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도시 악어>와 함께
처음 서울에 온 날을 기억한다. 대학교 입학식 하루 전날이었고, 공실 원룸을 구하자마자 단촐하게 챙겨온 짐을 바로 그곳에다 풀었다. 원룸 건물 밖은 신촌 번화가 한복판이었고, 많은 사람들이 늦은 시간까지 오갔다. 방을 구해주러 함께 서울에 올라온 엄마는 늦은 밤 버스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갔고, 나는 혼자 남겨졌다. 나는 그리 옛 사람이 아닌데도, 고향에 있으면서 ‘서울 사람들은 눈 뜨고 코 베어간다’는 말을 종종 들어왔었다. 고향에 있을 때는 그리 신경 쓰이지 않은 말이었지만, 낯선 서울, 낯선 집, 낯선 침대 위에 누워 있으니 그 말이 자꾸 귓가를 맴도는 것만 같았다. 갑자기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것이었다.
그 방엔 뒤통수가 두꺼운, 브라운관 TV도 옵션에 포함돼 있었다. 나는 리모컨을 찾아 켰다. OCN인지, 어떤 채널인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영화 한 편이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해 보기로 했다. 전도연, 송강호 같은 눈에 익은 배우들이 나오는 영화였다. 결론적으로 그 영화를 보기로 한 것은 잘못이었다. 지금까지도 내게 영화 <밀양>은 공포영화로 기억되고 있으니.
영화 <밀양>은 ‘용서’, ‘고통’ 같은 키워드가 주제를 감싸고 있지만, 당시의 나에게 그 영화는 낯선 곳에 적응하고자 몸부림 치는 외지인이 처절하게 무너지는 내용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어쩌다보니 오게 되었고, 사람 사는 곳이 거기서 거기라는 말을 믿으며 버텨보려하지만 결코 융화되지 않는 한 외지인의 이야기. 영화 말미에 이르러서는 극중 전도연이 맡은 주인공을 보는 것 자체가 내겐 고통처럼 느껴졌던 것 같다. 영화를 다 보기도 전에 함께 고등학교 기숙사 생활을 했던 친한 친구에게 전활 걸었다. 버스로 40분 거리의 학교에 입학하게 된 친구였다. 그녀는 학교와 가까운 고시원에서 첫 날 밤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고시원에 있는 TV로 영화 <밀양>을 보고 있으며, 두려움에 떨고 있다고.
“이 영화, 내가 봤던 것 중에 제일 공포야.”
서울에 내동댕이 쳐진 갓 스무살을 넘긴 둘은 그제야 웃었다.
“어머, 사투리 쓰네. 어디서 왔어요?”
“티나요? 사투리 많이 고쳤다고 생각했는데. 울산이 고향이에요.”
“울산 사람 반갑다. 우리 회사에도 울산 사람 있어요.”
“OO씨는 서울 사람이세요?”
“서울 사람이라고 묻는 사람은 처음 봤어. 하하.”
서울 출신으로, 서울에 여전히 머물고 있는 사람에게 ‘서울 사람이냐’ 물으면 굉장히 어색해 한다. 드문드문 말씨에서 드러나는 내 사투리를 듣고는 ‘울산 사람’이라고 금방 이름표를 붙이면서 말이다. 게다가 사투리에 붙는 ‘귀엽다’는 수식어들. 그 누구하나 ‘멋있다’거나, ‘특색있다’고 말하는 법 없이 ‘귀엽다’고 말하곤 했다. 명확히 이유를 설명하긴 힘들지만, 서울에서 융화되려 발악하듯 애쓰는 20대 시절을 보내야 하는 사람들에게 외지인의 말씨, 그것도 고작해야 귀여운 것 밖에 안되는 사투리를 쓰는 사람 취급 받는 건 그리 유쾌하진 않은 경험이었다.
스무살에 상경해, 삼십대 중후반이된 미혼 여성인 나. 결혼을 해 가정을 가지고 아이들도 있으면 경우가 조금 달라지지만, 내 집은 아직도 ‘자취방’이라 불리는 월셋방에 불과하다. 인생의 절반 가까운 시간을 서울에서 보냈지만, 그런 단어들과 마주할 때면 내가 외지인으로 ‘임시의 삶’을 연장하며 꾸역꾸역 버티듯 살아왔다는 사실을 또 한 번 마주한다. 이젠 마음만 먹으면 사투리 정도는 완전히 감출 수 있는데도.
서울에서 살아남는 동안, 좋은 학점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취업 준비를 하고, 정장 입고 빌딩숲 이곳저곳을 오가며 밥벌이를 하던 친구들 몇몇이 태어난 곳으로 돌아갔다. 취업만 하면, 그래서 월급을 받고 세금을 내고, 번듯한 집을 구하고 거기에 맞는 가구를 들여 놓으면 ‘서울 사람’이 될 것이라는 어렴풋한 기대를 하고 이를 악물고 버텼던 사람들이었다.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었다. 고향이 비빌 언덕인 친구들은 싸들고 온 것보다 많은 짐을 챙겨 돌아갔다. 고향이 나으냐, 서울이 나으냐 저울질을 해야 하는 친구들은 여전히 서울에 남아 마음이 곪아간다. 꼭 거주하는 곳이 모든 불행의 원인은 아니겠지만, 외지인 출신은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어디인가’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는 법인 것만 같다.
그림책 <도시악어>는 서울이라는 대도시에 부유하며 사는 모든 외지인, 악어들을 위한 책처럼 느껴졌다. 내가 속한 곳에 어울리기 위해 나 자신의 내외면을 부인하며 살아야 하는 시간들이, 악어가 인간 세계에 어울리려 자신의 단단한 피부와 투박한 꼬리와 날카로운 이빨을 부인하던 모습과 오버랩됐다.
“나는 내 꼬리가 부끄럽지 않아.”
도시를 가로지르는 강물에 둥둥 뜬 채 악어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한다. 서울에 처음 올라와 <밀양>이라는 영화를 보던 순간과, 여전히 임시의 삶을 연장하며 살아가고 있는 다른 시간 속 내가 한 공간에 머무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언제 나 자신으로서 온전히 대도시에 융화될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이건 분명 삭막하거나, 지나치게 높거나, 이름이 없는 사람들이 사는 도시의 문제가 아닌 것임은 분명하다.
그림책 <도시 악어>를 보고 든 생각들.