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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마음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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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혜정 Feb 27. 2024

마음의 경계

네게 머문 마음

  이른 아침인데도 병원은 아픈 아이들로 가득하다. 울고 있는 아이, 출근한 엄마 대신 할머니 등에 업혀 있는 아이, 시끄러운 가운데 고요히 잠든 아이. 그들 사이에 곧 6학년이 될, 하지만 남들은 4학년이라 생각할지도 모를 딸과 내가 있다. 어서 이름이 불려지기를 기다리며 우리 둘은 나란히 앉아 있다. 이런저런 병원 풍경을 눈으로 훑던 나는 감기와 코로나 환자로 북새통을 이루는 12월의 병원 풍경이 꼭 내 마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에서 도저히 예상이 되지 않았던 일 중에 하나는 엄마가 된 내 모습이었다. 결혼할 생각이 없었다거나 DINK족으로 살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오히려 안정적인 결혼생활과 부모와 아이들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4인 가족을 꿈꾸며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엄마가 된 이후의 삶에 대해, 엄마가 된 내 모습에 대해서는 예상이 되지도, 예상을 할 수도 없던 시간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 예상할 수도 없었던 그 시간은 현실이 되어 버젓이 딸 둘의 엄마가 되었다.      


  나에게 엄마라는 이름표를 처음 달아준 큰딸은 나와 많이 닮았다. 성실과 노력이 최대의 장점이며 하고 싶은 것이 많은 열정 부자다. 6살 때 학교에 입학시켜도 될 것 같다고 생각하며 나 혼자 뿌듯해했고, 학교에서는 언제나 모범생이었다. 하지만 유리멘탈인 나를 닮아 작은 일에도 상처를 잘 받았고, 스트레스도 많았다. 그래서 늘 이야기를 들어주어야 했고, 다독여야 했다. 마음이 익어 단단해지기를 바랐었다.     


  큰딸이 교과서 같은 아이라면 둘째는 잡지같은 아이다. 모두가 첫째인 우리 집에서 저만 둘째라서 그런지 행동이며 사고방식이 매우 다채로웠다. 누가 가르치지도 않았는데 애교와 귀여움은 기본 옵션으로 장착되어 태어난 것 같았다. 언제나 자유롭고 창의적이어서 벽지와 카펫을 막론하고 그림을 그리기도 했고 각종 생활용품은 고유한 용도 외에 다른 방식으로 사용되기 일쑤였다. 책을 읽어주려 하면 책장을 덮기 바빴고 머리로 익히기 보다는 경험지향적인 아이였다. 언니와는 달리 단 한번도 친구관계가 문제된 적이 없고, 학교생활에서 전혀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다. 심각한 이야기를 나눌 필요도 없었고 그저 예쁘다, 귀엽다, 사랑한다고 속삭이기만 하면 되는 그런 아이였다.      


  그런 둘째에게 한 가지 큰 문제가 있었는데 바로 키였다. 큰딸의 키가 쑥쑥 자라 나의 키를 넘어서는 사이, 둘째는 몸무게도 키도 더디 자랐다. 3.72kg의 우량아로 낳았건만, 둘째는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부터 제일 앞줄을 면치 못했다. 2학년이 되어도, 3학년이 되어도 제일 앞줄을 면치 못했다. 먹는 양이 적었고 조금만 많이 먹어도 곧바로 화장실로 갔다. 한의원도 가 보고 약도 먹여 보았지만 효과는 없었다. 때가 되면 클 것이라는 믿음으로 한 해, 두 해 보내다 보니 어느새 5학년이 끝나고 곧 6학년이 되는 시기까지 오게 된 것이다.      


  걱정이 커지던 우리는 남들처럼 성장주사라도 맞혀야 되나 고민하기에 이르렀다. 내가 보기에는 크게 작지 않은 키인데도 성장주사를 맞히고, 각종 보조제와 한약을 끊임없이 먹이는 부모들을 보며 우리가 너무 안일한가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원래도 11월생이어서 아직은 자라기 위한 준비를 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이가 어느새 6학년이 된다는 심적 무게는 생각보다 무겁게 다가왔다.     


