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쓰고 앉아있네> 1화. 안돼
저는 글 써서 먹고 살거예요. 월급쟁이는 이제 지긋지긋합니다.
저는 글 써서 먹고 살거예요. 월급쟁이는 이제 지긋지긋합니다.
회사가 3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았던 때였다. 모두가 성장이 아닌, 회사 정리 같은 소일거리만 하고, 차가운 사무실을 유령처럼 떠돌던 때였다. 나또한 아직 받을 월급이 몇 개월이나 남아 있었고, 시간을 정해 출근할 회사가 있던 때였다. 사람들은 할 말이 없어 서로에게 물었었다. ‘취업 자리는 알아봤어요?’ 나는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었다. 글 써서 먹고 살겠다고, 월급쟁이는 지긋지긋해서 이젠 내 사업을 하겠다고 확신에 찬 말투로 얘길 했었다. 다정한 사람들은 그 말에, ‘대단해요, 멋져요, 잘 할 수 있어요’ 응원해줬다. 나는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마치 벌써 작가로 성공한 사람처럼 그랬다. 그 때 내가 취해있던 장면은 다정한 사람들과의 대화, 그것이었지만 실은 나도 알고 있었다. 그 말에 쓴 미소를 짓고 있던 사람들의 표정을. 어떤 회사에 재입사해야할까, 할 수 있을까, 다음달 생활비는 카드값은 어쩌지. 밤낮을 잠못 이루며 고민하던 사람들이 내가 뱉어내는 말들을 가시처럼 삼키고 있다는 것을. 얼마 남지 않은 퇴근길에 내 욕을 실컷 했는지도 모르지.
어디 한 번 회사 안 들어가고 잘 버티나 보자.
요즘 시대에 무슨 작가야.
결혼도 안하고, 아이도 없고. 그러니 저런 한갓진 소리가 나오지.
나는 지금도 그 장면을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를 닮은 보이지 않는 저주 인형에 내리 꽂히는 수없이 많은 바늘이 보이는 것만 같다. 그 때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나는 과거의 내 입을 좀 틀어 막고 싶다.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이 말도 꼭 해주고 싶다.
“닥쳐. (아직)월급쟁이인 네가 뭘 알아!”
물론 입을 틀어막고, 훈계(?)를 하는 것 뿐이지. 과거의 나 자신을 탓하거나 비난하고 싶은 마음은 아니다. 그렇게 말 하는 나도, 불안하고 대책이 없어 그랬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 잘 아니까. 침대에 누워 인스타그램이나 뒤적이다가, 모바일 통장에 몇 번이고 로그인해 잔고를 확인하는 밤들이 내게도 있었다.(물론 지금도 그렇다.) 글 써서 먹고 살겠다고 우쭐댔지만, 마땅히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확신에 찬 아이템이 있는 것도 아니고, 무엇을 하든 끝장을 보는 추진력을 가진 사람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금수저도 아니었고, 남모르게 코인이나 주식을 했다가 상승장에 떼 돈을 벌어 통장에 여윳돈이 두둑한 사람도 아니었다. 그래서 그랬다. 희망찬 미래, 회사원으로 잠깐 잊고 살던 꿈이란 것이라도 있으면 덜 절망적이었으니까. 누군가 한 말처럼, 나는 다행히도 미혼에 먹여 살려야할 식구가 없고, 내 한 몸 건사하는 게 전부인 삶인 것. 그게 다행인 전부였다. 기대는 것도 없지만, 기댈 곳도 없는 나는 함부로 뱉는 신기루 같은 희망에 기댄 척 한 것 뿐이었다.
+2,513,643 원
가장 최근의 월급쟁이로 내 시간을 팔아 받은 돈이 딱 저만큼이었다. 국민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 산재보험 등을 빼고 순수하게 내 통장에 매 달 따박따박 입금되던 돈. 월급 입금과 함께 월급 명세서가 메일함에 도착하면, 나는 누가 볼세라 미어캣처럼 망을 보며 자세한 내역들을 확인하곤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을까싶다.
