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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암사자 Jan 09. 2023

글 쓸 의지를 사는데 돈이 얼마나 들까

<소설 쓰고 앉아있네> 2화. 얼마면 돼


누가 멱살을 잡고 강제로 끌고 가서 협박을 하고, 고문을 해 시키는 일이 아닌 이상(우리네 직장인들 화이팅!), 자유의지로 무언가를 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운동을 진짜 하고 싶은 게 아니라, 운동을 할 의지를 사고 싶은 마음에 헬스장이나 체육관의 몇 개월치 등록비를 결제하곤 하듯이. 오늘도 제로에 수렴한 소설을 쓸 의지를, 만약 돈으로 살 수 있다면 얼마일까. 얼마면 돼, 얼마면 되냐고. 


오늘도 장바구니에 담긴 상품이 적지 않다. 장바구니엔 소소한 문구나, 글을 쓸 때 먹으면 좋을 간식들이 들어 있기도 하지만, 보통은 꽤 값 나가는 것들이 들어있다. 책상 앞에 앉기 싫어서 몸을 배배꼬는 때, 나는 좋지 않은 버릇 하나가 튀어 나온다. ‘내’가 문제가 아니라, 나의 오래된 글쓰기 장비들 탓을 하는 것이다. 장인은 연장을 탓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새로 출시한 좋은 장비들 앞에서 침을 흘리며 ‘쇤네는 장인이 아니라서, 이런 것들이 꼭 필요한뎁쇼’ 하고 말면 그 뿐이다. 미련한 반복이 계속되고, 장바구니는 점점 뚱뚱해진다. 


어떤 프로그램이든 강력하고 막힘없이 돌아간다는 맥북 프로, 세로 회전이 되고 실제 자연의 색깔과 거의 유사한 색을 보여준다는 전문가용 LG 모니터, 큰 화면에 배터리 성능까지 좋은 아이패드 프로, 손목 터널 증후군을 막아준다는 전문가용 마우스, 타자기를 연상하게 하는 멋진 디자인의 블루투스 키보드… 최근 장바구니엔 유명 가구 브랜드의 모션 데스크가 추가되었다. 아무래도 높이 조절이 되는 책상에서 글을 쓰면, 글을 쓸 때 발생할 수 있는 여러 상황들에 대처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도대체 글을 쓸 때 무슨 상황이 일어나는 건진 나도 모른다.)


장바구니에 든 것만 가격으로 환산해봐도 몇 백만 원에 이른다. 지금 내게 없는 글 쓸 의지를 이 모든 것들을 구입함으로써 살 수 있다면, 몇 백 만 원 쯤 되는 거다. 그런데 중요한 건 장바구니에 담은 게 전부가 아니라는 데 있다. 끝판왕이 있다. 이 모든 장비들이 멋들어지게 진열되어 있을 작업실이 필요하다. 이게 없으면 의미 없다. 뷰가 좋은 오피스텔이면 좋을 것 같고, 월세는 부담스러우니 자가였으면 좋겠다. 그렇게 장바구니에는 뷰가 좋은 오피스텔 매매도 포함된다. 


그렇게 다 더해보니 한 2억 쯤 된다. 이까짓 소설 쓰는 의지를 사는데, 2억이라니.


오늘도 돈이 조금 모자라, 글을 쓸 의지를 사는 것을 잠시 미룬 나는 밖으로 뛰쳐 나가 가까운 코인노래방에서 딱 2천 원 어치의 시간을 사 노래를 불렀다.


“좐인한 여자라 나를 욕하지는마.” 


잔인한 여자의 비명같은 노래를 부르고 나면 어김없이 목이 칼칼해진다. 변성기가 온 것 같은 갈라진 목소리로 나는 또 혼잣말을 뱉는다.


“오늘 안에 글 쓸 수 있겠지?”


