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게 머문 마음
설정해 두고 잊고 지냈던 알림 하나가 뜬다. 매매 1, 알림 소리가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설레임을 한꺼번에 깨운다. 1층, 15평, 방 2개, 도배, 장판, 씽크대 했음. 네이버 부동산에 올라온 그 집의 정보는 여기까지다. 1층이라는 것이 조금 걸렸다. 하지만 엘리베이터가 없는 5층 아파트의 1층은 오히려 짐이나 가구를 옮기기에 제격일지도 몰랐다. 계단을 오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싶었다. 게다가 앞에 아무런 건물이 없기에 1층이어도 일조권의 방해가 전혀 없었다. 그럼 된 거 아닌가? 아무리 기다려도 나오지 않던 매물이 나온 것만으로도 기뻤다. 게다가 내가 기다리던 바로 그 라인이 아니던가!
눈 부신 햇살이 베란다를 향해 내려앉는다. 바로 앞에 뜨락이 있어 시야를 가릴 것이 없다. 남들이 그토록 갖고 싶어 하는 햇살도 오롯이 내 것이 된다. 그 막힘없는 펼쳐짐을 사랑한다. 친구처럼 곁에 있는 도서관은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깨끗하고 시설도 좋다. 게다가 도서관에는 좋아하는 책을 보며, 좋아하는 커피까지 마실 수 있는 카페도 있다. 문득 산책을 하고 싶어지면 얼마 걷지 않아 커피의 대명사 스타벅스도 만날 수 있다. 무엇 하나 부족한 것이 없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모두 모아놓은 종합 선물 셋트 같다.
나는 인생에서 한 번도 혼자 살아본 적이 없다. 대학까지 태어난 곳에서 다녔고, 이후 취직도 이곳에 했다. 운 좋게도 살던 집과 가까운 곳에 직장도 구할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남편도 이곳 사람을 만났고 익숙한 동네에 신혼살림을 차렸다. 10대와 20대는 부모님과 함께 살았고 30대는 남편과 살기 시작했다, 40대인 지금은 아이들까지 네 식구가 같은 공간을 공유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나는 내 공간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작은 공간을 하나 마련하여 그 안에 내 취향을 마음껏 풀어놓는 상상을 하곤 한다. 취향이 반영된 가구를 내 눈길이 머무는 곳에 두고 싶었다. 모자란 듯 미니멀하게, 쓸쓸한 듯 고요하게 공간을 채우거나 비우고 싶었다. 40대가 되어서야 겨우 정립되어 가는 내 취향의 면면을 나만의 공간에 고스란히 각인해 두고 싶다.
내 공간을 채울 가구 브랜드를 살피는 것은 나의 은밀한 취미생활이다. 원목 테이블이 좋은지, 원목 위에 세라믹을 얹은 테이블이 나을지 필요하지도 않은 테이블을 구경한다. 이도 저도 아니면 비비드한 색을 입힌 컬러풀한 테이블도 놓치지 않고 살펴본다. 만약 그 테이블을 놓는다면 거실의 어느 부분에 놓으면 좋을지 상상한다. 가로로 놓을지, 세로로 놓을지 수도 없이 많은 디자인 설계도를 머릿속에서 그렸다 지운다.
공간 자체에 대한 상상도 한다. 벽면은 화이트 벽지가 나을지 포인트로 빨간 벽돌을 붙이는 게 나을지 한참을 고민한다. 바닥은 어떤 색으로 할지 수많은 포트폴리오를 머릿속에서 돌린다. 주방은 대면형이 나을지 기역자형이 나을지 부엌에 선 나를 상상한다. 화장실은 그중에서도 최고봉이다. 욕조는 둘지 말지, 타일 색과 크기는 어떤 것으로 할지... 타일과 타일 사이를 메우는 매지 색깔도 고민해 본다. 회색이 들어갔을 때와 화이트가 들어갔을 때 등등. 여러 가지 색깔과 디자인의 화장실 앞에 내가 서 있다.
원룸을 하나 구해볼까, 우리 집에서 가까운 농촌에 주택을 살까 고민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학가 근처 작은 원룸은 공간을 꾸미기에 역부족일 것 같고, 집에서 거리가 있는 농촌지역은 길에 버리는 시간이 많을 것 같았다. '작업실'이라는 이름을 부여하고 나만의 작업실을 꿈꾼다.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 적어도 10평은 넘는 너무 작지 않은 공간, 적정한 가격. 언젠가 그런 공간이 내 것이 되기를 꿈꾸는 것만으로도 이미 절반은 가진 것 같아 목마름이 다소 해소되곤 한다.
내가 장미아파트를 처음 만난 건 아파트와 거의 단짝 친구처럼 붙어있는 도서관에 가면서부터다. 새로 지어진 도서관을 이용하러 갔다가 햇살이 쏟아져 내리고 있는 그 아파트를 봤다. 5층짜리 아파트지만 앞에 작은 쌈지공원이 있어 가리는 것이 없었다. 20층이 넘는 아파트만 보다가 5층짜리 아파트를 보자 왠지 정겹기까지 했다.
