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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결 Feb 28. 2024

나방파리

20220919


화장실에 가면


종종 나방파리가 벽에 붙어있다


그냥 두면 위생에 좋지 않다기에


무심하게 파리가 앉은 벽을 쿵 친다



비참하게 사지가 떨어지고 으꺠어진 파리


손가락에 붙은 잔여물에 혐오감을 느낀다



만약 내가 한없이 작은 존재로서


누군가에게 이리도 비합리적인 이유로


아무런 저항도 못 해보고 무참히 살해된다면


상상을 이따금씩 해본다



인터넷에서 본 적이 있다


테러조직이 유포한 영상에서


겁에 질린 남자가 


장갑차에 깔려 죽는 모습이 보인다


커다란 쇳덩이 앞에선


인간 조차도 어릴 적에 밟아 죽여 본 


개미처럼 하찮을 뿐이었다


영상 속 뼈와 살덩이로 이루어진 인간도


내가 별 뜻 없이 죽인 나방파리와 같이


처참히 으깨지는 것이다



그 누구든


필요에 의해서는


반드시 죽는다



어쩌면 이렇게 작은 벌레를


꺼리낌 없이 죽이는 내가


생명의 존엄성을 존중하라 외치고 있다면


그것은 틀림없는 위선일 것이다



몇몇을 제외한 대부분의 이들은


살생을 전혀 하지 않을 수 없으니


종교가 실재한다면 우리는 아마


전부 지옥에 갈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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