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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혜정 Jan 19. 2024

그 집은 어디로 갔을까?

네게 머문 마음

  마지막 이삿짐이 세월의 무게를 견디며 1층으로 내려간다. 오랜 세월 그 집의 주인이었던 여자는 현관문을 꼬옥 닫는다. 마치 자신이 그 집에 남겨놓은 추억이 도망가지 못하게 하려는 듯. 닫힌 문을 확인한 후 늘 그래왔던 것처럼 긴 복도를 걸어간다. 그러다 잠시 주춤하며 돌아서기를 반복한다. 여자가 지나간 자리에 새겨진 보이지 않는 보임을 읽어본다. 마음속에 맺혔다 사라졌을 무수한 말들을 마지막 발자국에 남기며 여자는 복도 끝으로 점처럼 작아진다.      


  SNS에 올라온 글을 보다가 알게 된 그 여자의 집. 내가 나이들면서 함께 나이들었을 그 집이 이제는 사라져버린다고 했다. 1982년에 태어난 그 집은 그 당시에는 획기적인 주상복합아파트에 심지어 가든테라스가 있는 집이었다고 한다. 단 열아홉 가구밖에 살지 않으나 평수가 넓고 세대마다 마당이라 해도 손색없을 만큼 넓은 테라스를 품은 집. 아이들이 복도에서 자전거도 타고, 줄넘기도 하며 운동장처럼 뛰어다니던 집. 아쉬움과 애틋함 속에 오래 기억될 그런 집.     


  내게도 그런 집이 있다. 결혼하기 전까지 거의 30년을 살았던 집. 아버지의 직장으로 인해 잠시 다른 도시에 가서 산 적이 있었지만 컴퍼스로 원을 그리 듯 다시 그곳으로 돌아왔던 나의 집이 있었다. 한 집에서 30년 가까이 살아서인지 집에 대한 추억이 많다. 그 집은 2층 주택이었고 마당도 품고 있었다. 젊은 엄마가 열심히 정원을 가꾼 덕분에 철마다 색색의 꽃들이 피어났고, 꼬마였던 우리가 걸터앉아 사진을 찍었던 바위는 꽃들로 뒤덮여 다 자란 우리는 앉을 곳이 없었다. 여름이면 동생과 푸른 정원에서 물놀이를 하고, 2층으로 이어지던 계단은 언제나 무섭고도 은밀한 곳이었다.      


  결혼을 하며 아파트 생활을 시작했고 늘 마음에 마당있는 주택을 품고 살고 있다. 내가 살았던 집도 부모님이 아파트로 옮기시며 허물어지고 그 자리에 원룸이 들어섰다. 가끔씩 그 앞을 지나가며 이제는 사라진 그 집을 혼자 그려본다. 지금까지 살아있었다면 어떤 모습이었을까 애틋함을 담아 상상해보곤 한다.     


  가든테라스 아파트에 살던 사람들도 그런 애틋함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주민들을 인터뷰한 내용은 잔잔하지만 가슴에 얹힐 만큼 묵직했다. 이웃 간의 정(情)이 무엇인지 여실히 느껴졌고, 젊었던 가든테라스 아파트는 주민들과 함께 늙어갔다. 복도를 뛰어다니며 장난을 치던 아이들은 시간을 먹고 이제 어른이 되었다. 부모님과 살던 집에 자신의 자녀와 살며 그 집과 함께 시간을 품은 사람들도 있었다. 집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가꾸고 매만져 주어야 함을, 호흡하지 않는 무생물이지만 때로 심장이 뛰는 생물처럼 대해야 함을 나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가든테라스 아파트는 주민들의 시간을 머금고 결국 과거 속으로 사라졌다고 한다. 내가 살던 마당이 있던 주택이 사라진 것처럼. 재개발이나 재건축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주택들이 효율성과 실리의 잣대로 평가되어진다. 당연한 수순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살 수 있고 더 높은 층을 가진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나곤 한다. 효율성이나 실리는 어떤 일을 진행함에 있어 반드시 따져보아야 할 항목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효율성과 실리의 잣대로만 평가되는게 왜 이다지도 아쉬울까?     


  어쩌면 사라져 버렸기에 더욱 아쉽고 애틋한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이 사라지지 않고 현실 속에 나와 함께 나이 들어가며 공존한다면 더 반가울 것 같다. 지금 와서 후회되는 건 내가 30년 가까이 살던 집을 남에게 팔았고 그 집은 허물어져 형체도 남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 집을 부모님께서 판다고 하셨을 때는 부모님도 주택이 아니라 아파트나 빌라로 가시는 게 더 편하실거라고만 생각했다. 나의 어린 시절과 추억이 가득한 곳이 기억 속으로 사라진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한 젊은 내가 안타깝다.     


  지금은 그 집을 내가 샀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 내가 살았던 집을 조금 수리하여 우리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면 어땠을까? 마당에서 개미도 만나고 계절마다 달리 피는 꽃도 보며 나의 어린 시절 위로 아이들의 어린 시절이 덧입혀지면 새로운 이야기가 탄생하지 않았을까? 유화(油畫)처럼 붓으로 덧입힌 자리에 더 멋지고 아름다운 기억이 입혀졌을거란 생각이 이제야 든다.     


  따뜻했던 순간들을 기억하고 싶어 집에 대한 추억을 책으로 묶어 보고 싶기도 하다. 지나간 시간에 대한 기억이라 정확하진 않겠지만 정확성이 생명인 ‘기록’ 이라기 보다는 마음과 감정에 관한 ‘기억’의 조각들을 맞춰보고 싶다. 그리고 그것이 방전되어 가는 삶의 순간을 다시 채워줄 조그만 보조배터리가 될 것이라 믿는다.     

  관리하기 어렵지 않고 볕이 잘 드는 작은 마당이 있다. 25평 정도의 단층으로 지어진 실내는 군더더기없이 깔끔하다. 집 주위에는 작은 도서관과 내 취향에 맞는 커피를 내어주는 카페가 있다. 조금만 걸으면 산책하기 좋은 공원도 있고 내가 자주 걷는 골목도 아름답다. 나는 그 집에서 글도 쓰고 책도 읽으며 어린 시절의 추억 위에 노년의 기억도 덧입힌다. 딸들이 결혼은 할지, 자식은 낳을지 어느 것도 장담할 수 없지만 남편과 오래 꿈꾸던 그 집 마당에서 나의 손주들이 까르르 웃으며 마음껏 뛰어다니면 좋겠다. 그리고 그들이 그 집을, 그 집을 뛰어다니던 어린 그들을, 그 곁에 함께 있었던 나를 오래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다. 나의 작고 오랜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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