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919
화장실에 가면
종종 나방파리가 벽에 붙어있다
그냥 두면 위생에 좋지 않다기에
무심하게 파리가 앉은 벽을 쿵 친다
비참하게 사지가 떨어지고 으꺠어진 파리
손가락에 붙은 잔여물에 혐오감을 느낀다
만약 내가 한없이 작은 존재로서
누군가에게 이리도 비합리적인 이유로
아무런 저항도 못 해보고 무참히 살해된다면
상상을 이따금씩 해본다
인터넷에서 본 적이 있다
테러조직이 유포한 영상에서
겁에 질린 남자가
장갑차에 깔려 죽는 모습이 보인다
커다란 쇳덩이 앞에선
인간 조차도 어릴 적에 밟아 죽여 본
개미처럼 하찮을 뿐이었다
영상 속 뼈와 살덩이로 이루어진 인간도
내가 별 뜻 없이 죽인 나방파리와 같이
처참히 으깨지는 것이다
그 누구든
필요에 의해서는
반드시 죽는다
어쩌면 이렇게 작은 벌레를
꺼리낌 없이 죽이는 내가
생명의 존엄성을 존중하라 외치고 있다면
그것은 틀림없는 위선일 것이다
몇몇을 제외한 대부분의 이들은
살생을 전혀 하지 않을 수 없으니
종교가 실재한다면 우리는 아마
전부 지옥에 갈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