험하는 것이 더욱 단단한 나로 서기 위한 밑거름이 된다는 것은 이미 오랜 경험으로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구독 서비스로 필요할 때마다 결핍된 부분을 즉시 채워나가면 마음이 미처 다 자라지 못한 미성숙한 어른들이 늘어날 것도 같다.     


  하지만 상상은 자유다. 나는 마흔이 넘은 지금도 엄마 사랑 구독 서비스를 꼭 신청하고 싶다. 부모님이 건강하게 살아계시고 보고 싶으면 만날 수 있는 지금이 정말 행복한 시간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상상하고 싶지 않은 어떤 순간이 도래했을 때 어딘가에 저장해 둔 엄마의 사랑을 구독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한 선물이 있을까 싶다. 또한 먼 훗날 우리 딸들이 나의 사랑을 느끼고 싶은 순간, 구독 서비스로 온전히 나의 온기를 느끼게 할 수 있다면 참 좋겠다.      


  어쩌면 지금도 나는 엄마 사랑 서비스를 열심히 구독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서비스는 영원히 나의 구독 리스트에서 사라지지 않을 단 하나의 채널이 될 것이다. 그럼 엄마가 가장 받고 싶은 구독 서비스는 뭘까? 내 사랑 구독 서비스가 아닐까 싶다. 크리에이터들이 더 자주 영상을 올려 구독자들과 더 많이 소통하려 애쓰듯 나도 엄마에게 더 자주 사랑을 전달해야겠다. 나중을 기약하지 말고 바로 지금 엄마가 내 사랑의 열혈 구독자가 될 수 있도록 해야겠다. 엄마를 위한 다음 컨텐츠를 빨리 만들어야겠다. 엄마가 꼭 구독과 좋아요를 눌러줬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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