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슬기 Jan 16. 2023

요즘 시대에 무슨 신춘문예야

<소설 쓰고 앉아있네> 3화. 



사야할 것이 있어 오랜만에 문구사에 갔다. 지하 1층에 있는 문구사로 걸어 내려가는 계단에서부터 많은 것들과 마주했다. 처음 마주한 건 머리가 많은 눈사람 같은 택배 박스 샘플. 크기가 제각각 다른 박스들이 큰 것부터 작은 것 순으로 쌓여 있었다. 무릎 높이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선반엔 어린 아이들이 좋아할 법한 비누방울 만들기 같은 장난감들이 가득했다. 나는 나와 전혀 관련 없는 것들에도 잘 현혹되는 사람이어서, 하나하나 곁눈질로 살펴보며 낯선 물건들을 살폈다. 결국 문구사 입구에 들어서면서는 원래 사려고 했던 것을 홀랑 잊어버렸다. 

문구사 안쪽 진열장은 더 화려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패턴이 모두 다른 마스킹 테이프 앞에서 잠시 머물렀고, 그 다음은 어쩌면 쓸모가 있을 지 모를 포스트잇 앞이었다. 타사의 제품보다 착착 더 잘 달라붙는 접착력으로, 떨어질 걱정을 내려 놓으라는 그런 내용의 광고 카피가 적힌 것이었다. 나는 마스킹 테이프와 포스트잇이 없는 세상에서 살다 온 사람처럼 그 주변을 수상하게 어슬렁거렸다. 카운터 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올 때까지. 


“손님, 뭐 찾는 거 있으세요?”


단정하게 앞치마를 입은 사장님이 걱정스런 눈빛을 하고서 내게 말을 걸어왔다. 나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그 때쯤엔 지우개 칸에 가 있었다. 손에는 고급 ‘전문가용’ 지우개가 들려 있었다. 나는 살며시 쥔 것을 내려 놓으며, 이건 어쩌면 꼭 사야 하는 것이라 생각을 했다. 어떤 전문가용인지 써 있진 않지만, 내 상상은 그 범위를 무한히 확장해, 내가 하고 있는 일의 영역까지 잠식했었다. 이 지우개를 쓰면, 왠지 ‘전문’ 소설가가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달까. 나는 김훈 작가처럼 연필로 글을 쓰는 사람도 아니고, 그래서 지우개는 정말 필요치 않은데도 말이다. 나는 지우개에 대한 미련을 쉽게 떨쳐내지 못하고 카운터 근처로 다가서며 말했다. 그제야 내가 사려고 했던 것이 분명해지는 기분이었다. 


“서류 봉투 10개, 투명 파일 10개요.”

“그건 사무실에서 많이들 찾는 거라, 여기 있어요.”


사장님은 카운터 바로 뒤 선반에서 서류 봉투와 투명 파일 묶음을 내게 건넸다. 나는 결제를 하기 위해, 휴대전화 케이스에 끼워두었던 카드를 빼내느라 한참을 꾸물거렸다. 전날 손톱을 바짝 깎은 것이 문제였다. 카드는 영원히 나오지 않을 것처럼 손끝에서 겉돌았다. 누가 뭐라하는 것도 아닌데, 천성이 소심한 나는 얼굴부터 화끈거렸다. 빠져나와야 것이 제때 빠져 나오지 않는 사이 어색한 대치가 이어졌다. 간간이 삐, 덜그덕, 삐, 덜그덕 소리를 내는 문구점 안에 있는 복사기 기계음만 들려왔다. 소심한 사람이지만, 나의 소심함으로 어색해지는 상황을 두고 보기 힘들어 하는 나는, 사장님이 물어보지도 궁금해하지도 않은(안물안궁) 서류 봉투를 구입하는 이유를 말하기 시작했다.


“제가(카드가 아주 조금 빠져 나왔다), 이번에 신춘(간신히 엄지 손가락에 카드 끄트머리 일부가 걸렸다), 신춘문예를 내는데요.(카드가 반쯤 나왔다) 여러군데 우편을 보내야 되어서(삐져 나온 카드 쪽을 엄지와 검지로 잡아 빼내었다) 서류봉투를 이렇게 많이 사게 됐어요.(카드가 휴대전화 안쪽이 아닌 바깥으로 탈출, 야호.)”


