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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쓰고 싶은데, 뭘 써야 할까요?

당신이 읽는 소설이, 곧 당신이 쓸 소설

by 김슬기

Diary.

신여성 작업실에서 진행하는 워크숍의 새 시즌이 시작되는 날. 이른 아침부터 눈이 번쩍 뜨였다. 워크숍 시작 시간은 저녁 7시 30분. 늦은 밤 시작하는 워크숍이지만, 갓 밝아진 아침부터 나의 마음은 온통 저녁이다. 머리에 까치집을 하고, 목이 늘어날 대로 늘어난 티셔츠를 입고 눈을 느리게 껌뻑이며 책상에 앉았지만, 머릿속은 첫 개학일을 맞이한 교실처럼 부산했다. 캄캄한 밤에 만날 낯선 얼굴들에게 건넬 말들을 줍고, 다듬고 어떤 것은 다시 서랍에 잘 넣어두길 반복하며.


2023년 가을부터 꼬박 2년 소설 쓰기 워크숍을 열고 있지만, 새 시즌이 시작되고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을 앞두면 늘 떨린다. 낯선 사람들 앞에서 극내향형 인간이지만, 진행자로서 쾌활해야 한다는 그런 모종의 압박감도 있지만, 뭐랄까. 가장 자주 생각하는 문장은 ‘제가 뭐라꼬예’랄까.


요즘은 ‘너 뭐 돼?’라는 말이 SNS에서 이슈가 된 적이 있었는데, ‘제가 뭐라꼬예’를 서울말로 번역하자면 그쯤 되는 것 같다. 소위 ‘뭐 되지도 않은 인간’에 불과한 내가, 돈과 그보다 더 귀한 시간을 들여가며 먼 곳에서 온 사람들 앞에서 ‘소설 쓰기란 이런 것 같아요’하고 말하는 게 무척이나 부끄럽다. 이래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들면,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는데도 스스로를 쪼그라뜨려 작은 공병에다 구겨 넣는 그런 마음이 된다.


그렇게 쪼그라든 상태에도 시간은 흐른다. 워크숍 시작 시간이 다 되어가자, 하나둘 사람들이 문을 열고 들어와 자리를 채우기 시작한다. 신여성 작업실의 워크숍 공간은 최대 10명이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이 놓여 있다. 사람들은 어깨가 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를 두고서, 어색하게 자리에 앉는다. 퇴근을 하고 저녁 먹을 시간도 없이 급히 발걸음을 한 사람들에게선, 인사보다 먼저 꼬르륵, 배고픈 소리가 먼저 들려온다.


준비한 필기구나 노트북, 태블릿 PC를 꺼내 테이블에 올려두는 사람들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나는 작은 공병에 구겨 넣은 내 마음을, 억지로 꺼내 펼친다. 이제 시작해야지. 소설 쓰기가 얼마나 재미있는지 또 알려줘야지! 그런 생각을 하면 누군가 정신 차리라며 등을 손바닥으로 찰싹찰싹 때려주는 것 같은 번뜩임이 찾아온다. 그럼 소설 쓰는 일로 뭐 되지 않는 나라도, 소설 쓰기 재미 전도사 정도의 직급이 생기는 것 같은 기분이 된다.


“본격적인 시작에 앞서,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을 보낼 거예요. 직업, 나이, 출신 학교… 이런 자기소개는 잠시 내려놓고, ‘소설로’ 소개해보는 거예요. 여러분이 의미와 재미를 느끼는 그 소설이, 당신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적어도 이 소설 쓰는 만남에서는요.”


5분간의 메모 시간이 끝나고, 맨 왼쪽 사람부터 이어가며 둥글게 돌아가며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시간. 나는 사람들이 ‘좋아해요’가 잔뜩 섞인 말들을 놓치고 싶지 않아 부지런히 손을 움직여 메모를 한다.


“등장인물의 내면을 잘 그려낸 소설을 좋아해요. 저도 잊고 있던 감정의 결을 깨닫게 되는 그 순간이 좋거든요.”


“사람 얘기를 좋아해요. 소설은 사람을 입체적으로, 다양한 의미를 가진 삶을 그려내서 좋아하고요.”


아, 어쩜 이렇게 진심에 가까운 말을 금세 꺼내놓을 수 있는 걸까. 워크숍 시작 전까지 떠나지 않던 ‘제가 뭐라꼬예’ 마음은 오간데 없다. 그저 이기적인 마음이 되어 버린다. 소설을 읽고 쓰는 데 진심인 사람들과 소설 얘기를 실컷 할 수 있다는 ‘덕업일치’의 자리가 이곳이 아닌가 하는 그런 행복감이 차오른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 사이의 경계도, ‘같이 좋아하는 것’을 공유하는 시간 동안 스르르 무너져 내린다. 긴장이 조금은 풀린 사람들의 표정을 볼 때면, 난 뭐라도 된 사람처럼 뿌듯함을 느낀다. 소설 쓰기 워크숍을 한다는 건, 그래, 이 맛이지.


1년 간 책 한 권도 읽기 어렵다는 시대. 특히 소설은 더더욱 사람들에게서 멀어지는 것만 같은 요즘. 소설을 읽다 못해, 기어이 쓰겠다고 팔을 걷고 자리에 함께한 사람들. 좋아하는 소설을 좋아하고, 소설 곁에 머물다 보니 어느새 소설과 무척이나 닮아버린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여 나는 또 신나게 소설 좋아하는 얘기를 떠든다. 소설 읽는 멸종 위기의 사람들과 함께, 희귀하고도 비밀스러운 밤 모임을 이어 나가야지.




Q&A.

Q. 소설을 쓰고 싶기는 한데, 뭘 써야 할지 모르겠어요.

A. 내가 읽고 싶은 소설을, 내가 첫 번째 독자인 소설을 써본다는 생각을 해보면 어떨까요? 조금 막연하게 느껴진다면, 지금껏 내가 재미있게, 혹은 의미 있다 여기며 읽었던 소설들을 한 번 돌아보는 거예요. 당신이 읽는 소설이, 곧 당신이 쓸 소설이 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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