  그러던 어느 날, 둘째를 부르던 내 입에서 ‘아기’라는 말이 서스럼없이 나오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었다. 큰딸은 이름을 부르면서 둘째를 부를 때는 5학년을 보고 ‘아기’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습관처럼 부르던 호칭인데 일순간 둘째가 크지 않는 것은 어쩌면 나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정확히 말해서 ‘아기’라는 그 호칭이 문제였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말에는 힘이 있다’는 말을 자주 쓰는 내가 그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는 것이 너무 후회스러웠다. 품에 쏙 들어오는 그 여린 몸이 나도 모르게 오래오래 내 품에 머물기를 바랐던 것은 아닌지 내 마음을 들여다봤다. 떠나보내기 위해 아이를 키운다는데 지금의 이 시간을 붙잡고 싶었던 것은 아닌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그 후 나는 ‘아기’라는 호칭 대신 둘째의 이름을 열심히 부르기 시작했다. 덧붙여 둘째에게 키가 몇 센티미터까지 크고 싶냐고 묻고 크고 싶다는 목표 신장을 덧붙여 불러 주었다. 원하는 만큼 많이 크라는 나의 바람을 담아 부르고 또 불렀다. 다시는 그런 우를 범하지 않겠다는 듯 결의에 차서!     


  다행히 의사 선생님은 성장판의 상태는 그 또래 아이들과 같은, 지극히 정상이라고 하셨다. 각종 혈액검사 결과도 모두 이상 없다는 말도 덧붙이셨다. 혹여나 성장판이 머잖아 닫힌다고 하거나 모르고 있었던 어떤 질병 때문에 키가 안 크는 건 아닌지 괜스레 걱정이 됐었다. 그저 잘 먹고, 푹 자고, 적당히 운동해 준다면 그간 못 큰 키가 쑥쑥 자랄 수 있을 것이라는데 생각이 미치자 불안함에게 자리를 내어 주었던 마음에 안정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우리는 성장주사도 맞히지 않기로 했다. 인위적인 방법보다 자연스런 흐름을 믿어 보기로 했다. 대신 더 잘 먹이고, 더 일찍 재우며, 성장 스트레칭을 매일매일 시키기로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쳐 두었던 마음의 울타리를 걷어내고 울타리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내 마음의 경계를 무너뜨리기로 했다. 작고 여린 어린아이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 당당히 설 수 있도록 가두어 두었던 내 마음의 빗장을 활짝 열어주기로 했다.     


  그것이 내 마음의 경계가 허물어져서인지, 단순한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호칭을 바꾼 이후 둘째의 밥양이 늘기 시작했다. 내가 먹는 만큼 먹더니, 언니가 먹는 만큼 먹게 되었고, 지금은 우리 집에서 밥양으로는 최고가 되었다. 시시때때로 먹고 싶다는 말을 하기 시작했고, 좀 많이 먹어도 곧장 화장실로 직행하는 일 따위는 하지 않았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불어나지 않던 체중이 조금씩 불어나기 시작했고, 자라지 않던 키가 자라기 시작했다.      


  우리는 파티를 했다. 둘째의 키가 방학 전에 비해 1센티미터나 자랐고, 몸무게도 2킬로그램이나 늘었기 때문이다. 먹고 싶다던 치킨을 시키고 키가 자라기를 손꼽아 기다리던 할아버지, 할머니께도 들뜬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배달된 치킨의 절반은 둘째의 입속으로 들어갔다. 안 먹어도 배부르다는 어른들의 말씀이 그대로 체감되는 순간이었다.      


  이제 시작이다. 둘째의 키는 하루가 다르게 자랄 것이고, 언젠가는 그토록 바라던 목표치에도 도달할 것이다. 나는 더욱 열심히 내가 만들어 둔 울타리를 허물어 나갈 것이다. 나의 울타리 안에 넣어두고 보듬고 보호해 주려고만 했던 내 마음도 허물어 나갈 것이다. 자신이 꿈꾸는 세상 속으로 당당히 걸어 나갈 수 있도록 나는 그저 지켜봐 주기만 할 것이다. 언제든 곁을 내어 줄 것이지만 혼자서도 우뚝 설 수 있도록 뒤에서 박수쳐 주고 응원해 줄 것이다.      


  둘째는 오늘도 밥을 먹자마자 체중계 위에 올라선다. 0.5 킬로그램이 더 쪘고 키도 아주 조금 더 자랐다. 커져가는 숫자가 내게서 멀어져 가는 속도 같다. 가속도가 붙으면 기꺼이 기뻐할 것이다. 분명,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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