앞치마에 두 손을 넣고 있던 사장님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내 카드를 건네 받았다.


“네? 신춘? 우편으로 뭐 하시는 게 있나봐요.”

“아, 아니에요.”

“8천 원 결제해드릴게요.”

“넵!”


서류봉투와 투명 파일 10개들이 세트를 끌어 안고 문구사를 도망치듯 나오고 싶었지만, 도망치듯 나오면 수상하므로 나는 인내심을 가지고 천천히 밖으로 나섰다. 지하로 이어지는 계단으로 내려오면서 눈길을 사로잡았던 것들이 눈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묻지도 않은 말을 늘어 놓으며, 친근한 척 대하는 사람들을 불편해하던 나였다. 오랜 시간 서점에서 일하며 손님을 맞이하며 생긴, 직업병처럼 생긴 불편감이었다. 나는 카드를 꺼내느라 꾸물대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러운 기분이 들었다. 11월 늦가을이었는데도, 한여름 땡볕에 앉아 있던 것처럼 얼굴이 화끈거렸다.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 봄. 소설을 제대로 써야겠다 생각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였다. 얼마전 회사를 나오게 되었다는 소식을 알게 된 지인이었다. 그리 중요치 않은 안부를 묻고, 어색하게 소리 내 웃기를 몇 차례, 지인이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 물어왔다.


“소설 쓰려고요.”

“이번에는 독립출판으로 소설 내려는가봐?”

“올 해 동안엔 제대로 소설 공부도 하고, 습작도 쓰다가 연말에 신춘문예도 도전해보려고요.”

“푸하하하.”


나는 웃음의 의미를 알지 못해 당황했다. 왜 웃지, 하고 생각하던 때 지인이 웃음을 멈추고 말했다.


“요즘 시대에 무슨 신춘문예야.”


고시공부 하듯 신춘문예만 10년 하겠다는 것도 아닌데, 나는 순식간에 시대 착오적인 습작생이 되어버린 기분이었다. 아마도 지인은 나를 깎아 내릴 의도는 없었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나조차도 내가 뭘 하고 있는지 모르는 때, 맞는지 틀린지 모를 목표 지점을 향해 성실하게 안개속을 뚫고 나가고 있을 때, 저런 말들은 기운을 빠지게 한다. 때론 아프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 말을 듣고 나면, 예민한 성격의 나는 망가진 기분으로 하루종일 씩씩댄다. 귀가 얇은 편도 아니어서 목표를 수정하거나 그러진 않는다. 더 보란듯이 보여주고 싶은 승부욕에 기름을 더 부을 뿐. 


2023년이 되었다. 신춘문예 당선작들이 신문사별로 공고됐다. 나는 쓸쓸한 새해를 맞았다. 당선작품 중 내 이름이 적힌 것은 없었다. 


지인이 무심코 말했던 것처럼, 요즘 시대에 신춘문예는 그리 멋진 목표가 아닌지도 모른다. 시대 착오적이라, 괜한 시간과 돈만 버리고 다시 직장으로 터덜터덜 걸어가게 되는 결말로 이어질지 모른다. 하지만 신춘문예를 목표로 단편소설들을 쓰며 나는 많은 걸 배우고 느꼈다는 건 분명하다. 잘 쓰인 단편소설들을 열심히 찾아 읽고, 습작으로 열 편 정도의 단편소설과 한 편의 장편소설을 썼다. 마음 맞는 문우들과 함께 다정히 서로의 글을 읽어주며 첫 독자가 되기도 하고, 문우들과 우체국에 가 한 해 동안 쓴 글을 보내는 추억도 만들었다. 물론 그 사이에 우체국에 가 쭈뼛거리고, 신춘문예를 신춘문예라 부르지 못하고 부끄러워하는 시간도 보냈다. 그러는 동안 소설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그리고 소설을 쓰는 시간이 한 인간에게 어떤 의미를 줄 수 있는지 충분히, 아주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 어느것 하나 해되는 것이 없었다. 


오늘은 신춘문예 에피소드로 조금씩 연재할 글의, 인트로격이다. 요즘 시대에 신춘문예를 준비하는 마음이 어떠했는지, 감히 깎아 내리지 못할 마음들에 대해 기록해 나가려 한다. 이 역시, 기대하시라. 커밍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