도서관을 오가며 몇 번 더 보고 나자 부동산 어플을 켜 검색하기 시작했다. 몇 평인지, 언제 지어졌는지 장미아파트의 역사와 스토리를 알아가기 시작했다. 장미아파트는 1979년에 지어진, 내 나이와 거의 맞먹는 아파트였다. 15평과 10평밖에 없는 작은 아파트였고 동도 한 동밖에 없었다. 내가 본 라인은 대부분이 동향인 그 아파트에서 유일하게 남향인 두 개 라인 가운데 하나였다. 누군가와 썸을 타듯 설레던 마음은 꼭 그를 내 사람으로 만들고 싶다는 간절함으로 번져갔다.
그 후로 얼마간, 도서관을 갈 때마다 그 라인을 유심히 살폈다. 햇살이 눈 부신 낮에도 가 보고, 가로등이 켜지는 밤에도 가 봤다. 나는 이미 장미아파트 입주민이 되어 있었고, 그 라인 중 어느 집인가는 나의 작업실이 되어 있었다. 가끔 아파트 앞 쌈지공원에는 그 아파트에 사는 것으로 보이는 할머니들이 나란히 앉아 햇빛 마사지를 하고 계셨다. 할머니들의 수다까지도 정겹게 느껴지는, 그곳은 장미아파트였다.
알림이 뜨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부동산에 전화를 걸었다. 도배랑 장판, 씽크대를 지금 새로 한 것인지 확인했다. 그건 아니고 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했다. 화장실은 수리가 된 상태냐고 묻자 아니라고 했다. 소장님은 오래된 아파트임을 강조했다. 그리고 한번 보러 오라고 했다. 마치 주인이 될 나를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집은 이미 비어 있단다. 소장님은 밝을 때 와서 보라고 했다. 나는 알았노라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나는 이후 장미아파트 앓이를 시작했다. 평수가 적다보니 가격은 상대적으로 낮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 집을 사는 것은 누가 봐도 어리석은 선택이었다. 남편도 그 집을 사는 것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사실 나는 전업으로 글을 쓰는 작가도 아니다. 매일 출퇴근을 반복하는 직장인이고 글을 쓰는 건 바쁜 시간을 쪼개가며 하고 있다. 글쓰기에 투자하는 시간으로 따져볼 때 글쓰기만을 위한 작업공간은 드레스룸 속 작은 책상 하나로도 충분했다.
게다가 그곳은 소위 말하는 역세권도 아니다. 버스정류장이나 지하철역이 코앞이라 사람들이 선호하는 곳도 아니고 재개발 가능성이 있는 지역은 더더욱 아니다. 대단지 초품아(초등학교를 품고 있는 아파트)도 아니고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신규아파트도 아니다. 남들은 그 사람을 그만 만나라고 하는데 나만 눈에 콩깍지가 씌여 그의 곁을 떠나지 않는 상태였다. 그.랬.다. 그것이 현실이었다.
현실적인 명분도, 그 집의 가치도, 그 모든 것이 장미아파트를 잊으라 말하는 듯했다. 하지만 나는 매일매일 어플을 뒤져 부동산 상태를 체크하고 저장해 둔 가구 사이트를 뒤졌다. 일기장에는 내가 상상하는 그 집의 평면도를 그려 가구 배치를 해본다. 15평에 6인용 원목 테이블을 두기엔 거실이 협소할 것 같아 4인용으로 바꾸어 본다. 원목 테이블을 금세 치우고 모던한 느낌의 금속다리 테이블로 바꾸어 본다. 방에는 싱글 침대를 두었다가 프레임을 없애고 매트리스만 두는 배치도 고려해 본다. 머릿속으로 수도 없이 작업실을 새로 인테리어 하며 가장 최애의 조합을 찾아 나선다.
급기야 핸드폰 배경 화면을 장미아파트로 바꾼다. 하루에 수십 번씩 핸드폰을 켤 때마다 장미아파트가 거기 있다. 나는 이미 장미아파트에 있다. 햇살이 부서지는 1층. 베란다 문을 조금 열어두고 바람을 느낀다. 베란다 앞의 뜨락에는 할머니들이 즐거운 수다 타임을 즐기고 계신다. 조용히 글을 쓴다. 문장이 내게 찾아오지 않을 때는 귀를 열어 할머니들의 수다를 엿듣는다. 할머니들의 수다를 따라 나를 다시 찾아온 문장을 열심히 쫓아간다. 차곡차곡 나의 글은 쌓여간다. 쌓여간 나의 글은 책이 되고 그 책은 누군가의 마음에 남는다. 장미아파트에서 쓴 책이라면 독자들의 가슴에 꽃을 피우거나 향기를 남길 수 있지 않을까?
부동산 어플을 켠다. 장미아파트가 팔리지 않고 그대로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