착실한 월급쟁이었던 나는 저 돈을 잘 쪼개서 월세도 내고, 공과금도 내고, 생필품도 사고, 명절엔 부모님에게 적지만 용돈도 드리고, 아끼는 사람들 선물도 샀다. 패션이나, 비싸지만 맛있는 식당에도 관심이 전무했던터라 그렇게 하고도 100만 원씩은 꼬박꼬박 저금을 하려했다. 그런 안정적인 생활이 싫지 않았다. 창작하면서 벌어 먹고 살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을 하면 조금 즐거운 기분도 들었지만, 월급이 주는 안정을 포기할만큼은 아니었다. 이전에 회사를 그만두고 독립출판을 하고, 캐리어에 책을 넣어 보부상처럼 살았던 시절도 있지만 언젠가 생활비가 떨어지면 회사에 돌아간다는 생각은 기본값이었다. 회사원으로 착실하게 일하고, 아껴서 저금도 하면 탄탄한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탄탄한 미래라니. 조금만 생각해봐도, 그건 삼십대 중반에 고작 250만 원 월급을 받는 사람의 덮어놓고 믿는, 맹신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 시간으로도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또 이 말을 해줘야 하는 지 모른다. 네가 뭘 아냐고. 100만 원씩 성공적으로 모은다고 해도 1년에 1200만 원. 아프지 않고, 노트북도 핸드폰도 바꾸지 않고, 이사도 가지 않고, 끝끝내 결혼도 안하고 운좋게 정확히 10년을 모으면 1억 2천만 원. 지금 시세로도 서울에 있는 5평 오피스텔 하나 사기 힘든 돈을 가까스로 모은다는 것을. 그렇게 꼼꼼히 생각하면 희미한 확신이 든다. 월급쟁이로 사는 것도 겨우 해도 본전인 것만 같다. 그래, 월급쟁이가 ‘아닌’ 삶을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은 지 모른다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면 언젠가 크게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도 있고, ‘한 방’이 있을 지도 모른다고.
-1,477,880원
-1,248,540원
-1,172,866원
최근 3개월의 가계부 지출 내역을 들여다본다. 2022년 10월은 마이너스 147만 원, 11월은 마이너스 124만 원, 작년에 입던 지퍼가 고장난 겨울 점퍼를 꺼내 입은 12월은 마이너스 117만 원. 아끼고 아꼈는데도 마이너스다. 본전이 아닌 것은, 마이너스 뿐. 작고 소소한 파트타임 일을 해도, 10년 뒤에 오피스텔 사야지, 하고 모아두었던 통장 잔고가 숭덩숭덩 빠져 나간다. 나는 월급쟁이었던 나 자신에게, 또 다시 외친다. 네가 뭘 알아.
나는 오늘도 여전히 막막한 심정이다. 아직 사고방식은 월급쟁이의 때 그대로인지라, 매달 더해지지 않는, 마이너스뿐인 통장을 바라보고 있으면 불안하다. 그럴 시간에 글이나 한 줄 더 쓰라는, 진심어린 충고를 하는 사람들 앞에서 ‘그래. 난 언젠가 글 써서 먹고 살거야’ 씩씩하게 대답하지만, 혼자 남은 시간 동안엔 또 글 안쓰고 답 없는 고민만 한다. ‘어떤’ 글을 써야 하는지, 그리고 쓴다고 한들 쓴 것들로 ‘언제’ 먹고 살게 될 지 모른다. 난 도대체가 알고 있는 게 없는 사람이다.
아무튼, 막막하고 불안한 계절을 여럿 보내고 나는 어찌됐든 월급쟁이가 아닌 사람으로 책상에 꾸역꾸역 앉아 있다. 글 안쓰고 다른 사람의 잘 쓴 글을 읽으며 감탄하고, 잘 팔리는 책을 보며 시기질투하면서. 지긋지긋한 월급쟁이 생활에서 벗어나, 통장 잔고가 짜릿짜릿하게 줄어드는 백수, 아니 프리랜서로 오늘도 살아 남을 궁리를 한다. 그 중에 제일 돈이 안될 것 같은 소설 쓰고 앉아 있다.
앞으로의 이야기들은 그런 생생한 이야기다. 막막한 상태에서 쓰는 일기 같은 글이다. SNS에서 넘쳐나는 ‘월 1000만원 성공 수기’ 따위가 아닌, 구질구질하고 불안하고 막막한 습작생으로 살아남는 고군분투기인 셈이다. 누가 읽겠나 싶지만, 소설보단 이런 글이 읽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여기에 공감한 사람이 내 소설도 읽어주겠지, 실낱 같은 희망도 품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