자정에 가까워질 수록 장바구니에 또 새로운 품목이 추가된다. 글 쓸 때 먹기 좋은 만만한 간식이나, 데스크 매트나 모니터 앞에 놓아둘 귀여운 것들(1, 2만원대)같은 저렴한 품목들은 ‘로켓’ 배송을 시킨다. 자기 전에 주문하면, 로켓처럼 빠른 속도로 다음 날 눈 뜨면 배송이 완료된다. 저렴한 아이템인만큼 글 쓸 의지가 빠르게 소진되어 버리긴 하지만, 응급처방으론 이만한 것이 없다. 이상적이고도 완전한 의지를 사는데, 대충 추산해도 2억이니까, 패스트푸드 전법으로 가는거다. 싸고, 빠르게. 





번외 | "장바구니에 있다가, 결국 돈으로 사버린 의지의 아이템들"


맥북에어 (M1, 8GB, 256) | 중고 구입 | 85만원 | 의지 +2주 

: 당근마켓에서 85만 원 주고 중고로 사온 맥북에어. 아주 오래된 맥북프로(2015)가 있었음에도, 나는 제대로된 글을 쓰려면 조금 더 가볍고 성능 좋은 새로운 맥북을 사야 할 것 같다는 강력한 충동이 일었다. 아마 이건 합리적인 사고라기보다는 애플의 잘만든 광고에 나도 모르게 홀려 있었기 때문이겠지. 글 쓰는 사람이 대단히 무거운 프로그램을 돌리는 것도 아니고, 한글이나 워드 그도 없으면 사실 메모장에다 써도 되는데 샀다. 글을 써야 할 시간에, 맥북을 장바구니에 담는다거나, 애플의 신제품 발표회 영상을 본다거나, 당근마켓에서 흥정을 하고 있었으니까. 그래 사는 게 낫겠구나 싶기도 했다. 아무튼 당시 최신이었던 맥북에어 덕분에 2주 정도는 성실한 작가에 빙의해서 글을 썼다.


삼성 피벗 모니터 | 16만원 | 의지 +1주

: 하기 ‘싫어증’이 도지면, 별 게 다 불만이다. 노트북을 바꾼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가로’인 모니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회사 생활 몇 년을 하면서 단 한 번도 가로 모니터에 불만을 가져본 적이 없는데, 글 쓴 지 몇 달 만에 그런 증상이 발현된 것이다. 세로로 회전이 되는 모니터를 사야겠다 싶어 또 장바구니에 담을 제품들을 찾아 나선다. 무궁무진한 모니터의 세계를 공부하듯 탐험한다. 시험공부 할 때는 시험 공부 말고는 다 재미있는 것처럼, 쇼핑을 그리 좋아하는 나도 쇼핑에 집착하게 된다. 결국 최저가의 최저가로 고른 것이 삼성 피벗 모니터. 물론 만족감은 크다. 글 작업 환경은 보통 A4 용지 같은 비율이라, 세로가 훨씬 글을 한 눈에 보기엔 좋다. 하지만 글이 막힐 땐, 공백도 넓다. 광활한 공백 앞에 무참히 무너지고, 가로 TV 앞에 배를 깔고 누워 넷플릭스를 보게 되는 날도 허다하다.


로우로우 백팩 | 7만원 | 의지 +2일

: ‘노트북 하나와 노트북 담을 가방만 있으면 어디든 떠날 수 있어’ 기존에 쓰던 가방이 무거웠다. 노트북 하나와 충전기, 읽을 책까지 넣으면 하루종일 벽돌 나르는 공사장에서 일하다 온 것처럼 어깨가 쑤셨다. 짐을 줄이고 줄이다 보니, 결국 외출할 때는 빈 가방만 들고 다니는 이상한 상황이 벌어지게 됐다. 노트북을 이고지고 다닌다고, 꼭 글을 쓸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노트북은 일종의 애착 물건이랄까. 들고다니지 않으면 불안하다. 그런 의미로 가벼운 가방을 찾게 됐고, 애정하던 브랜드의 백팩을 새로 구매했다. 그덕에 가벼운 가방에 노트북을 넣고, 카페에선 커피만 마시고 나온다. 어깨 통증은 많이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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